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가려면

본지에서 우리대학교 학생 336명을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5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8.45%인 230명이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을 두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한일 정상 회담’으로도 양국 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전체의 78.57%에 달했다. 이는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미래를 위한 해법’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문제 후속 조치를 살펴보고, 바람직한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봤다.

 

일제 강제동원 문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난 1951년부터 1965년까지 14년에 걸친 시간 동안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에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채로 박정희 정부는 1965년 일본과 ‘한일 청구권 협정(아래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대일 청구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대일 청구권 포기 조항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이 일본 기업에 행사할 수 있는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소멸되는지를 둘러싸고 양국 간 입장 차이가 있었다. 우리 대법원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 소멸한 대일 청구권에는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지난 2018년, 일본 가해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공식적으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우리 대법원판결에 즉각 반발했다. 우리 정부와 군사 정보 교환을 중단하고, 반도체 분야 수출 규제를 강화하며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해왔다.

 

‘제3자 변제안’이
진정한 해법일 수 없는 이유

 

지난 3월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판결의 후속 조치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제3자 변제안을 두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일본 가해 기업이 배상하도록 한 대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정에 불과하다”며 “일본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수치스럽고 일방적인 타협책”이라고 말했다. 

우리 대법원이 지난 2018년 확정한 판결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만 참여해서 조성된 기금이 피해자에게 위자료로 지급되면 피해자의 권리가 소멸한다. 임 변호사는 “제3자 변제안은 일본 기업에 금전적 배상은 물론 사과조차도 강제하지 않는다”며 “일본 기업을 사실상 면책시켜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까지 일본이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임 변호사는 “강제동원 문제는 양국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만큼, 과거 일본 내각이 발표한 입장문에는 강제동원에 대한 사과가 담겼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기시다 총리가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며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게 풀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강제동원처럼 양국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피해자 의견 수렴 ▲국민 정서 고려 ▲과거사 해결에 대한 고민이 더 이뤄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어야 한다. 임 변호사는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가해 기업의 배상과 사과를 요구했지만, 외교부는 피해자를 형식적으로 만나 정말 듣기만 했다”며 “일본 정부에 피해자 측 요구를 관철하려는 노력이 전무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제3자 변제안 거부 의사를 밝힌 피해자를 계속 설득하고 있다”면서 “이건 설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국민 정서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도 문제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배상금을 국가가 횡령해 경제 개발에 사용했으니 그 기금으로 성장한 포스코 등이 배상한다는 제3자 변제안의 논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일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이야기를 통해 국민을 설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익을 위해 내가 용단을 내렸으니 따라야 한다는 정부의 태도는 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일본 식민주의의 희생자라는 집단 기억이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이룬다”며 “제3자 변제안이 사실상 일본 가해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만큼, 우리 국민은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사 해결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이해가 부족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은, 미래에 비슷한 잘못이 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을 두고 ‘자위를 위한 수단’이었다며 정당화하거나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로 부르며 왜곡된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현실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과거사를 제대로 다룸으로써 ‘전쟁은 안 된다’는 인식을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1940년대와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일본은 또 명분을 대며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며 “지난해 일본 자위대가 권한을 확대한 것을 고려해 봐도 과거사 해결은 과거가 아닌 미래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
이제라도 바로 잡으려면

 

임 변호사는 “제3자 변제안이 부족함이 많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만큼 번복하기에는 외교적으로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제3자 변제안대로 이행하는 동시에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제3자 변제안대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재단을 통해 피해자를 우선 지원하되 일본 기업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준비가 되면 동참하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임 교수는 “우리끼리 피해자를 지원하고 배상하는 일이 일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도덕적 우위에 서서 일본을 압박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기업이 과거 기준에 따라 강제동원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점을 들어 “우리는 발전된 인권 의식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도덕적으로 압박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제외교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 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체면”이라면서 “도덕적 관대함을 바탕으로 압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침과 비슷하다. 김영삼 정부는 일본에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신 일본 정부에 ‘위안부 관련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위안소 설치 사실’과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하며 응답했다. 이는 일본 총리의 사죄와 금전 지급으로 이어지며 한일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이하는 데 기여했다.

둘째, 강제동원 문제가 인류 보편의 문제임을 환기해야 한다.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의 문제로 여겨질 때는 국제사회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여성 인권 문제로 불거지니 국제사회가 성명을 내기 시작했다”며 “강제동원 역시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반인권적 행태에 관해 인류가 함께 논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전 세계가 함께 대처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한국과 일본 사이 ‘역사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박 교수는 “양국 공동의 역사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01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연구가 두 차례에 그쳤다”며 “더 적극적으로 연구가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진정한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한일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양국이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