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없는 초등돌봄이 되려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돌아가
그곳에서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국회 간담회 中-

 

초등돌봄, 
늘어나는 수요, 부족한 공급 

 

교육부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범정부 온종일 돌봄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초등돌봄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초등돌봄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 2019년 30.2%에서 2020년 41.0%, 2021년 45.2%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역시 전체 응답자 12만 1천562만 명 중 8만 9천4명에 해당하는 49.5%가 돌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초등돌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놀이 중심의 활동이 이뤄지던 것과 달리, 초등학교부터는 정규 교육과정이 시작되며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 ▲초등학교 저학년의 이른 하교 시간이 맞벌이 가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꼽는다. 한양여대 사회복지학과 김현진 교수는 “초등돌봄의 공백이 여성 경력 단절이나 초등학생의 사교육 과잉 의존 현상 등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돌봄교실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지난 2017년 1만 1천980개였던 교실을 2022년 1만 4천970개까지 늘렸으나 돌봄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2022년 돌봄교실 대기인원은 1만 5천106명에 달했다.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 외에도 보건복지부의 지역아동센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아카데미 등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선별적 복지’ 방식이기에 역시나 초등돌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학교돌봄 그리고 마을돌봄

 

현 정부는 ‘초등돌봄 공백 해소’를 국정 과제로 선정하고, 초등학교 정규수업이 이뤄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외에 아침과 저녁에도 돌봄을 제공하겠다며 ‘전일제 학교 운영’ 방침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최대 13시간 동안 학교에서 돌봄이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교 중심의 초등돌봄이 돌봄 공백을 메우기엔 부족하다고 말한다. 마포구에서 초등 자녀를 키우고 있는 맞벌이 가정의 학부모 A씨는 “아이가 집에 혼자 있거나 학원을 전전하는 것보다 학교에 있는 것이 낫겠지만 13시간씩 학교에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또한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머무르다 보니 아이들의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일과 대부분이 교실에서 진행되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신체활동을 하거나 가정에서만큼 편히 쉴 수 없다”며 “경직된 자세로 있어야 하는 분위기라 움직임에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누적된 피로는 아이들의 학습 효과를 떨어뜨린다. 초등돌봄을 연구해 온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정성훈 교수는 “아동 발달 단계를 고려했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4~5시간 이어진 정규수업을 듣고 이후 방과후 수업까지 집중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초등학교의 방과후 수업이 교육 프로그램 위주로 짜인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경직된 운영 시간도 문제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초등돌봄의 경우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일과가 진행되다 보니, 아동이 자유로이 학교를 드나들며 외부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아동과 보호자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초등돌봄을 보다 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봄에 있어 교육과 보육을 함께 제공하려다 보니 학교 중심의 초등돌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공교육이 획일화돼 있어 아이들의 수준이나 상황에 따라 돌봄을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초등돌봄은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외에도 초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발달에 필요한 교육과 경험을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초등돌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학부모와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마을돌봄’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마을에서의 돌봄은 아동의 놀 권리와 쉴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다”며 “소규모로 이뤄지기에 아동의 개별 욕구를 반영하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도토리마을 방과후 교실’(이하 도토리마을)은 지난 1999년부터 부모와 교사, 지역 주민이 자체적으로 조직을 결성해 아동에 대한 공동육아를 해온 마을돌봄 기관이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터전’으로 불리는 ‘도토리마을’에 도착한다. 한 동네 사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오후 8시까지 생활한다. 아이들은 터전에서 직접 요리 해 지역 주민과 나눠 먹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간다. 다 함께 지역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해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도토리마을 교사로 7년째 근무 중인 박상민씨는 “도토리마을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며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라며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도토리마을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아동과 부모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도토리마을 운영위원장은 ”프로그램의 계획부터 평가까지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다“며 ”부모 역시 매월 열리는 부모 회의에 참석하거나 일일교사 형태로 돌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부모가 돌봄을 제공받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마을돌봄의 경우 공식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아동 돌봄 노하우와 전문성을 인정받아 정부와 협력해 지역별 초등돌봄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초등돌봄 정책에도 마을돌봄 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마을돌봄 기관 '도토리마을 방과후교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 마을돌봄 기관 '도토리마을 방과후교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진정한 초등돌봄이 되려면 

 

현재 도토리마을은 부모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해 마련한 조합비로 운영된다. 양질의 돌봄을 위해 충분한 자금이 마련돼야 하지만, 학령인구가 줄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학원을 택하는 아동이 많아지면서 재원 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마을돌봄을 위한 협동조합의 인원 증가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있다. 

마을돌봄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교육은 학교의 정규과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놀 권리 보장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학업에서 뒤처질 것을 우려해 자녀를 돌봄이 아닌 학원에 보낸다. 김 교수는 “많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놀 권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을 보낸다”며 “학원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릴 수 있도록 학교가 교육기관의 역할에 더 충실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으로 입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열주의와 학벌 중심 사고가 만연한 현 사회에서 교육이 대학을 위한 것이 됐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이 이뤄지는 현 교육 체제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토리마을 아동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학교에서만 이뤄진다. 정규 수업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아이들에 비해 뒤처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도토리마을 근처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급 내에 학원을 다니는 아동보다 도토리마을을 이용하는 아동이 더 많다는 점을 알고, 아이들의 학습 수준을 고려한 개별지도를 통해 학부모들의 학습 부담을 해소했다. 도토리마을에 자녀를 보낸 경험이 있는 학부모 B씨는 “초등학교 1학년 자녀가 학교에 들어갈 때 도토리마을이 아닌 학원을 보내야 하나 걱정했다”면서도 “학교 측에서 도토리마을을 이용하는 아동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충분한 학습 지도를 해준 덕분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의 예산을 배정받는 일도 쉽지 않다. 정 교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려면 정부가 제시한 방침을 따르고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마을돌봄의 고유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예를 들어 ‘마실 문화’는 부모가 늦게 퇴근해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 아이가 다른 아이의 집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도토리마을의 고유문화다. 하지만 법규에 따르면 정식 기관이 아닌 곳에 아이를 맡기기는 불가능하다. 운영위원장은 “마을돌봄 특성상 ‘마실 문화’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들이 많은데,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실질적으로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현재 도토리마을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방식인데, 정부 지침에 따라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아이들은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며 “기존 공교육처럼 획일화된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초등돌봄을 위해서는 학교돌봄과 마을돌봄, 그리고 가정돌봄까지 합이 맞아야 한다. 학교돌봄과 마을돌봄 너머의 가정돌봄까지 논의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터에서는 이번 주에 많이 일하고 다음 주에 조금 일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지만, 아동은 이번 주에 많이 돌봤다고, 다음 주에 조금 돌봐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한 유연화를 논할 때 가정돌봄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 한 명을 기르는 데 학교, 마을, 그리고 가정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자라고, 부모 역시 걱정 없이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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