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톺아보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21대 국회에서 의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의 상시 청문회 개최와 관련된 「국회법」 개정을 거부한 이후 무려 7년 만입니다.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은 「양곡관리법」개정안을 왜 주도했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양곡법으로 불붙은
대통령 vs 민주당

 

민주당 서삼석 의원이 지난 2021년 12월 10일 최초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내 쌀 가격 상승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고질적인 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국내에서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의됐습니다. 쌀 소비량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데 반해 지난해 쌀 생산량은 약 372만t으로 공급 과잉 물량이 26만 8천t에 달했습니다. 쌀값은 2022년 9월, 80kg당 16만 7천344원까지 떨어져 지난 2021년 동기간(22만 1천322원)에 비해 24.2% 폭락했습니다. 민주당은 법안의 개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쌀값을 올려야 한다고 봤습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쌀의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 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게 될 경우 초과한 쌀 생산량 전량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입니다. 기존 「양곡관리법」에도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양곡관리법」 16조 3항과 4항에는 “가격을 조절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또는 이하를 매입하게 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민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해당 16조 4항 끝부분의 ‘매입하게 할 수 있다’를 ‘매입한다’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정부의 ‘재량’을 ‘의무’로 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정안 발의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쌀값 안정화가 불안정하게 이뤄졌다는 문제 인식에서 기인했습니다. 정부는 종종 쌀 가격 폭락 시 초과 생산량의 일부를 매입해 쌀값 안정화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 매입 여부는 매년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초과한 쌀의 매입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대표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이어진 대통령실 도어스테핑에서도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은 농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어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사용되는 국민 혈세는 매년 증가해 10년 후에는 1조 4천억 원이 쓰일 것”이라며 반대 의견에 힘을 실었습니다. 

지난 4월 13일, 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 재표결이 진행됐습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가 가능합니다. 출석의원 절반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입법 의결보다 기준이 강화된 것입니다. 개정안은 찬성 177표, 반대 112표로 가결 요건인 3분의 2를 채우지 못했고, 부결됐습니다.

 

시장의 자유와 국가의 개입
양곡법과 이데올로기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개정안 반대에는 윤 대통령의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시장’을 정부의 중요한 국정운영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 2021년 말,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규제·안전 외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주의를 강조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입니다.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제시한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이러한 시장주의 기조가 담겼습니다. 한전을 시장에 개방하는 방식 등으로 전력시장을 경쟁적 시장구조로 바꾸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제정 추진’을 통해 사회복지, 교육 등을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를 민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정부가 제시했던 ‘주 69시간 근무제’ 또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노동시간에도 정부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입니다.

「양곡관리법」개정안은 이러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전면 대비됩니다. 「양곡관리법」개정안의 핵심인 정부의 ‘초과한 쌀 생산량 매입 의무화’는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강제’합니다. 윤 대통령이 보기에 쌀값의 하락은 국가가 개입해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 시장의 자유로운 조절을 통한 가격설정을 통해 맞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시장 논리에만 기대기엔 쌀 시장의 불균형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당은 쌀 수급 불균형의 원인으로 ▲풍년으로 인한 일시적 공급 과잉 ▲쌀 소비량 감소 등 구조적인 공급 과잉을 꼽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쌀 수급과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려면 공급되는 쌀의 시장 격리를 통해 가격의 적정선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장격리는 가격 설정과정에 있는 과잉공급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입니다. 또한「양곡관리법」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통해 국가의 개입 아래에서 쌀 재배면적의 적정 수준으로 천천히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수입되는 쌀 역시 시장의 불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저율관세수입물량****에 의해 미국과 중국 등에서 40만t의 쌀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4만t이 국내 시장에서 밥쌀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농민들을 만나 “밥쌀 수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14년 이후, WTO 규정에 의한 밥쌀 수입 의무는 사라졌지만, 정부는 외교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2015년부터 4만t을 현재까지도 여전히 수입하고 있습니다. 4만t의 수입쌀은 370만t에 달하는 국내 쌀 생산량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지만, 전문가들은 값싼 수입쌀이 시장에서 국내 시장 쌀값 하락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은 “공매입찰로 나온 수입 밥쌀 2만 2천t이 시장에 풀리면 500억 원의 시장격리효과가 무력화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당은 불균등한 쌀 시장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입장이 국가의 개입 의무를 강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발의로 나타났습니다.

 

쌀과 우리의 미래
앞으로는?

 

쌀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2022년 기준 56.7kg으로 지난 1991년의 116.3kg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쌀 소비량의 하락은 ▲외식·배달의 증가 ▲식단의 서구화 ▲1인 가구 증가로 촉진됐습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매년 공급되는 국내 쌀 생산량은 공급과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국내에서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대체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양곡관리법」이 아닌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루쌀 생산 ▲전략작물직불제는 쌀의 공급이 넘치게 되는 구조에서 식량의 ‘미래’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루쌀은 기존에 쌀을 가루로 만드는 것보다 가공 편의성이 큽니다. 일반 멥쌀에 비해 1/3 크기여서 쉽게 가루로 만들어 가공품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정부는 이것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전략작물직불제는 여름철에는 가루쌀과 조사료를, 겨울철에는 밀과 보리의 이모작 작부체계를 활용하는 농가를 늘려 쌀을 대체할 전략작물의 수급을 안정화하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이를 활용하는 농업인에게 직접지불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식량안보’를 위해 현재의 쌀 생산량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합니다. 쌀은 우리나라의 주식으로 가장 중요한 ‘식량’입니다. 이러한 식량은 한결같이 생산되는 공산품과는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 국가는 기후 위기와 전쟁 위기로 인해 쌀과 밀 같은 곡물 생산량을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곡물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대대적으로 국가적 계획을 매년 수립하고 있습니다. 쌀과 같은 곡물 생산량을 줄이려는 국가는 극소수뿐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50여 일 넘게 내린 비와 이로 인한 병충해로 국내 쌀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평균 20kg당 평균 4만 원 정도 하던 가을 쌀 가격은 당시에 7~8만 원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위험사회에서는 식량안보가 곧 안정적인 국가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쌀 농사는 우리나라 전체 농업생산액의 16.9%를 차지하고, 전체 농가 중 51.6%가 종사하고 있는 우리 농업의 핵심 품목입니다.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역할을 지원하기 위해 쌀 생산 농가를 고려한 농업 정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쌀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합니다. 쌀에는 ‘이데올로기’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혼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쌀은 복잡하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쌀에 대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사회의 진솔하고 창의적인 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 법률안 거부권: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견제할 수 있는 제도
** 포퓰리즘: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하여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는 외면하고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태도나 경향
***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 농가에서 논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국가에서 일정 지원 금액을 주어 쌀의 생산을 줄이도록 하는 정책
**** 저율관세수입물량: 수입하는 특정품목의 정해진 수준의 물량까지 일반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 우리나라 쌀의 경우 41만t 이후부터는 513%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정부에서 40만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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