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법과정에서의 책임에 통감해야

나예진(경영/생디·20)
나예진(경영/생디·20)

 

모든 사람은 헌법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에 적합한 주택조건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주거권이 침해되는 사건이 전세사기를 통해 연이어 발생했다. 그중 일부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발의했다. 경매로 넘어간 주택을 우선적으로 매입할 권리를 제공하고 한국주택보험공사를 통해 저가에 주택을 재임대함으로써, 적어도 피해자들이 거처를 강제로 옮길 일이 없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세사기 특별법만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고려돼야 한다.

전세사기 특별법 적용 대상자로 선정되려면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들 조건 중 3가지는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인 경우에 한해서만 특별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전세사기 사례도 많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경매 절차가 마감되거나 늦게 시작돼 대항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을 수 없다. 서민 주택이라는 조건은 수도권 피해 주택 중 상당수를 배제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적용대상이 지나치게 한정적이어서 실효성이 없는 특별법이라는 주장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역전세가 아닌 전세사기 ’범죄’ 피해에 대해서만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계획 역시 미흡한 면이 있다. 선술한 특별법 적용 요건 외에도 특별법 적용 대상자로 선정되려면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돼야 한다. 단순한 주택 가격 하락에 의한 보증금 미반환 위기는 차치하고, 고의성 있는 전세사기만을 단속하겠다는 의도의 조건들이다. 그러나 전세사기 의도와 피해자 발생 우려 등의 존재 여부는 판별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증명하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안의 특별법을 억울하게 적용받지 못할 사람이, 보다 포괄적인 특별법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보다 많을 것이라는 의미다.

6가지 조건을 살펴봤을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피해를 본 임차인을 단순히 시장에서 도태된 것이라며 방치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현 정부의 정책은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경쟁적이지 못한 상품의 소유자는 추락해도 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장의 논리로 보증금을 손해 본 이들에게는 특별한 조치 없이 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사기 행각만을 세밀하게 골라내 이들만을 제재하려는 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한 번 시장에서 손실을 본 사람들을 배상하기 시작하면, 이에 대한 요구가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주요 우려 사항 중 하나다. 피해자들이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게 해주되, 시장논리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 여당의 최우선적인 목표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주택 시장에서 합리적인 시장의 원리는 전혀 성립하지 못한다. 주택시장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지나치게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택의 진정한 시가, 임대인에 대한 정보 등은 임차인의 주의만으로 분별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잘못된 부동산 가격이 형성되며 주택 값이 폭락과 폭등을 반복, 시장 전반에서 피해자를 낳았다. 이러함에도 정부가 일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사연은 당연한 시장 논리가 적용된 것이며, 피해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책임이라며 방치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불합리한 시장에서 촉발된 피해인 만큼 많은 이들이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보다 포괄적인 지원책을 통해 주택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정부는 기존 법안 입법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의 과실로 인해 피해를 본 경우 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례는 이에 완전히 해당되지는 않지만, 국가의 관리부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배상 차원의 책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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