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교수 (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만약에 연세춘추를 폐간할 수밖에 없는 날이 왔다고 해보자. 그럴 수밖에 없게 할 가장 유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빈손이다. 월요일 새벽이면 연세대의 세 캠퍼스 약 70개 가판대에 연세춘추 신문들이 새로 깔린다. 무심코 가판대를 그냥 지나치는, 신문을 집지 않는 월요일 아침의 빈손이 연세춘추 폐간의 이유이다. 신문을 가판대에서 집는(혹은 온라인 기사를 클릭하는) 그 거룩한 행위를 연세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날, 다시 말해 연세춘추 묵시록의 그날, 대한민국 최장수 대학신문은 폐간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당신이야말로 연세춘추의 생명을 계속 잇게 하는 장본인이다. 

1935년에 연전타임즈란 이름으로 시작한 연세춘추는 2025년이면 창간 90주년을 맞는다. 연세춘추는 한국의 근현대사, 그 격동의 시기를 연세인들과 함께 겪어냈다. 언론자유가 억압받던 군사독재의 시기, 주류 언론들조차 숨죽이고 있을 때, 연세춘추는 허용된 언론자유 경계의 담벼락에서 아슬아슬한 글 춤을 추기도 했었다. 대학의 젊은 피들이 저항의 선봉에 설 수밖에 없었을 때, 그들 손엔 연세춘추가 쥐어져 있었다. 연세춘추는 그렇게 맨 앞에서 한국 사회 대학신문의 전형을 만들어왔다. 연세 역사박물관을 만든다면 언더우드 선교사, 윤동주 시인, 이한열 열사와 같은 위치에 연세춘추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세춘추는 일개 대학신문이 아니다. 연세춘추는 연세의 중요한 상징적 자산이다. 

연세춘추는 한국 언론사(史)에서 혁신의 주체이기도 했다. 신문 기사 내용에서 조사를 뺀 나머지 말들 대부분이 한자였던 시절에 한글 전용 신문을 최초로 선보인 것이 연세춘추였다. 세로쓰기가 관행이었던 시절에 가로쓰기 기사를 주도했던 것도 연세춘추였다. 한글전용과 가로쓰기의 혁신적 시도는 대학신문의 경계를 넘어서서 주류 언론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연세춘추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곤 했다. 

그런 연세춘추가 지금 위기 상태에 놓였다. 물론 연세춘추의 위기는 연세춘추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류 언론사를 포함하는 모든 언론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막대한 자본력, 인력, 시설을 갖춘 주류 언론사들도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런 세상이니 연세춘추도 위기를 그냥 받아들이고, 언제 닥칠지 모를 종말에 대한 묵시록만 써야 할까? 

물론 결코 그럴 수 없다. 연세춘추는 다시 혁신의 선두에 서야 한다. 연세춘추는 대학신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어떤 주류 언론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연세춘추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상상력이다. 인공지능, 네트워크 기술, 플랫폼 기술 등에 의해 급속히 변화해 가는 포스트매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학신문으로서의 새로운 대안 모델을 연세춘추가 보여줘야 한다. 물론 연세춘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연세춘추 기자들이 편집인, 주간 교수와 더불어, 학교 본부, 교내 관련 학과, 학생, 직원, 교수 등과 함께 협력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 혁신을 위해 연세춘추에게, 그리고 연세춘추의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들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연세춘추가 고민하길 바라는 것들이다. 첫째, 독자들 삶에 연관성(relevance) 높은 기사를 연세춘추가 싣고 있는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신문이 연관성을 잃으면 소금이 짠맛을 잃는 것과 똑같다. 둘째, 언론으로서 사회에 미칠 영향력의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연세춘추의 기사 연관성 범위를 캠퍼스 담장 안에 국한시키기 보다, 담장을 넘어 대학/지역 신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셋째, 기존의 관행을 파괴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질 높은 기사가 모든 혁신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질 높은 기사의 내용과 형식을 관습에 묶어 둘 필요는 없다. 넷째, 연세춘추의 존재 근거를 혁신에 두어야 한다. 여유 있을 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거나 다음 기수의 기자들이 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혁신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혁신이 영구적으로 지연된다면, 연세춘추 가판대를 향하는 마지막 손길마저 사라지는 날이 곧 올지 모른다.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작의 날은 바로 오늘이어야 한다.

독자들에게도 부탁할 것들이 있다. 첫째, 연세춘추를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연세의 중요한 공유 자원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독수리상이 철거되거나 청송대가 없어지는 것을 연세인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연세춘추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이상의 상실이다. 둘째로, 그렇기에 매주 월요일 학교에 올 때 습관처럼 연세춘추를 집어 들기를 바란다. 한 부가 아니라 여러 부를 집어도 좋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연세춘추 기사는 신문사 웹사이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연세춘추 온라인 기사를 읽고 공유하는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셋째, 관심 끄는 연세춘추 기사를 찾아 읽고, 그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학내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넷째, 독자에만 머무르지 말고 연세춘추를 통해 자기 이야기, 생각,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해 보길 바란다. 다섯째, 등록금 자율경비 항목에서 연세춘추를 꼭 선택해주길 바란다. 한 학기 6,700원으로 연세춘추의 혁신적 변화 노력에 멋지게 투자할 수 있다. 

연세춘추 기자들과 독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 묵시록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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