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실종아동의 가정 복귀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첫 번째 소원은 우리 정훈이를 찾는 것, 
두 번째 소원은 정훈이를 찾을 때까지 건강히 사는 것”

 

전길자(77)씨는 지난 1973년 집 앞에서 아들 이정훈씨를 잃어버린 뒤 51년 동안 자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단을 붙이고, 스무 번 넘게 유전자 검사를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정훈이를 찾겠다는 일념하에 오늘도 전단을 붙인다. 

 

▶▶ 자녀를 잃어버린 전길자씨가 지난 1986년 제작해 배부한 실종 전단의 모습
▶▶ 자녀를 잃어버린 전길자씨가 지난 1986년 제작해 배부한 실종 전단의 모습

 

실종수사법 제정에 기여한 ‘장기실종아동’
정작 이들에 대한 수사는 미흡해

 

875명. 20년 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아동의 숫자다. 이들을 포함해 2023년 현재 실종신고 된 아동은 총 1천47명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실종아동법)을 제정해 실종을 예방하고 실종된 아동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친 결과, 현재는 실종에 대한 초동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아동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하는 ‘유전자 사전 등록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종아동법의 제정부터 이 정도 수준을 달성하기까지 장기실종아동 가족의 노력이 매우 컸다. 

현행 실종아동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미아, 가출인 업무 처리 규칙」에 따라 8세 이하의 아동만 실종 접수가 가능했고, 9세 이상의 아동은 가출로 간주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 서기원씨는 지난 1994년 자녀 서희영씨가 실종됐지만, 당시 자녀의 나이가 만 10세라는 이유로 실종 접수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희영이같이 안타까운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협회를 조직하고 입법을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수준의 법체계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지만, 정작 법 마련에 기여한 장기실종아동에 대한 수사와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장기실종아동찾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현재 장기실종아동 찾기의 문제로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으로 이원화된 업무 체계 ▲경찰청 내 전담 부서 부재 ▲보호시설의 비협조를 꼽을 수 있다. 

실종아동법에 따르면 장기실종아동에 관한 정책 수립은 보건복지부 산하의 ‘아동권리보장원’이 담당하고, 실제 수색과 수사는 경찰청이 담당한다. 두 기관이 장기실종아동 사안을 함께 다루다 보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기실종아동의 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유전자 검사는 실종아동 본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채취한 유전자 정보를 비교 대조해 가족을 찾아주는 사업으로 경찰서에서 담당한다. 이는 실종아동을 찾는 방법 중 가장 핵심으로 꼽힌다. 경찰서에서 채취한 유전자 검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기 위해서는 아동권리보장원을 거쳐야 한다. 검사 결과 역시 아동권리보장원을 거쳐 경찰서에 통보된다. 실종아동법 제11조 유전정보 관리 방침에 따라 수사기관인 경찰이 유전자와 같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직접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청 장기추적팀 팀장을 지낸 백석대학교 경찰범죄수사학과 이건수 교수는 “국립과학수사원에 우편이 송달되는 데만 15일 가까이 걸린다”며 “검사가 지체될수록 실종아동과 그 가족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유전자 검사가 더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가 이원화됐음에도 담당 예산은 보건복지부 앞으로만 편성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 교수는 “유전자 검사에 관한 예산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예산이 보건복지부 앞으로 편성돼 있다”며 “이로 인해 경찰청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청 내 전담 부서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장기실종 사건의 경우 사건이 장기화하며 데이터가 소실된 경우가 많아 담당 경찰관들이 실종아동의 유입 가능성이 높은 보호시설, 정신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해 일제수색을 실시해야 한다. 업무 강도가 높지만,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다 보니 수사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일이 잦다. 서 대표는 “형사과에서 장기실종아동 사건과 다른 강력 사건을 함께 담당하는 현 상황에서 장기실종 아동을 찾기 위한 수사는 뒷전으로 밀린다”고 말했다. 실제 매년 진행해야 하는 일제수색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중단된 상태다. 경찰청에 일제수색 재개 계획을 묻자 “내부에서 논의 중일 뿐 정해진 바는 없다”고 답변했다. 서 대표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끝난 지가 언젠데, 일제수색은 시작할 기미가 안 보인다”며 “경찰의 수사 의지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 장기실종 추적팀을 운영할 당시 팀원 모두가 온종일 장기실종수사에 전념하니 성과가 좋았다”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수사에 집중하면 실종자 모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발대된 이후 경찰청 장기실종 추적팀은 1년 동안 2천317건의 장기실종사건을 해결하며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경찰청예규 「실종아동등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 제5조에 따라 장기실종 추적 업무는 현재 지방청으로 이관된 상태이며, 추적팀 설치를 의무로 하지 않아 해당 수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기실종 추적 전담팀 설치를 의무화하는 실종아동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2년째 계류 중인 상태다. 이 교수는 “장기실종수사 노하우를 확보하고 전수하는 데 전담팀은 필수”라며 “경찰관의 사명감을 고취하고 수사 의지를 제고하는 데도 전담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색을 위한 보호시설의 협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종아동법 제10조에 따라 보호기관은 보호 중인 실종자의 신상을 기록해 아동권리보장원에 제출하고 자체적으로도 관리해야 하며,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을 시,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의 일제수색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장기실종아동 가족 전 씨는 “대부분의 보호시설은 수색에 협조적이지 않다”며 문전박대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겨우 보호시설에 들어가 자료를 열람할 기회를 얻더라도, 이들의 자료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아 장기실종아동 가족과 수사팀은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보호시설 내 심신상실자나 심신미약자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법정 대리인인 보호시설 업주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업주들이 잘 동의해 주지 않아 유전자 자료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서 대표는 “시설 내 보호인원 수에 따라 보조금이 나오기에, 보호시설 업주들은 수색에 비협조적”이라며 “보호하던 인원이 가족을 찾으면 보조금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업주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호시설은 아동권리보장원에 실종자에 대한 자료를 성실히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대부분 필수 기재 정보를 누락하거나 지침 미숙지 등을 이유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해 감사원은 ‘보호시설이 제출한 실종아동의 신상 정보가 부실하고 지자체의 지도 및 감독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아동권리보장원에 정보관리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으나 권고에 그쳐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 해마다 새롭게 제작되는 이정훈씨의 실종 전단. 현재 추정모습이 담겨있다
▶▶ 해마다 새롭게 제작되는 이정훈씨의 실종 전단. 현재 추정모습이 담겨있다

 

장기실종아동 
남은 가족에 대한 지지 필요해

 

장기실종아동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남은 가족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자녀 실종을 경험한 가정의 경우 부부 관계가 악화하거나 남은 자녀에 대한 양육이 소홀히 이뤄지는 등 추가적인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동양대 사회복지학과 박향경 교수는 “과거에 비해 장기실종아동 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며 “남은 가족이 일상을 포기하고 자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며 자녀를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실종아동 가족을 위해 ▲담당 기관의 전문성 확보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서 대표는 실종가족 지원에 관한 업무를 과거에는 독립된 복지재단이 담당하던 것과 달리 현재 아동권리보장원 산하 ‘실종아동 전문센터’가 맡게 된 것을 두고 “담당 인력이나 배정된 예산의 규모를 볼 때 전문성이 떨어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박 교수는 “자녀 상실로 인해 부모가 겪는 고통은 일반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랜 경험과 실종자 가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역량을 갖춘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장기실종아동의 가족의 경우 대인관계가 단절되고 극심한 고립감을 느낀다. 박 교수는 “장기실종아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며 “실종 전단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고지서에 인쇄된 실종아동의 모습을 한 번 더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 씨는 “우리 정훈이의 모습이 실린 제품을 보면, 사람들이 우리 정훈이 기억해 주고 있구나 싶어 살아갈 기운이 난다”며 “제품에 장기실종아동의 모습을 담는 기업이 늘어나는 현실이 반갑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장기실종아동을 향한 시민들의 관심이 한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도록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관련 행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실종 사건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장기실종은 개인이나 특정 가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오래도록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장기실종아동들이 가족과 함께 진정한 가정의 달을 보낼 수 있도록, 제도 정비와 사회적 관심 제고를 위한 노력이 확대돼야 할 것이다. 

 

 

·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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