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팬들이 소비하는 알페스의 명과 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과도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하고, 이를 소설이나 영상 등의 창작물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알페스다. 알페스는 Real Person Slash의 약자인 RPS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실존 인물을 애정 관계로 엮어낸 2차 창작물을 뜻하며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창작물의 수위가 지나칠 경우 애정에서 비롯된 마음은 오히려 아이돌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알페스, 어디까지 팬심이고 어디부터 범죄일까. 알페스가 소비되고 있는 현황과 더불어 그 문제점과 법적 처벌 여부까지 모두 알아봤다.


소비자도 소속사도 끊을 수 없다


알페스는 특히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히 유통된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알페스로 생산하고 소비한다. 대부분은 아이돌 맴버들을 커플로 설정해 그들의 애정 관계를 그려낸다. 알페스는 주로 동성애를 전제로 생산됐기 때문에 음지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이를 소비하는 팬들은 주로 포스타입**이나 비공개 트위터 계정 등을 통해 폐쇄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SNS의 활성화로 글과 영상 등의 유포가 빨라지면서 알페스의 소비층도 늘어나고 있다. 소설 형식의 알페스만 존재했던 과거와는 달리 영상, 사진 등 실재감이 느껴지는 형태의 알페스가 생겨난 것도 소비층 확산의 큰 이유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에는 지극히 소수의 팬만 알페스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며 “요즘은 확실히 소비층이 넓어진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알페스는 팬덤의 성장과 선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창작자가 멤버들의 관계성에 서사를 부여해 2차 창작물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팬이 유입되기도 한다. 알페스가 상상력을 자극시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돌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남자 아이돌의 팬인 A씨는 “친구가 추천해준 알페스를 읽고 현재 좋아하고 있는 아이돌에게 관심이 생겼다”며 “드라마를 보면서 관심 없던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전했다. 알페스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연령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으로, 자극적인 글이나 영상에 쉽게 빠져든다. 따라서 음악이나 방송 활동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도 알페스를 통해 팬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소속사 측도 알페스를 통한 팬덤 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알페스를 통해 유입된 팬들로부터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속사 관계자 B씨는 “콘서트나 팬미팅에서 사진 및 영상 촬영이 제한됨에도 카메라를 드는 팬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며 “지나친 수위가 아니라면 알페스를 통해 유입되는 팬들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정 대중음악평론가는 “대부분의 소속사가 알페스를 묵인하는 상황”이라며 “소속사가 알페스를 제지하는 것은 업계 관행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웃지 못하는 당사자들


알페스를 통해 아이돌의 인기 정도와 소속사의 수익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알페스를 묵인하는 것을 넘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몇몇 소속사는 알페스의 대상이 되는 아이돌 멤버들을 고의적으로 카메라 앞에 붙여놓거나, 함께 활동시키는 등 ‘비게퍼**’**를 조장한다. 인기 있는 알페스의 멤버들을 함께 묶어 굿즈를 판매하기도 한다. 결국 소속사 측에서 팬들에게 더 많은 알페스 소재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진성 대중음악평론가는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에서 시키는 대로 비게퍼를 하는 남자 아이돌을 본 적이 있다”며 “아티스트의 존엄성보다 소속사의 이익이 우선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사자는 원치 않는 알페스가 아이돌의 인기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알페스의 지나친 수위도 문제가 된다. 과거 H.O.T, 동방신기, god, 젝스키스 등의 팬덤 사이에서도 멤버 간의 로맨스를 글로 풀어내는 팬픽이 유행했다. 그러나 현재의 알페스는 재미를 명목으로 정신적 교감을 넘어 성적 묘사까지 무절제하게 용인하고 있다. 특히 아이돌의 평균 연령대가 낮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알페스의 대상 중 상당수는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김 대중음악평론가는 “지난 2021년부터 현재까지 데뷔한 아이돌을 살펴보면 그룹 내 평균 연령이 20세가 넘는 경우가 없다”며 “성적인 가치관이 완벽히 형성되지 않은 이들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알페스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강민정(23)씨는 “동의 없는 성적 대상화도 문제”라며 “공인이라는 이유로 동의 없이 알페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전 상의 없이 하루에도 수많은 알페스가 창작되지만,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아이돌의 직업 특성상 자신이 알페스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현행관련법에 따르면 높은 수위와 당사자의 미동의로 작성된 알페스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김수경 변호사는 “알페스의 대상이 되는 아이돌이 생산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법적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형법」 제307조에 따르면 사실 혹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그러나 알페스가 실존 인물 자체에 대해 어떤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허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알페스를 생산한 사람에게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며 “아이돌은 공인과 같기 때문에 고소를 진행하는 것부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명예훼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처벌은 가능하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7항에 따르면 음란한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 판매, 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문학적, 예술적 가치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에만 음란물을 인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이 정의하고 있는 음란물의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며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에만 음란물로 인정되고, 알페스는 이 기준에 대부분 못 미친다”고 전했다. 결국 알페스를 음란물로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법적인 처벌이 어렵다고 해서 알페스를 사회적으로 옳게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적당한 수위의 알페스는 자연스러운 팬의 활동으로 간주한다. 알페스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음지 문화인 알페스가 양지로 올라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한 그룹의 멤버들을 동성애로 엮어내는 것은 알페스를 소비하지 않는 이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다. 허구의 이야기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 대중음악평론가는 “진정한 팬이라면 자신의 아이돌이 직접 알페스를 보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며 “음지의 문화는 음지에서만 즐기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중음악평론가는 “알페스를 유료로 유통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즐기기 위해 생긴 문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퍼져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알페스는 팬들의 단순 놀이문화, 그 이상이 돼서는 안 된다. 팬들은 자신의 흥미를 추구하기 전에 아이돌의 존엄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멤버 간의 애정 관계를 전제로 하는 알페스가 완벽히 건전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친 수위의 선정성은 자제해야 한다. 현재보다 더욱 윤리적이고 건강한 알페스 문화의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강하영 기자
kang_hayeong@yonsei.ac.kr
 

 

* 포스타입: 콘텐츠 수익화를 위한 가입형 블로그 서비스로, 글이나 그림 등의 창작자가 수익 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 비게퍼: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의 줄임말로, 실제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을 그런 것처럼 꾸며내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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