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덕후들의 이야기, 『케이팝 제너레이션』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것. 우리는 이것을 ‘덕질’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덕질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단연 케이팝이다. 오늘은 케이팝을 덕질하는 덕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티빙 오리지널 다큐 『케이팝 제너레이션』 1화에서는 다양한 팬들과 아이돌,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케이팝 덕질의 명과 암을 전한다. 


빠순이?
아니, 무보수 크리에이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빠순이’, ‘빠돌이’로 불리던 케이팝 덕후들은 이제 ‘무보수 크리에이터’로 불린다. 이들은 앨범을 구매하고 콘서트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덕질의 세계를 창조해나간다. 더불어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유튜브 채널 운영이 그 예시 중 하나다. 팬들은 채널을 개설해 덕질과 일상생활을 담은 브이로그 등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한다. 알고리즘을 타고 유입된 유튜브 시청자가 자신이 제작한 영상을 통해 입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큐에 출연한 유튜브 유덕모 채널의 운영자는 “더욱 활발한 팬덤 활동을 위해서는 팬을 많이 모으고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덕질 유튜브 채널 개설의 이유를 밝혔다.
 

“팬분들이 케이팝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아티스트들 만큼이나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여형 덕질도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팬들은 아이돌의 생일날에 소속사에서 업로드하는 콘텐츠에 축하 댓글을 남기거나 소속사에서 열어주는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은 팬이 직접 아이돌의 생일 카페**를 열고, 지하철이나 대형 건물 전광판에 생일 광고를 게시하고, 아이돌의 이름으로 기부를 진행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덕질이 유행하고 있다. 다큐에 출연한 한 아이돌의 팬 A씨는 “생일 이벤트를 직접 참여하면서 아이돌과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무보수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이들은 덕질을 통해 돈보다 더 값진 행복을 얻는다.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
덕질


과거와 달리 오늘날 팬들의 활동 범위는 넓어지고, 아이돌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팬들이 덕질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소속사는 팬들의 심리를 이용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이는 특히 굿즈 판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소속사는 앨범 외에도 시즌 그리팅***, 응원봉, 포토북 등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문제는 굿즈의 가격이 그 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한 보이그룹의 소속사는 7장의 마스크를 3만 5천원에 판매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장에 2~500원꼴로 거래되는 마스크가 아이돌 굿즈라는 이유로 10배 이상 비싸진 것이다. 팬들은 한정판이라는 명목으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소속사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굿즈를 구매했다. 굿즈를 소비하는 것이 아이돌을 응원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팬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고 조장하는 팬덤 문화도 문제다. 응원하는 아이돌의 음원이 나오면 스트리밍****을 인증하는 문화, 아이돌에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서포트나 광고를 위해 모금을 진행하는 문화가 대표적이다. 가령 한 번의 지하철 광고를 위해서는 2~4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팬들은 덕질 비용과 팬심의 정도가 비례한다고 여긴다. 이에 압박감을 느껴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때론 자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우선순위에 둔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형태의 덕질이다.
 

덕질이 끝났다,
사랑이 끝났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 소모의 결말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영원할 것 같던 덕질도 때론 의도치 않게 끝이 난다. 탈세, 마약, 학교 폭력, 성범죄, 음주운전 등. 한 해에도 몇 번씩 아이돌들의 범죄 소식을 듣곤 한다. ‘나의 전부’와도 같던 아이돌이 범죄자로 불리는 순간, 팬들도 아이돌과 함께 무너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이돌에게 들였던 시간과 비용, 무엇보다 추억은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프레임 밖은 사실 모르는 거거든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프레임 안이잖아요. 
프레임 밖에 대해 안일하지 않고 주의 깊게 생각하자. 
프레임 속 아이돌의 너무 믿지는 말자.”


다큐에서는 프레임의 안과 밖을 이야기한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팬이 볼 수 있는 모습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이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그들에게 헌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돌의 모든 모습을 의심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 특성상 이미지의 일부는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 자신이 모르는 1%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덕질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덕질이 끝났다고 해서 아이돌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덕질도, 사랑도,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한 번 덕질에 실패했다고 영원히 덕질을 멈춰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아이돌이 마음속에 들어왔다면 다시 덕질을 시작하면 된다.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덕질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패한 덕후들의 덕질기를 담은 영화 『성덕』의 감독 오세연(24)씨는 다큐 속에서 말한다. “지독한 사랑을 했다가 그것을 끝낸 것뿐, 그냥 한 챕터를 넘어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삶의 원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나보다 우선이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되레 피폐해진다. 덕질도 마찬가지다. 덕질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케이팝 분야에서 덕후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건강한 덕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케이팝 팬들의 슬기로운 덕후 생활을 응원한다.

 

<덕질 용어 모음 zip.>
* 입덕: 한자 ‘入’과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덕’을 합쳐 만든 신조어. 덕질을 시작했다는 뜻.
cf. 탈덕: 한자 ‘脫’을 사용하며, 덕질을 끝냈다는 뜻.
** 생일카페: 연예인의 사진이나 관련 소품으로 일정 기간 동안 카페를 꾸미는 것.
*** 시즌 그리팅: 영어권 국가의 연말연시 인사말인 "Season's Greeting(s)"에서 유래된 말로, 국내에서는 연말연시에 연예인들이 발매하는 각종 굿즈 세트 모음을 의미.
**** 스트리밍: 좋아하는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혹은 음원 등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것.

 

 

글 강하영 기자
kang_hayeong@yonsei.ac.kr

<사진 티빙>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