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뮤지컬 『빨래』

자취생에게 집안일은 언제나 귀찮은 일이다. 특히 빨랫감을 빨고, 널고, 개야 하는 빨래는 가장 미루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빨래는 우리의 일상이다. 빨래를 한다는 것은 어제까지 내가 입은 옷이 있었고 내일 내가 입을 옷이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빨래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컬 『빨래』를 관람했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뮤지컬 『빨래』의 시작을 여는 넘버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다. 이 넘버는 꿈을 품고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서울살이하는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살이 10년의 희정 엄마는 딸을 위해, 남편을 위해, 애인을 위해 방을 옮겨 다니며 생활고에 시달린다. 희정 엄마네 집 주인 할매는 45년째 달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된 아픈 딸을 위해 매일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버거운 인생을 살아간다. 꿈을 찾아 강원도에서 상경한 나영은 직장인 서점에서 불의에 맞서다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 몽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솔롱고는 벌써 6년 차 서울 사람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다.

현실에 가로막힌 이들의 꿈은 지워지고 바래진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기대도, 진정한 사랑을 찾을 거라는 설렘도 잃어버린 채 그저 힘겨운 하루를 살아간다.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사람들 틈에 끼여 지하철을 타고, 여유 부릴 틈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은 서울살이에 힘겨워하는 달동네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을 보며 포스터에 적힌 ‘우리들의 이야기’의 뜻을 새삼 깨달았다. 마치 빨랫줄에 축 늘어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 때쯤 극 중 인물들은 소리친다. 젖은 마음도, 주름진 마음도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라고 말이다.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질 때도 많겠지만, 언젠가는 마를 그 마음을 기대하며 극 중 인물들은 오늘도 빨래를 꾹 짜서 널어본다.

 

슬플 땐 빨래를 해


빨래는 등장인물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이들에게 서울은 참 못된 곳이다. 나영의 고향인 강원도 시골에도, 솔롱고의 고향인 몽골에도, 반지하나 옥탑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겉보기에 화려한 서울에는 반지하와 옥탑방이 가득히 들어서 있다. 낯선 타향살이에 기댈 곳도 없는 이들은 빨래를 통해 서로에게 공감한다. 바람을 타고 솔롱고의 집으로 넘어온 나영의 빨래는 나영과 솔롱고 사이에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주인 할매와 희정 엄마는 나영에게 빨래를 통해 위로를 건넨다. 넘버 「슬플 땐 빨래를 해」는 그 위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오랫동안 서울살이를 해온 주인 할매와 희정 엄마는 빨래할 때 힘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나영에게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를 보며 인생 또한 바람에 맡기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힘든 일이 찾아올 때도 그저 툭툭 털고 일어나 눈물이 마를 때까지 힘을 내라고 말이다. 주인 할매는 “내가 살아있으니까 빨래를 하는 것이제.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깨끗하고 향기 나는 오늘을 살기 위해 빨래를 한다. 그리고 오늘을 살았기 때문에 빨래를 한다. 빨래는 삶의 증거다.

뮤지컬 『빨래』의 등장인물들은 빨랫감을 직접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을 때 힘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는 오늘날, 손빨래는 낯설기만 하다. 빨랫줄보다는 건조대가 더 익숙하다. 물론 세탁기만으로도 극이 전하는 빨래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직접 손빨래를 할 때 배로 느껴지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옷 전체를 손빨래하지는 못하더라도 얼룩진 부분을 손으로 빨아보고, 자연 바람에 옷을 말릴 수는 없더라도 선풍기 바람에 옷을 맡기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뮤지컬 『빨래』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얼룩지고 주름진 우리의 인생을

‘빨래’하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빨래」다. 뮤지컬의 제목과 같은 제목을 가진 이 넘버는 우리의 일상과 빨래를 가장 잘 엮어 낸다. 나영은 쉬는 날 빨래 하며 자신의 인생을 빨래로 표현한다. 손때 묻은 손수건, 떡볶이 국물 튄 하얀 블라우스, 머리 냄새 묻은 베개 호청을 빨면서 그녀는 자신도 함께 빨래한다. 서울에 올라와 겪은 모든 일을 다 마음에 두고 살기란 쉽지 않다. 얼룩투성이가 된 우리의 삶도 때로는 빨래가 필요하다. 얼룩은 지우고, 먼지는 털면 된다. 주름이 졌다면 다림질하면 된다.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극의 등장인물들은 이제 잘 다린 내일을 걸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희정 엄마는 더이상 가족이 아닌 자신을 위해 이사를 가고, 나영과 솔롱고는 세상의 편견을 뒤로한 채 사랑을 시작한다. 극은 엄청난 해피엔딩보다 긍정을 암시하는 마무리를 제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이 영원히 행복할 수 있기를 더 응원하게 된다. 뮤지컬 『빨래』는 여느 뮤지컬이나 영화보다 우리의 삶과 가장 닮아있다. 특별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우리의 삶에 특별한 위로를 불어넣는다. 다 마른 후 뽀송해지는 빨랫감처럼 극이 끝난 후 기자의 젖은 마음도 뽀송해졌다. 뽀송해진 마음이 다시 구겨지고 얼룩질 때면 이곳에 와 또 한 번 빨래할 결심을 한다. 

 

뮤지컬 『빨래』는 2005년에 시작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극은 지극히 일상적인 빨래의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간다. 기자는 극을 관람한 후 집에 돌아와 바로 밀린 빨래를 했다. 귀찮기만 했던 빨래가 역설적이게도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힘겨운 서울살이에 지쳤다면 뮤지컬 『빨래』가 전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빨랫감이 되는 우리의 삶을 바람에 맡겨보길 바란다. 

 

<뮤지컬 정보>
빨래-(서울) 창작뮤지컬
2023.02.09.(목)~2023.10.01.(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수요일~금요일 19:30
주말 14:00, 18:30
R석 4만 9천 500원, 시야제한석 2만 원

 

 

글 강하영 기자
kang_hayeong@yonsei.ac.kr

사진 송지혜 기자
shd0691@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