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재생 사업의 과거와 미래를 살피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2조-

 

지난 2013년, 국토연구원은 ‘쇠퇴 진단지표로 본 전국 쇠퇴지역’을 발표했다. 해당 자료는 노후 건축물 비율과 인구 및 사업체 수를 기준으로 2개 이상의 요건을 충족한 지역을 ‘쇠퇴지역’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전국 3천470개 읍·면·동 중 64.5%인 2천239개의 도시가 쇠퇴지역으로 지정됐다. 2017년에는 그 비율이 69%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특히, 수도권 쇠퇴지역의 60% 이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서울의 도시재생과 재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국토연구원의 자료가 공개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 ‘서울로 7017’은 제작 당시의 목표인 녹지 역할보다는 보행로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쳤다.
▶▶ ‘서울로 7017’은 제작 당시의 목표인 녹지 역할보다는 보행로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쳤다.

 

서울 도시재생의 역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주 도시인 서울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박태원 교수는 서울을 “정치권력과 자본이 밀집해 있고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선도적 도시”라고 표현했다. 

기존 시설을 모두 허물고 다시 짓는 재개발과 달리, 쇠락한 지역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도시재생 사업은 특히 서울에서 주목받았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 전면 재개발이 적합하지 않은 노후 지역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서울은 한국 전쟁 이후 압축적인 도시 개발을 경험하면서 도로나 건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경우가 많다”며 “도시 전체가 한꺼번에 노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에 전략적인 도시재생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대에 들어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2013년에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사업 시행에 가속도가 붙자, 서울에는 도시재생 사업을 지원하는 ‘도시재생지원센터’가 40개가량 생겼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주무관 A씨는 “저성장이 심해지고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만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하에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구도심의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도 주요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도시재생, 무엇이 문제였나

 

서울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부족한 녹지 조성 ▲도시재생 사업지 선정의 아쉬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난개발을 사업의 미흡한 점으로 지적했다.

서울역 옆에 위치한 공중보행로 ‘서울로 7017’은 녹지 조성이 미흡했던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1970년 고가도로로 건설된 보행로는 2000년대에 들어 안전상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발견돼 철거 위기에 처했다. 이후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돼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보행로로 탈바꿈했다. 중구 만리동 1가부터 회현역을 연결하는 1.5km 길이의 서울로 7017은 공중보행로와 도심 속 녹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7년 완공됐다.

지난 3월 24일, 기자는 서울역을 찾았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자 ‘서울로 7017’이라고 적힌 녹색 표지판과 콘크리트 화분이 눈에 띄었다. 화분에는 식물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비어있는 화분도 간간이 보였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보행로에는 안전을 위해 좌우에는 유리 벽이 설치돼 있었다. 유리 벽 너머로 수많은 고층빌딩과 숭례문, 서울역이 보였다. 5분 정도 길을 걷자 전망대, 공중자연쉼터, 카페 등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서울로 7017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 B씨(24)는 “복잡한 서울역 일대를 편하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콘크리트 바닥에 중간중간 화분이 설치돼 있는 형태라 서울로 7017을 녹지로 인지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화분이 보행에 방해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기연구원 남지현 연구위원은 “특정 공간이 녹지로 정의되려면 보행로와 녹지가 어우러져야 하고 걸어 다니면서 녹지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로 7017은 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교수 역시 “보행로를 만들어 서울역과 남산 일대를 연결했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녹지 조성이라는 초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사업지 선정 자체가 아쉬운 지역도 있다. 종로구 종로1가부터 종로6가에 위치한 피맛골은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을 위한 음식점과 주점이 늘어선 골목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인근의 청진동이 재개발되며 종로1가 인근의 피맛골이 헐리고 그 자리에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수십 년 동안 피맛골에서 영업하던 음식점들은 빌딩 1층에 다시 자리를 잡았지만, 과거의 골목 형태를 알아볼 순 없었다. 오후 1시경 방문한 피맛골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화장품 가게가 영업 중이었다. ‘피맛골’이라 적힌 표지판을 제외하면 고층빌딩이 즐비한 다른 여타 거리와 차별 점을 찾기 어려웠다. 재개발 전부터 영업했던 몇몇 음식점들이 다시 입점해 영업 중일 뿐이었다. 박 교수는 “피맛골은 애초에 도시재생이 아닌 도시 재개발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며 “과거 골목의 모습을 지키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어 “골목의 흔적을 지키려는 노력이 보이기는 했지만,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남 연구위원 역시 “옛날 피맛골의 형태를 전혀 남기지 않은 점이 아쉽다”며 “이곳도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해 골목의 형태를 일부라도 보존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맛골에서 10분 정도 걷자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지이자 난개발의 상징인 세운상가가 나타났다. 지난 1968년에 준공된 세운상가는 2000년대 들어 철거 위기를 맞이했다. 서울시가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해 세운상가 부지를 고층 빌딩과 녹지로 재개발하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가장 앞에 위치한 ‘현대 상가’가 철거되고 녹지로 바뀌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 수익성 부족을 근거로 세운상가 철거 계획은 백지화됐고 ‘다시세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도시재생 사업이 시행됐다. 그 결과 상가와 청계천을 연결하는 공중 보행로가 일부 완성됐고 전자상가가 리모델링 됐다. 그러나 나머지 공중 보행로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2022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백지화하고 세운상가 부지에 녹지생태도심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도심재창조과 관계자 C씨는 “세운상가 일대는 장기간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건축물 노후, 산업기반 낙후가 심하다”며 “이곳을 고밀도로 재개발하고 녹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 계획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세운상가는 20년 동안 개발 계획이 3번이나 변경되며 도시재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난개발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교수는 “세운상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급하게 재생하려 했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세운상가는 상업시설과 산업시설이 혼재돼 있고 종사자가 많아 보다 세밀한 개발 계획이 필요했으나 녹지 조성과 건물 외관에만 신경 쓴 도시재생이 이뤄져 아쉽다”고 덧붙였다. 단국대 건축학과 홍경구 교수는 “세운상가는 주변 시설과 조화롭게 재개발되면서 그 속에서 건축물로서의 경쟁력을 갖췄어야 했다”며 “건물만을 재생하는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 종로구에 위치한 ‘피맛골’은 표지판을 제외하면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 종로구에 위치한 ‘피맛골’은 표지판을 제외하면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도시재생 그 너머

 

도시재생 사업의 미흡한 점을 점검하고 도시 개발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다. A씨는 “기존 건축물과 시설을 지나치게 보존하는 방향의 정책은 정비가 필요한 곳을 충분히 정비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지난 10년간 이로 인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기에 서울시에서는 앞으로 개발 위주의 정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 연구위원은 “그렇다고 무작정 개발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도심을 전면 재개발하면 기존 시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공실이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은 개발과 재생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A씨는 “지나치게 개발하는 것, 지나치게 보존하는 것 모두 부작용이 있다”며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 연구위원은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찾은 해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사례로 일본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을 꼽았다. 미야시타 공원은 오래된 술집 거리 위에 조성한 공중 정원으로 스포츠 파크도 함께 조성돼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공원이 활성화되며 1층의 술집 거리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남 연구위원은 “구도심의 흔적을 재생하는 동시에 성공적으로 재개발한 사례”라며 “피맛골도 이런 방향으로 개발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다.

서울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보다 거시적인 개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 교수는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서울은 이제 세계의 유명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정 개발 사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업인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시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의 특성을 살리는 거시적인 개발 계획을 마련해 기업과 사람이 모이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 역시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성을 고려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상업시설과 산업시설이 혼재된 세운상가는 반복되는 도시재생 계획 변경으로 인해 난개발됐다.
▶▶ 상업시설과 산업시설이 혼재된 세운상가는 반복되는 도시재생 계획 변경으로 인해 난개발됐다.

 

지난 1월, 서울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개발의 방향성은 곧 대한민국 도시 개발의 방향성이 된다. 서울을 넘어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글 김병훈 기자
socio_baby@yonsei.ac.kr

사진 이지선 기자
ljs2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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