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 정책을 들여다보다

‘최중증 발달장애’는 도전행동*을 수반하는 발달장애를 뜻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은 도전행동과 신변 처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장애인 보호시설 입소를 거절당하곤 한다. 전국 장애인 부모연대 서울지부 서대문구 김명옥 지회장은 “자녀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 일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며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거절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성년기에 접어들면 학교를 나와 가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돌봄부담이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되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 부모도 노년기에 접어든다”며 “자녀를 돌보는 일이 신체,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보다 더 전문성 있는 돌봄을 제공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지만 제대로 된 시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3년 기준,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24시간 돌봄 기관’은 전국에 단 두 곳뿐이다. 이마저도 일시적인 ‘시범 사업’ 형태로 이뤄지며, 전담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1년 전국 최초로 시작된 ‘광주광역시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사업’을 살펴보기 위해 3월 27일,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융합돌봄센터’를 방문했다.

 

▶▶ 융합돌봄센터 그룹활동실에서 이용인들이 자치회의를 하고 있다.
▶▶ 융합돌봄센터 그룹활동실에서 이용인들이 자치회의를 하고 있다.

 

돌봄센터에서의
'돌봄'을 살펴보다

 

오전 10시 30분, 이용인들은 융합돌봄센터 그룹활동실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룹활동실 바닥과 벽면에는 노란색과 연두색 안전 매트가 설치돼있었다. 이용인들은 주말 동안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다 월요일 오전 센터로 복귀한다. 이날 그룹활동실에는 여성 이용인 ***한 명과 남성 이용인 네 명이 있었고, 이용인 한 명당 전담인력 한 명이 붙어 이들을 보살폈다. 몇몇 이용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향해 달려가는 등의 행동을 보였지만 전담인력은 익숙한 듯 차분하게 대처했다.

오전 10시 45분, 이용인들은 각자 방석을 가져와 바닥에 깔고 앉은 뒤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치회의’를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자치회의는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이다. 이날 자치회의는 최신가요를 틀어 둔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용인 A(29)씨는 “엄마 아빠랑 고기 먹고 미용실 갔어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옆에 앉은 전담인력 조명순(64)씨에게 “선생님은 주말에 뭐 했어요”라고 질문하며 마이크를 건넸다. 조 전담인력은 “A씨가 주말에 열 통도 넘게 건 전화를 받다 보니 하루가 다 갔어요”라며 웃었다.

이용인과 전담인력 간 유대감 형성은 중요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는 데 피로를 느낀 이용인의 경우 도전행동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감 형성을 위해서는 전담인력의 연속성이 보장돼야 한다. 전주대학교 의과학대학 재활학과 최복천 교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개인마다 특성이 달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도전행동 양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담인력의 연속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 주선영씨는 “센터 내 모든 전담인력은 1년 단위의 계약을 맺은 비정규직”이라며 “고용 불안을 느껴 퇴사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 강도가 높아도 고용안정이 보장되면 쉽게 퇴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전 11시 30분, 이용인 두 명과 전담인력 두 명이 야외활동을 위해 ‘영산 문화공원’을 향했다. 야외활동 내내 이용인과 전담인력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들은 이동 중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방문했다. 전담인력은 이용인의 평소 식습관을 고려해 음식을 주문했다. 전담인력 정종혁(29)씨는 “B(35)씨는 고기나 튀김류를 좋아한다”며 “주로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긴 하지만, 컨디션을 고려해 식사량 조절을 하고, 식당 선정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음식이 나오자 이용인은 스스로 식사했다. 전담인력 강원영(28)씨는 “처음부터 야외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됐던 것은 아니다”라며 “식기를 던지거나 유리컵을 깨는 등 행동을 보여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스스로 식사도 잘하고, 위험한 행동이 많이 줄어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한 명의 전담인력
과한 돌봄 부담

 

오후 4시, 두 번째 야외활동 장소인 ‘슬로시티’에 도착했다. 정씨는 “이용인들이 앞선 산책으로 조금 지친 것 같다”며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전담인력이 잠깐 고개를 돌리자 이용인 B씨가 기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용인이 호기심이 많아 주변 냄새를 맡곤 한다는 안내를 미리 받지 못했다면 놀랄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자주 벌어져 전담인력은 이용인에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업무 중 휴게시간 보장은커녕 마음 편히 식사하기도 어렵다. 전담인력 정씨는 “이용인이 갑자기 도전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휴게시간에도 사실상 쉬지 못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퇴근 후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쉼 없이 계속되는 강도 높은 돌봄 노동은 주6일 이어진다. 행동발달지원전문가 차남경씨는 “이들이 느끼는 신체 및 정신적 피로는 높은 퇴직률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노동 강도가 센 최중증 발달장애인 전담인력에게 차별화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며 “기본급 자체를 다르게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이나 일본은 노동 강도에 등급을 매겨 보수를 차등적으로 지급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상한 평준화’가 돼 있다”며 “획일적으로 책정된 보수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담인력 한 명이 강도 높은 돌봄 부담을 떠안다 보니 단순 돌봄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최 교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도전행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행동의 이유를 진단하고 교정하는 치료 과정이 필수”라고 말했다. 단순한 일상 보조 이상의 치료 과정까지 수반돼야 진정한 ’돌봄‘이지만, 현실적으로 진정한 ’돌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차씨는 “전담인력이 이용인의 일상을 보조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치료과정까지 맡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해서는 현장에 더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용인과 전담인력이 야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이용인과 전담인력이 야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융합돌봄사업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오후 4시 30분, 이용인들은 차례로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직원과 상담했다. ‘서비스 전환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이용인들이 융합돌봄센터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년 단위로 진행되는 서비스 전환 평가 결과, 이용인의 상태가 나아졌다고 판단되면 융합돌봄센터를 나와 주간활동센터로 옮겨야 한다. 낮에만 돌봄이 이뤄지는 주간활동센터로 가면 가족의 돌봄부담이 커지는 탓에 이용인의 부모들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자녀의 증세가 나아지길 바라지만 동시에 24시간 융합돌봄 지원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주씨는 “융합돌봄센터 대기자가 많지만, 센터 규모가 작고 전담인력을 구하지 못해 대기자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업 규모가 확대돼 더 많은 이용인이 돌봄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5시, 상담을 마친 A씨는 주거코치 두 명과 함께 주거주택을 향했다. 주거코치는 오후 5시경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이용인과 함께한다. 이용인이 전담인력과 낮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은 주거코치와 보냄으로써 24시간 융합돌봄이 완성되는 것이다.

오후 8시 30분, 기자는 주거코치들과 인사를 하고 주거주택을 나왔다. 이렇게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에서의 하루를 마쳤다. 우리나라의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돌봄’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었다. 융합돌봄센터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주씨는 “전담인력을 충분히 배치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해 센터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현재 융합돌봄센터는 광주시로부터 9억 6천250만 원,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비 7억 1천250만 원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주씨는 “사업을 위해 약 20억 원 정도 필요한데, 현재 배정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사업을 구상할 당시에는 광주시의 예산만 투입될 예정이었는데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며 국비가 투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확보를 위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연구센터장 이영숙씨는 “부처별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며 “국민들의 관심, 시민단체나 관련 협회의 목소리 등이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사업’처럼 예산 증액과 감액이 자유로운 ‘재량사업’이 필요성을 인정받아 ‘의무성 사업’으로 지정되려면 더더욱 여론의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정됐다.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바라는 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밥을 먹고 거리를 걸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운이 따르길 바라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 도전행동: 타인에 대한 신체 혹은 언어적 공격, 자해 행동, 소리 지르기 등의 행동
** 신변 처리: 대소변을 스스로 가리는 일을 포함한 일상생활 전반에 필요한 행위
*** 이용인 : 최중증 발달장애 융합돌봄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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