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수많은 동은이에게 완벽한 복수란 없기에

김지원(행정/문화인류·19)
김지원(행정/문화인류·19)

최근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유년 시절 학교 폭력을 겪은 희생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사적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더 글로리』다. 주인공 동은은 끔찍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다. 그는 고데기, 다리미를 비롯한 온갖 도구들로 괴롭힘을 당해 온몸에 흉터가 남았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부모는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고, 학교는 동은의 피해 사실을 방관한다. 경찰은 가해자들을 훈방 조치하고, 가해자에게 돈을 받은 알코올 중독자 동은의 어머니는 그를 버리고 떠난다. 가정, 학교, 공적 시스템 그 어느 것도 자신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동은은 사적 복수에 나선다. 

『더 글로리』는 파트2 공개 사흘 만에 넷플릭스 TV 부문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청자가 동은의 복수 이야기에 몰입했다. 『더 글로리』를 보기 위해 이틀 밤을 감쪽같이 날렸다는 이들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가 동은의 복수극에 열광하던 와중, 한국에서는 ‘현실판 더 글로리’ 사태가 발생해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다. 정 변호사 아들은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아들의 강제 전학 처분을 되돌리기 위해 소송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의 아들의 학교폭력 조치사항 기록이 삭제된 채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박연진.’

 

『더 글로리』에서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영혼의 타락을 선택한 동은은 끝내 복수에 성공했다. ‘우리 꼭 또 보자’는 동은의 대사는 현실이 됐다. 가해자들의 완전한 추락과 함께 되찾은 동은의 영광은 쾌감을 주며 시청자들이 그의 복수극에 더욱 열광하게 했다. 그러나 현실의 수많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글로리’를 되찾긴 어렵다. ‘정 변호사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때로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욱 추악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수많은 동은이는 복수를 다짐하기는커녕,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어렵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건네기보다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건을 축소하려 애쓰고, 법은 대부분 그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 아들의 징계 기록이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고, 한국의 모든 고등학생의 꿈인 서울대에 문제 하나 없이 진학한 현실만 보더라도 말이다. 

학교 폭력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피해자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다. ‘정 변호사 사태’의 피해자 역시 졸업 이후 약 2년간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공황증세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학교 폭력의 그늘에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의 수많은 동은이를 위해서라도 예외 없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생활기록부부터 대입 정시까지 학생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에 학교폭력 기록을 반영하는 것이 그 시작이 돼야 할 것이다. 피해자는 일상적인 삶을 회복하지도 못한 채, 가해자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제2의 ‘정 변호사 사태’는 없어야 한다. 긴 시간을 고통의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인생을 고려했을 때, 가해자에게 남는 단 한 줄의 기록을 과한 처사라 볼 순 없을 것이다. 『더 글로리』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이와 맞물려 분노를 일으킨 ‘정 변호사 사태’로 온 국민이 학교폭력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지금이 그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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