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연속된 참사 목격, ‘누적 트라우마’ 위험 높여…

트라우마는 악성 종양과 닮았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혈관과 림프관을 통해 온몸에 전이되는 종양처럼, 정리하지 못한 트라우마는 서서히 마음을 잠식한다. 한국임상심리학회 오은혜 재난및위기대응이사는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난 시점이 트라우마를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말한다. 트라우마가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가 지나면, 개인의 몸에 내재돼 만성화되기 때문이다.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보다 한 달이나 더 지나버린 지금, 우리는 트라우마를 정리할 수 있는 ‘최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10·29 참사를 목격한 
20대의 트라우마

 

10·29 참사를 목격한 후 많은 국민이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0·29 참사와 관련해 트라우마를 호소한 상담 건수는 총 836건이다. 해당 수치는 동기간 전체 상담건수(3천 43건)의 약 22.3%에 육박한다. 상담 중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례도 있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한국심리학회 등 전문 기관 또한 트라우마 상담을 실시했다. 피상담자 중 당사자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지인과 목격자 또한 상당했다. 특히 피해자 세대와 비슷한 연령대인 20대에 집중된 피해양상이 보고됐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근무한 오 이사는 “센터에 상담을 문의한 피상담자 중 20대의 비중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뉴시스」가 지난 1995년부터 1999년 사이 태어난 2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태원 참사 관련 시민안전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7.2%가 10·29 참사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접하며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10·29 참사 이후 교육부 산하 상담센터 위(Wee) 센터는 트라우마 심리 지원을 요청한 10대 학생이 1만 1천641명으로 집계했다. 10대보다 참사의 당사자성이 더 높은 20대의 경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인원이 비슷하거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사이에서 트라우마 반응은 ‘빠르게’, ‘집단적’으로 퍼져갔다. 임상심리전문가 허심양씨는 “SNS를 통해 많은 영상과 사진을 접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 반응과 후유증이 특히 심각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참사 보도에 대한 지침이 있는 언론매체와 달리 개인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SNS에 제한 없이 돌아다니며 참사 상황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네트워크 환경을 자주 접하는 20대에게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당사자 세대’의 ‘연쇄적 참사 목격’이
누적 트라우마 위험 높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20대가 10·29 참사에서 치명적인 트라우마 반응을 보인 원인은 ‘누적 트라우마’에 있다. 누적 트라우마는 연속된 트라우마 기억을 통해 트라우마가 강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대 세대가 세월호 참사**와 10·29 참사를 ‘연쇄적’으로 목격한 ‘당사자 세대’이기에 누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오 이사는 “세월호를 겪었던 이들이 다시 한번 10·29 참사를 목격했을 때, 이전의 참사 경험이 머릿속에 재현됐을 것”이라며 “연쇄적인 참사 목격은 ‘나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성장기인 10대 때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다는 점도 트라우마의 잔상을 강화했다. 10대는 트라우마 대처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 이사는 “10대의 경우 삶의 경험이 부족하기에 대처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특성은 트라우마에 취약하며 깊게 내재하는 기재”가 된다고 말한다. 허씨 또한 “10대 시절에 세월호 참사를 겪고 20대가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대에 불행이 계속 반복된다는 생각에 휩싸이며 무력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승렬(사회·19)씨는 이태원 참사를 보자마자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피해 학생 또래랑 같은 학년이어서 놀랐는데,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그때의 기억이 겹쳐 불안했다”며 심적 후유증을 토로했다.

두 참사는 트라우마 피해를 가중하는 특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트라우마 피해의 가중 요인으로는 ‘상황의 강도’와 ‘관찰자·대상의 유사성’이 있다. 허씨는 “세월호와 10·29 참사는 감정을 직접 일으키는 촉발 사건이면서, 감정의 강도를 강하게 만드는 취약 요인도 충분하다. 또한 이태원을 지나가 본 경험이 있거나, 핼러윈에서 즐겁게 놀아본 이들은 피해 대상자와의 자연스러운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두 특성은 20대 세대의 누적 트라우마 피해를 더욱 강화했다.

 

대학 사회와
우리 사회의 대응

 

트라우마 증상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극복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누적 트라우마의 경우 무의식중에 잠재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한다. 특히 20대는 트라우마에 익숙하지 않아 증상을 쉽게 지나칠 수 있다. 20대가 대다수인 대학사회에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심리상담센터는 이태원 참사 직후 교내 생존자 및 목격자,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트라우마 증상의 발현 시 사용할 수 있는 호흡법과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여러 생활 속의 방법들을 알려줬고, 추가적인 개인 상담 또한 진행했다. 실제 지인이 참사를 겪었거나 TV와 유튜브에서 본 참사의 모습을 통해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다수 참석했다. 서강대학교 또한 참사 직후 학생들이 따로 절차를 밟을 필요 없이 상담받을 수 있는 응급상담지원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참사 관련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적인’ 지원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대학 역시 참사 직후 ‘일시적인’ 대응책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오 이사는 “기한을 정하지 않고 참사 관련 트라우마 상담이 진행돼야 하고 적극적인 홍보와 권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현행 상담 제도하에서는 학생들이 ‘알아서’ 상담심리지원센터를 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 반응의 경우 단순 우울감, 무력감과 증상이 비슷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고 무심코 지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부정적 심리상태를 경험하고도 섣불리 상담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 이사는 “예상하는 잠재적 트라우마 피해자 수와 상담 건수와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피해자들이 스스로 괜찮을 것이라 숨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리대학교 심리상담센터 측은 이러한 지속적인 심리 지원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시점의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부정적 심리상태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6개월 이후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트라우마의 경우 100일이 지나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에 심리적인 고통이 만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 이사는 “트라우마가 만성화되면 치료가 어렵다”며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적극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사회를 넘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현재 정부 차원의 트라우마 치료는 피해자와 유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차 피해자 이외의 간접 피해자라 할 20대 일반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은 부족했다. 허씨는 “재난 이후 트라우마 반응을 느끼는 시기도 모두 다르기에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강조했다. 중앙 정부의 경제적, 재정 지원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오 이사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단독으로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아주 크지는 않다”며 “상위의 보건복지부나 중앙 정부로부터의 확실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유가족 측에 관한 심리 상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관련 제도적 합의와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와 야당 역시 심리 지원 간담회를 열며 심리상담 확대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다만, 주요한 피해자층과 겹치는 20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결여돼있다. 10·29 참사 후 100일이 조금 더 지난 지금은 트라우마가 장기 기억으로 내재하기 전 이를 마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관련 단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글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그림 마지수>

 

 

* 10·29 참사: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핼러윈을 즐기려는 많은 인파가 모이면서 300명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참사이다. 주로 20대에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특정 지명이 들어간 표현은 낙인효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기에 ‘10·29 참사’ 명칭을 사용한다.
**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참사다.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이 사망하며 특히 10대의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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