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의무교육의 실태를 진단해보다

“바빠 죽겠는데 올해도 들어야 할 교육이 산더미네.” “몇 배속으로 틀어 둘 거야?” “난 근무 시간에 틀어두려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법정 의무교육’ 이수를 두고 나오는 말들이다. 커뮤니티를 계속 둘러봐도 교육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교육 이수의 귀찮음을 호소하거나 교육을 빨리 끝내는 법을 공유할 뿐이다. 직장인들이 법정 의무교육의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할뿐더러 성실히 교육에 임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정 의무교육, 이대로 괜찮을까.

 

법정 의무교육이란

 

법정 의무교육이란 관련 법에 따라 사업주와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을 말한다. 직업군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산업계 종사자의 경우 ▲산업안전 보건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개인정보 보호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퇴직연금교육 다섯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의 경우 채용 및 직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및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진행한다. 산업안전 보건교육의 경우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며, 발생 후에도 적절히 대처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행한다. 교육마다 진행 방식이나 필수 이수 시간, 강사 자격의 필요 여부 등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업무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근로자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으로 지정해 교육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교육 별로 미이수 시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정 의무교육이 단순히 과태료 면하기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상시 근로자가 6명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정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오니 교육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실효성을 느낀 적은 없다”며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장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 의무교육, 
현장에서 잘 이뤄지고 있을까

 

법정 의무교육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의를 틀어만 두고 실제로 듣지 않는 경우 ▲대리수강하는 경우 ▲실효성 없는 간이교육으로 진행되는 경우 ▲전문성 없는 자체 교육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인들에게 법정 의무교육은 교육이 아닌 업무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2년 차 직장인 김나경(24)씨는 “대부분 동료가 법정 의무교육을 귀찮아하고 또 다른 업무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강의를 성실히 수강하게끔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도율을 달성하게 하거나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퀴즈를 풀도록 하기도 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김나경씨는 “진도율 때문에 강의를 틀어두기는 하지만 듣지 않고 다른 업무를 하는 편”이라며 “중간 퀴즈 역시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상관없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수강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기도 한다. 임원이 들어야 할 교육을 비서진이 대신 수강하거나 아예 한 명의 인사 담당자가 여러 명의 교육을 수강하는 사례도 만연했다. H 백화점 전무이사 수행비서로 근무하는 김하민(28)씨는 “애초에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을 때 ‘이사님의 법정 의무교육 대리수강’이 업무 내용에 포함돼 있었다”며 “임원진은 개인 업무로 워낙 바쁘다 보니 수행비서가 대신해 교육을 이수하는 일이 당연시된다”고 말했다. 고위급 직원의 강의 미이수는 온라인 교육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을 진행하는 ‘한국 장애 인식 개선교육 강사협회’ 대표 황미정씨는 “오프라인 교육을 하더라도 임원들은 강의 도중에 와서 서명만 하고 가거나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고 서류로 서명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사 입장에서 문제라 여겨 담당 기관에 연락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간이교육’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간이교육은 교육 자료를 게시하거나 책자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갈음하는 것이다. 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인 사업체의 경우에 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간이’ 형식이다 보니 현장에서 교육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나경씨는 “사무실에 간이교육을 위한 책자를 비치해두긴 했지만, 주의 깊게 보는 직원은 없다”며 “단순히 포스터를 게시하거나 책자를 비치해두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사무실에 게시하는 포스터가 두 페이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자체 교육이 가능하다 보니 ‘구색 맞추기’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다. 5대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다섯 개 과목 모두 자체 교육이 가능하다. 자체 교육은 사업장 내 직원이 대표로 교육을 이수한 뒤 강사 자격을 취득해 동료 직원들에게 강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체 교육으로 진행한 교육을 이수한 경험이 있는 직장인 윤희주(24)씨는 “담당자가 직원을 모아 관련 서류를 나눠주고 읽도록 한 뒤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같은 사무실을 쓰는 직원이 맡아 진행하다 보니 얼른 서명만 하고 끝내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자체 교육 강사 자격을 쉽게 부여한다는 점도 문제다. 산업안전 보건교육의 경우 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단 16시간의 강의만을 수강한 뒤,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무사고 사업장의 경우 강의 시간은 8시간이면 충분하다. 황 대표는 “짧은 시간에 전문성을 갖추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현 제도에 우려를 표했다. 짧은 교육마저도 교육 장소에 출석하지 않은 채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우편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해 현장에서는 자체 교육의 실효성과 강사 자격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취지가 무색해진 법정 의무교육,
퇴색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정 의무교육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법정 의무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원인이 무엇일까. 먼저, 직장인들이 강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법정 의무교육을 추가 업무로 인식한다. 윤씨는 “교육 내용이 단순히 개념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굳이 들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김하민씨 역시 “개인 직무와 관련이 없다 보니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며 “업무도 많은데 교육까지 들으라고 하니 그저 추가 업무로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법정 의무교육을 유익하다고 느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연 1회 1시간 정도에 그치는 교육 시간 동안 유익함을 느낄 만큼 충분한 정보를 담는 것은 무리다. 황 대표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야 하는 개념들이 있지만 1시간 안에 모두 다루기는 어려워 일부 요소만 다루곤 한다”며 “현재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시간이 교육에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밖에 안 되는 교육마저 일찍 끝내달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있다”며 “기업과 계약을 맺는 강사의 입장에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1년에 1시간이라는 부족한 교육 시간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위탁 교육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기업은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위탁 교육 기관과 계약을 맺어 법정 의무교육을 진행한다. 하지만 위탁 교육기관들은 기업의 입장을 고려해 ‘빠르고 간단한 교육 과정’을 내세우며 홍보하곤 한다. 양질의 교육 내용을 준비하기보다 빠르게 교육 이수증을 발급해주는 데 급급한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다 못해 직장 내 법정 의무교육을 통해 ‘브리핑 영업’을 진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브리핑 영업이란 교육 중간에 간단히 보험 및 상조 상품 설명을 진행하고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문제가 불거져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소비자 경보 주의‘를 발령하기도 했다. 양질의 교육 내용을 개발하기는커녕 상품 판매 등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신경 쓰는 기업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법정 의무교육을 성실히 이수하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제재할 방안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다. 교육 진행의 증거로 교육 일지를 작성하고 사진을 남기도록 하지만 실제로 증거를 점검하는 경우는 드물다. 황 대표는 “현장 사진의 유무만을 확인할 뿐, 사진을 통해 참석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의 경우 미이수 시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100인 미만의 사업장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보니 ‘권고’만 이뤄질 뿐 실질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
부산디지털대학교 평생교육학과 심미자 교수는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참여자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법정 의무교육의 경우 근로자들이 업무와의 연관성을 느끼지 못한 채 수강 여부만 신경 쓰다 보니 교육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학습자와 콘텐츠 간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며 “빈칸을 뚫은 자료를 배부해 참여자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참여자의 의견을 묻는 코너를 마련하는 것이 일종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평가 방식과 관련해서도 “참여 과정에서의 적극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중간 평가를 늘리고 서술 방식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단순 퀴즈 형식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방식은 학습 효과를 달성하는 데 부족하다는 뜻이다. 법정 의무교육이 현장에서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과 평가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글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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