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이 나뒹구는 교육환경 보호구역, 이대로 괜찮을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A초등학교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골목. 신촌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이 거리에는 다수의 술집과 노래방, 오락실 등이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가게들은 ‘XX 주점’, ‘XX 포차’ 등의 표기를 한 화려한 간판을 내걸고 영업한다. 

 

교육환경 보호구역이지만 
젊음의 거리입니다

 

“오늘 80명 단체 예약이 있어서요, 아주 바쁠 것 같아요” 지난 2월 23일 오후 6시 30분. 어스름한 저녁 빛이 내려앉자 신촌 젊음의 거리에 위치한 술집과 노래방은 하나둘 간판의 불을 켰다. 해는 졌지만,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거리는 다시 밝아졌다. 웃으며 술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이미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 술병이 연상되는 유니폼을 입고 전단을 나눠주며 새로 나온 소주를 열심히 홍보하는 주류 업체 직원들로 젊음의 거리는 활기를 되찾았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골목은 A초등학교 경계 5m 내 위치한 곳으로 학교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구역이다.
골목의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A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정문까지 불과 100m 남짓한 거리였다. 모든 교실의 불이 꺼진 채 고요한 적막만이 학교를 감싸고 있었다. ‘A초등학교’라고 쓰인 간판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교육환경법)은 학교 경계로부터 직선거리로 50m 범위 안의 지역을 절대보호구역, 200m 범위 안의 지역 중 절대보호구역을 제외한 지역을 상대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보호구역 내에서는 청소년 유해업소의 영업이 금지된다. 업소의 구분은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영업행위를 기준으로 한다. 업소 영업을 위해 다른 법령에 따라 요구되는 ▲허가 ▲인가 ▲등록 ▲신고 등의 여부는 관계없다. 노래연습장업, 유흥주점 영업, 단란주점 영업, 일반 게임 제공업, 키스방 등 신변종 퇴폐업소가 그 예다. A초등학교 인근 보호구역은 잘 관리되고 있을까. 
A초등학교와 가장 근접한 연세로7길을 취재해본 결과, ‘포차’, ‘주점’ 등 명확하게 술집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인 가게가 50개에 육박했다. 한 건물에 많게는 네 개의 술집이 영업중이었다. 오히려 술집이 없는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호구역 내 위치한 연세로5길, 9길, 11길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 A 초등학교 정문 앞에 펼쳐진 신촌의 술집 거리.
▶▶ A 초등학교 정문 앞에 펼쳐진 신촌의 술집 거리.

 

교육환경 보호구역,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나

 

A초등학교 근처 보호구역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원인으로 ▲현행 「교육환경법」의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점 ▲허가받은 업종과 다른 형태로 영업하더라도 적발이 어렵다는 점 ▲보호구역 내 유해시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는 추세라는 점이 꼽힌다.
신촌 상권은 역사가 긴 만큼, 현행 「교육환경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허가받아 영업 중인 업소의 경우 영업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청소년 유해업소 지도 점검을 담당하는 서대문구 위생지도팀 관계자 B씨는 “현행 보호구역 내 업소들이 과거에는 영업 기준을 충족시켰기에 허가가 난 것”이라며 “지역 상인 연합회가 존재하고, 상인들의 영업권이 보호받아야 하는 한 해당 업소들을 다시 심의에 회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업소가 허가받은 업종과 다른 형태로 영업하는 경우, 적발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보호구역 내 다수 업소는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받아 영업 중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단순히 주류를 취급하는 것을 넘어 단란주점의 형태로 영업 중인 가게가 많았다. 현행 「식품위생법」 업종별 시설 기준은 주로 주류를 조리, 판매하고 손님이 노래를 부르도록 허용하는 업소를 ‘단란주점’으로 분류한다. 이들 가게는 등록 업종과 영업 형태가 다른 ‘변종 업소’인 것이다. 서울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 C씨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고 유흥이나 단란주점의 형태로 영업하는 경우, 사전 심의의 대상도 아니고, 지역자치단체 관할이다 보니 교육부에서 제재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허가를 내주는 입장에서 업소가 등록 업종과 같은 형태로 영업할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다”며 “실질적으로 구청에서 업소를 실제 방문해 점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방문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 영업 중인 한 상인에게 지도 점검 및 단속 횟수를 물어본 결과 “입간판이나 담배꽁초를 비롯해 골목 청결에 관한 지도는 받은 적 있으나 초등학교 교육환경 관련된 지도는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역시 “구청 직원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점검한 적은 없다”며 “신고가 접수되고 나서야 온다”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안 되는 단속마저도 주방 위생을 점검하는 데 그친다”고 덧붙였다.
보호구역 내 유해시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상대 보호구역 내 유해시설로 규정된 업소는 사업자가 신청한 경우 ‘교육환경 보호위원회’(아래 위원회) 심의를 거쳐 영업 제한 해제를 받은 뒤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교육환경법」 제5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업소가 ‘학습과 학교 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아니하는지’ 심의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형평성을 중심으로 고려해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C씨는 “위원회는 학습과 학교 보건위생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인근에 동일 업종이 있는지를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제7회 서부교육지원청 교육환경 보호 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A초등학교 출입문으로부터 196m 떨어진 노래연습장은 영업 금지 해제 처분을 받아 상대보호구역 내에 위치함에도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결정은 구역 내 동일 업종이 이미 영업하고 있기에 형평성 차원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이외에도 서대문구는 최근 1년 사이 보호구역 내 감성주점 다섯 군데의 영업 허가를 내줬다. 이와 관련해 B씨는 “상인의 이해관계와 얽혀있다 보니 시설 기준이나 영업 조건에 맞으면 대부분 허용을 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구청에서 신규 업소에 대한 허가를 확대하고 교육환경 보호 위원회는 상권 내 형평성을 근거로 영업 승인을 내주다 보면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교원대 교육시설환경정책전공 이재진 교수는 ”보호구역 내 유해업소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동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골목이 되려면

 

유해업소의 존재는 아동 학습권을 침해한다. 하지만 신촌 상권 특성상 업소의 영업 중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대부분의 술집이 영업을 시작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길거리 곳곳엔 담배꽁초와 술집 전단이 나뒹굴고 있었다. 빈 소주병과 맥주병을 담은 상자를 내놓은 가게도 보였다. 근처 상인에게 골목 환경에 관해 묻자 “학생들이 등교하는 다음 날 오전까지도 술병이나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지만 완벽히 치우기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동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상인들의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상인들이 학생들의 등, 하교 시간을 피해 영업하거나 영업을 마친 뒤 골목 환경 정비에 힘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현행 규정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교수는 ”아동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육환경 보호구역을 넓히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방안이 논의될 수 있겠지만 업소의 유해성과 아동 학습권 사이 연관성을 학술적으로 증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규정을 신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는 ”그렇기에 이미 존재하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교육부의 관리 감독이 중요하다. 하지만 담당 인력이 충분하지 않고 책임 권한이 여러 부서에 나뉘어 있다 보니 관리 감독 수준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B씨는 “지자체, 교육부, 경찰서의 합동 점검은 학교당 연 1회에서 2회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라며 “담당 인력은 부족하지만 점검해야 할 학교가 많다 보니 이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근거로 지자체에 단속을 위임하고 있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을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아동의 학습권 보호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지자체와 교육부가 더 적극적으로 단속 및 점검을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나둘 간판의 불이 꺼지고 가게는 문을 닫는다. 술을 마시던 행인들은 집에 돌아가고 거리는 고요해진다.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신촌 젊음의 거리는 A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이 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이 교수의 말처럼 현행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선 인력을 보충하거나 심의 절차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또한, 위원회도 심의 과정에서 아동 학습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글 김병훈 기자
socio_baby@yonsei.ac.kr
최은지 기자
socio_king@yonsei.ac.kr

사진 김민서 기자
sarah01040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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