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산업 구조와 제도를 들여다보다

누군가에게 폐지*는 삶이다. 폐지를 줍고, 모으고, 압축하고, 되판다. 신촌 근방 고물상에서 폐지는 kg당 40원에 거래된다. 폐지 산업 구조 밑단으로 갈수록 폐지산업 생태계 구성원 간의 간극은 커진다.

폐지(廢紙)는 쓰레기가 아니다.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서 무한히 살아날 수 있다. 본 폐지산업 기획은 폐지를 살려내는 이들을 담았다. 우리는 모두 폐지와 맞닿아 있다.

<기자 주>

 

이른 아침, 리어카를 끌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이들을 폐지수집노인, 누군가는 그저 쓰레기 줍는 사람으로 부른다. 정부는 자원재생활동가로 정의한다. 이들의 노동이 환경 보호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재활용품 수집은 국내에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212만 4천t을 감축한다.

“폐지수집노인 덕분에 폐지가 3단계로 분류돼 재활용된다. 하지만 폐지수집노인이 행하는 노동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는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폐지수집이 자원재생으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시선이 부족하다. 본 기획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담아내고자 ‘자원재생활동가’가 아닌, ‘폐지수집노인’이라 칭한다. 이러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묵묵히 폐지를 줍는다. 그렇게 폐지는 생(生)지가 된다. 

 

▶▶ 폐지수집노인의 손수레. 그들의 노동 대가는 시급 500원 정도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 폐지수집노인의 손수레. 그들의 노동 대가는 시급 500원 정도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필요한 노동, 
충분하지 못한 대우

 

폐지는 폐지수집노인, 고물상, 압축장, 제지회사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폐지수집노인은 하루 동안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가져간다. 그렇게 모인 폐지는 3단계로 분류된다. 특수처리를 하지 않아도 재활용 가능한 A4 용지와 책은 1등급, 약품처리를 거쳐야 하는 우유갑, 쇼핑백은 2등급, 택배 상자와 골판지는 3등급이다. 고물상은 무게를 재 정해놓은 값으로 사들인다. 신촌 근방 고물상에서는 등급 구분이 없었다. 눈대중으로 조금 괜찮은 폐지는 평균 40원, 질 떨어지는 폐지는 20원 정도에 매입되고 있다. 

오후 5시부터 1시간가량 해당 고물상을 지켜봤다. 고물상이 문 닫는 해질녘이 되자 폐지수집노인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과 폐지수집노인의 느린 발걸음이 대비됐다. 고물상은 왕복 4차선 도로 앞에 있었다. 행여 고물상 문이 닫힐까 고물상으로 향하는 이들은 무단횡단도 서슴지 않는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내려놓는 손수레에는 폐지가 잔뜩 실려있었다. 약 100kg를 내려놓고 4천 원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행렬이 이어졌다. 8시간 노동의 대가는 시간당 500원 정도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정해진 장소에서의 노동이 아닐뿐더러 도로 위를 위험하게 오가야 할 때도 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들은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50kg에 육박하는 손수레를 밀며 위험한 거리로 나선다. 폐지수집 활동에 부적절한 운반 도구가 사용되기도 한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허준수 교수는 “신체건강에 문제가 있고, 75세가 넘은 고령자가 많은데 하루 평균 40km 이상씩 이동한다”고 했다. 

폐지수집노인을 경시하는 시선도 만연하다.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로 지불받기 어려운 이유다. 고 활동가는 “쓰레기를 주워 가난한 사람들이 벌어먹고 산다고 생각한다”며 “쓰레기 수거업은 중요하지 않은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이라 했다. 사회적 인식에 비해 이들이 창출해내는 경제적 가치는 막대하다. 국내에서 매년 폐기물 매립 및 소각 비용 5천268억 원을 절감한다. 약 1조 5천억 원의 경제적 가치다.

 

▶▶ 지도에 표시된 고물상을 방문했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 지도에 표시된 고물상을 방문했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물고 물리는 
폐지산업 구조

 

폐지산업 구조의 맨 위에는 제지회사가 있다. 폐지산업의 호황, 불황과 무관하게 제지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지회사는 담합을 일삼으며 끝없이 부유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제지회사들은 폐지 구매단가를 kg당 30원씩 내리고 종잇값은 40% 올려받았다. 결국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돼 벌금을 받았다. 한 제지회사는 벌어들인 수익의 약 1.3%만 벌금으로 내면 됐다. 제지회사의 입장에서는 불법을 저질러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게 이득인 셈이다. 대형 제지회사 일부가 한국 골판지 시장의 80% 넘게 싹쓸이하고 있다. 독과점 산업 체제 앞에서 폐지수집노인, 고물상, 압축장은 무력할 뿐이다.

고물상, 압축장의 이윤은 폐지수집노인의 일당에서 나온다. 고물상, 압축장은 착취하면서 착취당한다. 고물상은 폐지수집노인에게서 사들인 폐지에 중간이윤을 붙여 압축장에게 판다. 압축장은 제지회사가 제시하는 금액에 맞춰 폐지를 넘긴다. 이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과 제도가 부족하다. 허 교수는 “고물상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격을 측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압축장도 마찬가지다. 폐지수집노인의 일당이 열악한 이유다.

폐지수집노인의 수입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부산, 대구, 익산 등지에서는 50원, 원주 등 강원도 등지에서는 6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서울은 30~40원으로 타 지역에 비해 저가에 거래되는 편이다. 허 교수는 “고물상, 압축장에서의 유통가격은 폐지수집노인의 관점이 아닌 제지회사와의 관계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고물상이 낮은 가격을 불러도 돈을 받고 나올 수밖에 없다.

고물상은 도심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폐지는 지난 2010년 환경부가 개정한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기물로 규정됐다. 이에 고물상은 주거지나 상업지에 위치할 수 없으며 쓰레기, 분뇨 처리 설비가 가능한 잡종지에만 입지할 수 있다. 도시 재개발도 고물상 소멸을 가속했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고물상 몇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지도상에서만 모습을 보일 뿐 폐허가 된 곳도 있었다. 고물상 관계자 B씨는 “재개발이 되며 근처에 비싼 아파트들이 들어섰다”며 “주민들은 고물상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면서 구청에 민원을 넣는다”고 했다. 

고물상 소멸이 폐지수집노인과 고물상의 갑을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고 대표는 “도심에 남아있는 고물상이 많지 않다”며 “폐지수집노인이 갈 수 있는 고물상은 한정적이라 해당 고물상이 가격을 과도하게 낮춰도 그곳에서 거래해야한다”고 했다. 입지공간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고물상 수가 적은 서울의 단가가 가장 낮은 이유다. 폐지수집노인 C씨는 “고물상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지 뭐···.”라고 말했다. 

고물상, 압축장의 이윤은 어느 정도일까. 고물상과 압축장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신촌 근방 고물상 대부분이 kg당 40원 정도에 폐지를 매입한다. 이를 압축장에 60원 정도로 판다. 압축장은 제지회사에 대부분 80원에 넘긴다. 고물상과 압축장은 20원 가량의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고물상 관계자 D씨는 “과거에 비해 폐지수집노인이 줄어 들어오는 폐지의 양도 적고, 단가도 너무 내려갔다”라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폐지 수출에 잘 안되어 그런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폐지수집노인, 고물상, 압축장 모두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들 간의 관계를 규정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 활동가는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게 정부 역할”이라며 “고물상, 압축장이 매입하는 최저선을 정해둬야 한다”고 했다. 폐지 최저가격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폐지 최저가격제는 폐지산업의 호황, 불황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폐지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폐지수집노인은 폐지산업의 상하구조와 무관하게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견진만 교수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견 교수는 “폐지수집노인이 최소한의 소득을 벌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라고 했다.

 

▶▶ 고물상에 폐지수집노인들이 수거해 온 폐지들이 쌓여있다.
▶▶ 고물상에 폐지수집노인들이 수거해 온 폐지들이 쌓여있다.

 

공공, 민간,
그리고 그 너머

 

“그/녀들은 정책과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문 앞과 골목까지 찾아와 방치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폐지수집은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들어 낸 변종의 직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서울연구원,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2015)-

폐지수집노인의 보호를 위해 폐지수거업을 공공관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폐지수거업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재활용원료 수출 전문 회사 ‘밸런스인더스트리’로부터 제공받은 ‘2022 폐지수거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폐지수집노인 168명의 평균 나이는 76.5세다. 현재 정부에서 정하고 있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은 65세이다. 65세가 넘는 이들의 육체노동은 위험하기에 최대한 자제하기를 권고하고, 사회보장법령에 따라 국가가 이들의 생계를 보장해야한다고 본 것이다. 허 교수는 “그렇기에 폐지수집노인은 사회보장체계 안에서 보호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폐지수집노인의 노동권을 강화하기보다 복지 제도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년층의 생계가 폐지수집 없이도 유지되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견 교수는 “폐지수거업의 공공관리화가 노인 고독사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공관리화와 독거노인 지원정책, 고독사 예방 정책을 연계 도입하면 좋겠다”라고 했다. 

반대로 폐지수거업이 민간 영역에 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폐지수거업의 공공관리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다. 밸런스인더스트리 엄백용 대표는 “공공관리화될 경우, 홈리스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폐기물의 처리 및 청소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폐기물을 처리한다. 해당 법률에서 ‘시정촌***이 일반폐기물의 수집, 운반 또는 처분을 시정촌 이외의 자에게 위탁하는 경우의 기준은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폐지수거업을 공공관리화해 지자체에 등록된 사람만이 쓰레기를 회수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엄 대표는 “일본 길거리는 겉보기에 깨끗해졌으나 기존 폐지수집인이 일자리를 뺏겨 구석구석에 홈리스가 늘어났다”며 “이는 노동의지가 있는 사람에게서 일자리를 앗아가 홈리스로 만든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폐지수거업의 민간관리체제는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폐지수집노동자 현황을 분석한 고 활동가는 폐기물을 세금으로 처리하면 매년 국내에서 약 16억 원이 드는 반면, 민간에 남겨둘 경우 3억 3천만 원이 소모된다고 이야기한다. 

폐지수집업의 민간, 공공관리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들의 근무환경에 즉각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폐지수집업 정책과 제도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 ▲지원조례 개정 ▲재활용 정거장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폐지수집노인에 대한 통계가 바탕이 돼야 한다. 지난 2017년 자료를 끝으로 이들에 대한 공적인 통계가 없다. 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7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는 폐지수집노인을 6만 6천 명으로 추산한다. 전문가들은 이보다 많은 이들이 폐지수거업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며 집계되지 않은 빈곤층이 많을 것이라 한다. 허 교수는 “폐지수집노인의 현황과 실태를 지역사회 내에서 명확히 파악해야한다”며 “이를 통해 복지 제도의 혜택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서 ‘재활용품수거노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관련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통일된 규정 없이 지자체에서 자율적으로 ‘폐지 수거인 지원조례’를 마련해 시행한다.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발행한 ‘나라살림보고서, 세상을 바꾸는 조례 4호’에 따르면 광주, 울산, 충북, 경북, 제주는 관련 조례가 없다. 지원대상의 범위가 상이하거나 지역별 편차도 크다. 방한복이나 야광 조끼 지급처럼 안전한 노동환경 제공에 국한된 것도 문제다. 견 교수는 “폐지 수거인 지원조례는 복지 바우처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재활용정거장 제도도 있다. 지역사회 내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정거장을 특정 구역에 설치하는 제도다. 그리고 여기서 모은 자원을 재활용품 수집인에게 기부한다. 그러나 문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현시스템과 공존한다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 대표는 “대부분 편하게 문 앞에 내놓을 것이기에 재활용정거장 제도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해당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폐지수집노인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부연했다.

 

폐지산업이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로 고착된 지금, 이를 끊어낼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깨부수려는 노력은 여전히 미약하고 부족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압축된 종이만큼 질긴 제지회사에 닿지 못한다. 폐지수집노인은 오늘도 폐지를 줍는다. 아직 폐지가격은 40원이다. 

 

<다음 편에 계속>

 

 

글 김혜진 기자
socio_queen@yonsei.ac.kr
유동기 기자
socio_princess@yonsei.ac.kr

사진 이지선 기자
ljs22@yonsei.ac.kr

 

* 폐지: 본 기획에서 폐지는 폐골판지를 의미한다. 자원재생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담아 R.P.M(Recycled Pulp Materials, 재생제지원료)라고도 불린다.
** 육체노동 가동연한: 육체노동자가 근로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최후 연령을 의미한다.
*** 시정촌: 일본의 지자체.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