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화섭 문학상(희곡 분야) 가작]

달려라 주영

표지인(철학·17)

 

 

1.

 

나는 오늘도 달린다. 어제도 달렸고 내일도 달릴 것이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예전부터 나는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누구나 특기 하나정도 가지고 있다면, 나의 특기는 달리기일 것이다.

달리기 선수가 되고싶은 아니다. 그냥 달릴 뿐이다.

언제부터 달렸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항상 달리고 있길래 나는 역시 언제나 달리고 있구나, 한다.

그래도 굳이 기억을 거슬러 보자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같고, 아닌가. 그때가 아니었나.

솔직히 모르겠다.

대충 떠오르는 대로 말하겠다.

 

아주 어렸을 키우던 마리가 있었다. 하얗고 조그만 말티즈였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우리 가족은 개의 말년을 함께하지 못했다. 개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는 개가 도망치던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

 

살짝 열어둔 현관문 사이로 빠져나가던 개의 뒷모습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던 개의 뒷모습

 

지금도 종종 조그맣고 하얀, 그렇지만 망설임 없이 달리던 개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으로 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건… 달리는 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달릴 기회가 많았다.

사고를 많이 쳤기 때문이다.

 

엄마     주영이 너!!!

 

엄마는 도예가였다. 그 말인 즉슨 안엔 깨지기 쉬운 물건이 수두룩했다는 뜻이다.

깨트려야겠다고 작정한 적은 없었다.

그냥 공을 찼을 뿐이었다.

발엔 끔찍한 저주라도 걸린 건지 공은 항상

 

와장창창

 

엄마     주영아!!

주영     잘못했어요오오오오!

             나는 잡히지 않으려고 무진장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보다 빨리 달리게 되었고, 아빠보다도 빨리 달리게 되었다.

 

엄마     주영아?

아빠     주영아!

엄마     주영아!

아빠     잠깐 서봐!

주영     싫어요!

엄마     아니, 왜 이렇게 애가 빨라!

아빠     사고 거니?

주영     아니요!

엄마     숙제는 했니?

주영     네! 

아빠     공부는 했어?

엄마     시험은 봤니?

아빠     하고 노는 거니?

주영     몰라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달리기 실력이 빨라지자, 엄마 아빠도 다른 수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엄마는 자동차를 몰고 나를 뒤쫓았다.

 

머지 않아 나는 잡혔고 책상 앞으로 던져졌다.

 

엄마     끝낼 때까지 방에서 못나갈 알아라.

아빠     모르는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봐. 알겠지?

 

나는 공부를 해야했다.

엄마 아빠가 그걸 바랐다.

 

나는 엄마 아빠가 한눈 파는 틈만 노렸고, 기회가 보이면 망설임없이 뛰쳐나갔다.

뛰쳐나가던 하얀 개처럼.

그러나 개처럼 성공적이진 못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 아빠 손아귀에 붙잡혔다.

 

엄마, 아빠, 주영을 결박한다.

 

아빠     여보 나이스!

 

전화가 온다.

엄마, ‘잠깐’ 손짓한다.

 

엄마     여보세요? 누구 어머님이시구나. 네. 네.

             어머, 그래요? 누구 어머님은 좋으시겠어요. 누구가 알아서 하니까요.

             우리 애도 알아서 잘 하면 저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텐데요.

             네? 아 네네 그럼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아빠     누구 엄마?

엄마     응.

 

엄마, 잔소리 하려고 입을 연다.

 

순간 엄마 아빠 눈을 피할 있는 완벽한 방법이 떠올랐다!

 

주영     공부할게요!

             엄마, 아빠가 마음에 만한 성적 받아올게요!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공부를 하니까 예상치 못한 장점이 하나 생겼다.

바로 달라진 친구들과 선생님의 눈빛!

 

친구1  주영아 1번 문제 뭐했어?

주영     나? 3번했는데?

친구1  아 진짜? 2번 아니야?

친구2  아싸! 주영이 1번에 3번 했다고? 거봐. 내가 맞잖아.

친구1  아씨… 1번부터 망했어.

친구2  애들아 1번에 3번이래!!!!

 

선생님 등장.

 

선생님 다들 조용. 다들 시험 봤지?

친구1  아뇨. 엄청 어려웠어요.

친구2  얘는 1번부터 틀렸대요.

선생님 아직 채점도 했는데 답을 어떻게 아니?

친구2  주영이가 1번에 3번이래요!

선생님 그럼 3번이 맞겠구나!

 

친구들과 선생님은 부모님을 때마다 칭찬을 했다.

엄마 아빠가 안심하면 안심할수록 자유로워질 알았다.

그러나

 

엄마     주영이 조금만 노력하면 성적이 오르겠는데?

아빠     주영이 조금만 노력하면 전교 1등도 하겠는데?

엄마     성적이면 좋은 대학도 있겠는데?

아빠     성적이면 판사도 있겠는데?

엄마     판사뿐이겠어. 의사도 있지!

아빠     대통령도 있겠는 걸!

엄마     엄마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선생님 올해 우리학교에서 전국 수석이 나오려나? 주영아. 선생님들의 기대가 크단다.

             자. 오늘 이것으로 종례를 마친다.

             차렷 

             경례

학생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주번 남아서 청소 하고 내일 보자.

 

선생님 퇴장

 

친구1  우와. 주영아. 나 선생님이 저렇게 말하는 처음 봤어.

친구2  내 친구가 전국 수석이라니 진짜 멋있다.

 

멈출 모르고 날로 높아지는 그들의 눈높이.

이건 내가 바라던 아니었다.

 

그렇게 수능날이 찾아왔다.

 

 

2.

 

길거리에 수능 대박 푯말을 들고 있는 학생들.

 

수능을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나에게 공부란 엄마아빠의 눈초리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과가 좋던 나쁘던 수능 성적표라는 쪼가리는 그들이 내게 간섭할 건덕지가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능 고사장에 수도 없었다.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해야 수능을 피할 있을까 고민하며 고사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그때였다.

하얀 개가 눈앞에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개는 순식간에 나를 지나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개를 좇아 달렸다.

 

여긴 차가 빵빵거리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대도시니까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개는 유기견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개를 좇아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오랜만에 승부욕이 솟았다.

 

주영     빨간 불이다!

             나는 드디어 개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통체계에 대해 무지했던 개는 빨간 불인데도 차도를 향해 뛰어들었고

트럭이 나타났고

 

주영     돼!!!!!!!!!

 

개가 치였다.

 

 

수능 끝난 학생들이 지나간다.

 

학생     끝났다!

 

나는 수능을 보지 못했다.

개도 살지 못했다.

 

친구1  잘 봤어?

친구2  그럴 리가. 너는?

친구1  그럴 리가. 재수해야하나?

친구2  난 하향지원해서라도 거야. 재수라니 재수 없는 소리.

친구1  (주영의 눈치를 보고) 쉿!

 

나는 수능 시험지를 구경조차 못한 것엔 상심하지 않았다.

 

주영     오히려 좋아.

 

부모님은 내게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고민하는 하다가 사양했다.

선생님과 친구들도 나를 되게 안타까워했다.

모두의 만류에도 대학을 미련없이 포기할 있었던 이유는

 

친구1  아쉽다. 너라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도 있었을 텐데

친구2  그치만 주영이 진짜 멋지다. 개를 안고 병원까지 달려갔다며?

친구3  그것도 수능 아침에

친구1  너는 수능에 대한 기대도 컸을 텐데.

친구2  진짜 대단해. 멋있어.

친구3  이 시대의 영웅! 한주영!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능을 포기한 ‘시대의 영웅’이란 타이틀은

명문대생보다 멋진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은 변해갔다.

 

친구1  나 대학 붙었어!

친구2  나도! 너도?

친구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친구1  단톡방에서 벌써 미팅 잡자고 난리야

친구2  선배가 밥약하재!

친구1  난 다음 주에 당장 오티야!

친구2  오티가 지나면 신입생환영회가 있고!

친구1  그게 지나면 엠티가 있지!

             (주영이를 발견하고) 헉.

친구2  헉. 주영아 여기 있었구나. 미안. 우리가 시끄러웠지.

주영     아, 아니야. 괜찮아.

친구1  주영아. 근데 이런 하려고 했는데…

친구2  넌 재수 거야?

주영     재수?

 

선생님 주영아.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란다. 그렇지만

엄마     지금까지 공부했던 아깝지 않겠어?

아빠     주영아. 우리는 그날 그런 선택을 내린 너를 나무라는 아니란다.

선생님 세상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벌어질 있거든.

엄마     물론, 네 힘으로 바꿀 있는 일도 있어. 그러나 주영아.

아빠     힘으로 바꿀 없는 일도 있단다.

선생님 때로는 너만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해.

엄마     그러니까…

모두     대학 거니?

 

모두에게 나는 어차피 죽었을 개를 붙잡고 연연하는, 미련한 애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공부는 도피처 구실을 못하니

여기서 달려나가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전화가 온다.

 

주영     여보세요?

             아. 네.

             제가요?

             제가 그 대학에 붙었다고요?

             아…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엄마     누구야?

아빠     방금 대학이라고 그런 같은데?

엄마     당신도? 나도 들은 같아.

선생님 어머님 아버님. 저두요.

친구들 저희도요!

모두     누구야?

주영     수시로 지원했던 학교요.

             추가 합격이래요.

모두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축하해!

 

주영     어쨌거나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3.

대학생이 되고싶었던 적은 없었다.

애들이 선배, 밥약, 엠티, 뒤풀이같은 생소한 단어를 뱉었을 호기심이 일었던 사실이지만,

맹세코 그들이 부러웠던 아니었다.

학교, 학생, 시험, 공부는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그런데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다.

과도 국어국문과라서…

나는 속미인곡의 아름다운 한글 표현과 봉산 탈춤의 해학적이고 익살맞은 표현. 그리고 우리 형태소따위를 분석하고 있었다.

 

이십여 앉았던 책상에 앉아서, 재미없는 글을 읽으며 밤을 새고 있는데....

문득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영원히 책상 앞에 갇히는 아닐까하고 겁이 났다.

 

과거의 나도 여기에 앉아서 국어 공부를 했고

현재의 나도 여기에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니

미래의 나도 여기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주영     뭐야? 과거의 나, 너도 이거 공부해?

과거     이거 중간고사 시험 범위야.

주영     이것 봐봐. 나도 이거 한다니까?
과거     국문과 갔으니 겹치는 당연하지.

             방해하지 말아 줄래? 나 내일 시험이거든?

주영     알겠어…

 

주영. 주변을 살피다 미래의 나가 공부하는 내용을 살펴본다.

미래의 나가 자신과 똑같은 내용을 보고 있는 보고 깜짝 놀란다.

 

주영     미래의 나! 너는 이걸 하고 있어?

미래     국어 선생님이잖아. 이번 중간고사 시험범위 여기야.

주영     미래에 선생님 해?

미래     그럼. 엄마가 국어 선생님 하라고 했잖아.

주영     그럼 미래에 학교 다녀?

과거     학교만 다니겠냐. 미래에 맛없는 급식을 먹는단다.

미래     과거의 나. 네가 엄마가 해준 밥만 먹어봐서 아직 모르나 본데.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이다.

과거     젠장! 난 싸구려 스파게티 먹고 싶지 않았다구!

주영     이건 아니야.

과거     맞아. 이건 아냐!

미래     아니긴 뭘!

주영     이건 아냐!!!

 

주영, 달리기 시작한다.

 

미래     주영아! 어디가!!!

 

나는 달리고 싶었다.

달릴 살갗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내딛을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을 느끼고 싶었다.

몸의 진동을 타고 머리칼 끝이 엉키는 느끼고 싶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입안에 들어온 짭조름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이미 흘러간 과거와 예정된 미래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과거와 미래 주영이를 따라간다.

 

미래, 과거        주영아 어디가! 내일이 시험이야아아아아!

주영     저리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영, 과거와 미래보다 압도적으로 빨리 달린다.

 

나는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벚꽃이 벚나무 등장.

 

과거     돼!!

미래     위험해!

주영     벚꽃?

과거     벚꽃을 보면 놀고싶어진단 말이야!!!

미래     주영아 내일 중간고사가 있어!!!!

벚꽃     이름은 벚꽃,

             나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들 하지.

 

무작정 달려서 도착한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주영     핑크?

             핑크…

 

             (사이)

 

             핑크?

벚꽃     핑크.

주영     핑크는…

벚꽃     하트고

주영     하트면…

벚꽃     사랑이지.

 

사이

 

주영    

 

                  (사이)

 

             이거다.

 

사랑이었다.

아니, 봄이었다.

 

 

4.

 

대학생. 모두 공부할 거리를 들고 있다. 

 

대학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다?

삐빅

 

대학교는 연애하기 좋은 환경이다?

딩동댕동.

 

학생들 공부할 거리를 던진다. 장소는 술집으로 바뀐다.

 

모두     짠!

 

나는 행사면 행사, 동아리면 동아리, 미팅이면 미팅

사람을 만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참석했다.

 

모두     무조건 필참, 앞참, 전참!

배우1  안녕하세요. 혹시 국문과?

주영     맞아요. 혹시 화공과?

배우3  네. 반가워요.

주영     저두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니까 어색하네요.

배우2  어색하니까 마시고 시작할까요?

모두     짠!

 

미팅보다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긴 했다.

 

미팅에서 동아리 뒤풀이 느낌으로 바뀐다.

 

배우1  뒤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우와아아아아

배우2  회장님 건배사로 시작해야하는 아닌가요?

배우3  맞습니다!

배우1  아잇 참. 창피한데…

배우2  모두 동의?

모두     동의!

배우1  그렇다면 어쩔 없지

             내가 이럴 줄 알고 얼마전에 기똥찬 건배사를 들었거든?

배우3  오올

배우1  청바지라고 알아?

배우2  아니? 뭔데?

배우1  그게 말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

배우3  헐…

배우1  왜? 이거 기발하지 않아? 청바지! 까먹어지지도 않아!

배우2  알겠어 알겠어. 그냥 넘어가자.

             모두 잔 들고

모두     짠!

배우3  이름이 뭐라고 했죠?

주영     저요?

             한 주영이라고 합니다.

배우3  아 맞다. 주영이. 과는 국문과라고 했죠?

주영     맞아요.

 

무렵, 나는 달리기 말고도 하는 분야를 찾았다.

바로 밀당.

도망치는 통달한 덕분인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다.

대체로 그들은 나의 얕은 수작에 넘어왔다.

성공률? 나쁘지 않았다.

비법은 딱히 없다.

 

배우3  우와. 국문과 멋있어요. 저는 공대라서 읽을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책 많이 읽어요?

 

첫째. 나를 적게 보여주고, 화제를 상대로 돌린다.

 

주영     에이. 저는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공대라니 엄청 멋있어요. 무슨 공대 다녀요?

배우3  전기전자요.

 

둘째, 재미없더라도 상대의 말을 최대한 경청한다.

            

주영     우와. 진짜 멋있다. 전기 전자면 우리 생활과 완전 맞닿아있는 아녜요?

배우3  그렇죠. 지금 주영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부터, 여길 비추는 전구까지 어디 하나 전기 전자가 빠지는 곳은 없죠. 저기 스위치 보이죠. 저 스위치를 누르고 천장에 달린 전등 불이 켜질 때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수한 전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니까요.

주영     와! 그건 생각해본 없어요!!! 진짜 너-무 신기하다!!!!!

 

웃음을 곁들이면 좋다. 그래도… 바보같진 말자.

 

주영     하하하하 호호호호 하하하하 호호호호

 

배우2  안녕하세요. 여기 정신 없죠?

주영     아니에요. 재밌어요. 재밌는 분들이 많은 같아요.

배우2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개라고 해요. 이름이 주영이라고 했죠?

주영     네. 어떻게 아셨어요?

배우2  아까 들었거든요. 이번에 신입 많이 들어와서 아쉬웠는데 잘됐어요.

배우3  그런 의미에서 할까?

         짠!

배우1  거기! 나 빼고 하는 거야!

배우3  너도 같이 하면 되지.

모두     짠!

 

셋째,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웃었다면, 잠시나마 표정을 풀어도 괜찮다.

적당히 엉뚱하게 굴면 특이하다고 착각한다.

 

배우1  주영 무슨 생각해요?

주영     네?

배우2  생각에 잠긴 같아 보였거든요.

주영     아, 별 아닌데.

배우3  뭔데요? 말해주면 돼요?

주영     아까 아무개 님이 말해주신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벽 안에선 전기가 흐르고 있겠지?

             우리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요.

             진짜 별 거 아니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눈부시게 아름답진 못하더라도 용모는 단정할 것.

 

주영     잠시만요?

 

주영 일어나, 머리, 옷을 정리하거나 화장을 고친다.

배우 3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영에게 다가간다.

 

배우3  여기 너무 시끄럽죠. 아이스크림이나 사러 갈까요?

 

번만 신경 쓰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많은 놈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나마 마음이 가는 사람을 고르면 된다.

 

주영     어. 아무개 삼. 왜 만나자고 거야?

배우3  할 있어서.

주영     말? 무슨 말인데?

배우3  어…

             그게 사실…

 

                  (사이)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물론 고백을 받았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니다.

사랑은 일시적인 도피처일 뿐이지, 영원한 도착점이 없었다.

나는 사랑으로부터 다음 사랑으로 계속해서 도망쳐야 했다.

 

주영     우리 그만 만나.

배우3  뭐?

             갑자기?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주영아? 주영아? 주영아!!!!!!!

 

주영과 배우3 퇴장.

주영과 배우 2 등장. 둘은 다정해 보인다.

그러나 무대 중간에서 주영은 배우 2를 밀치고 달려서 퇴장한다. 배우2, 뒤따라 달려서 퇴장.

 

주영 등장.

 

그러려면 절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져선 됐다.

나는 언제나 상대방의 눈빛에 각을 세우고 있었다.

 

배우1 등장. 배우 1의 옷이 후줄근하다.

주영과 배우 1 만난다.

 

주영     늦었네.

배우1  아. 미안. 지하철을 놓쳤어.

주영     지난 번에도 늦었잖아.

배우1  그땐 버스가 막혔어.

주영    

배우1  삐쳤어? 에이. 주영아 풀어. 응?

             케익 먹으러 갈까? 너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같더라.

주영     추리닝이네.

배우1  어? 아, 이게 편하니까.

주영    

배우1  그러지말고 너도 추리닝 입어. 이거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주영     너가 옷을 입는 알았는데

배우1  그랬어? 그런 모습에 반했구나?

             내가 신경 쓸 땐 또 확 쓰고 그런다.

 

사랑에서 도망치기 좋은 타이밍이 언제인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상대방의 눈빛이 변하면 그때 도망쳤다.

상대방의 눈빛에 내가 익숙해졌다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주영, 달린다.

 

배우1  주영아? 주영아?! 어디 가는 거야?

주영     따라오지 마!

배우1  뭐?

주영     아씨. 넌 눈치가 그렇게 없냐?

배우1  그게 무슨 말이야?

주영     그만 만나자고! 너 싫다고 이제!

            

주영, 달린다.

 

주영     아싸!

 

침묵

 

             공허했냐고?

            

             그런가?

            

             그럴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술자리가 있었고, 밤이 있었다.

            

             까짓거 또 만들면 되지!

 

문자 알림이 울린다.

 

배우1  주영아. 뭐해? 자니?

배우2  주영아. 나야 아무개. 잘 지내지?

배우3  주영아. 나 진짜 오랫동안 생각 많이 하고 보내는 거야. 나 그동안 반성 많이 했어… 그때는 네가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정말 후회가 많이 돼. 네가 그때 그런 했는지..

배우1  주영아. 난 네가 여전히 그리워.

배우2  네가 보고싶어.

배우3  우리 다시 만날 수는 없을까?

 

애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직도 잊지 못한 그들의 연락을 받을 때면 미안해지긴 했지만…

 

헤어지자고 말할 때,

그들의 상처받은 눈빛만큼 설레게 하는 없었다.

            

 

5.

 

벚꽃이 폈다 지기를 번이나 반복하고 나는 동안 애인을 만들지 못했다.

친구들은 번듯한 회사원이 되었고, 몇 친구들은 구질구질한 대학원생이 되었으며, 몇 친구들은 구질구질한 수험생이 되었다.

 

친구들 주영아. 너는?

주영     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뭐라도 되어야 하나?

 

나는 무엇이든지 도망치는 있었지만, 무엇을 위해 달려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말한 대로 선생님이 하고 생각했다.

 

친구     주영아, 여기야!

주영     어? 어! 미안 늦었지.

친구     아냐. 나도 도착했어.

주영     와. 너 옷이 장난 아니다. 멀리서 보니까 못알아봤잖아.

친구     왜? 이상해?

주영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진짜 어른인 같아서. 어른이 되었구나.

친구     아. 이게 학교를 다니니까 그렇게 되는 같아. 반에 말도 통하는 애기들이 서른 명이나 있거든.

주영     이번에 처음 담임 거라고 했지?

친구     그렇지. 처음인데 1학년들이야. 너 8살이 얼마나 어린지 기억 나지?

주영     어? 어. 8살이면 아니야?

친구     크긴 무슨. 아직도 울면서 등교하는 애가 있어.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주영     세상에…

친구     그리고 어젠 무슨 있었는지 알아? 애가 밥먹다 말고 오줌 싸는 있지?

주영     밥먹다가?

친구     그래… 애는 울고 애들은 놀리고, 여벌 옷은 없고. 진짜 아찔했다.

 

친구는 짜증난다는 말했지만 그의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몰랐다.

 

 

복통이 심하다던 엄마는 알고보니 초기 환자였고

65세가 정년이라던 아빠는 60세가 되기 전에 회사에서 나와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잊고 있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다시 나타났다.

 

과거의 나, 미래의 등장.

 

미래     자. 주영아. 우리 회의를 해보자.

과거     맞아. 이대로는 답이 없다.

주영     회의? 무슨 회의?

미래     무슨 회의라니. 우리 미래에 대한 회의지. 과거의 나. 주영이는 잘했지?

과거     주영이? 달리기를 잘했지. 맨날 달리던 기억밖에 없어.

미래     그렇지만 육상 선수가 되기엔 이미 너무 늦었잖아.

과거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가망 있진 않았을 거다. 잘 달렸을 뿐이지 빠르다는 말은 했다.

주영     맞아. 달리기 시합하면 맨날 넘어졌어.

             그것도 도망치는 한 가지 방법이었지.

미래     도망? 주영아. 우리는 도망이 아니라 달리기를 이야기하는 중이야.

주영     그게 그거 아니야?

과거     그게 그거라니!

주영     그럼 나는 달리기를 잘했던 아니라 도망을 쳤던 거야?

미래     주영아. 너 복잡한 이야기로 은근슬쩍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과거     맞아. 우리가 수작에 넘어간 어디 한두 번이니?

미래     그래서 너는 건데?

주영     너넨 잘했다고 그래!

미래     과거의 나는 열심히 공부했어.

과거     미래의 나는 계속 바뀌는 미래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미래     주영아. 너가 뭐라도 해야지…

과거     언제까지고 이렇게 없잖아!

주영     그렇지…

미래     그러니까 주영아

과거     앞으로 뭐할 거야?

주영     몰라.

             나 잘 거야.

             너네 둘 다 불 끄고 나가.

미래, 과거        어휴.

 

미래, 과거, 불을 끄고 퇴장한다.

암전

 

주영     도망쳐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어디로?

             (사이)

             아!

 

어둠 속에서 주영의 핸드폰만 반짝인다.

배우들 명씩 등장하면서 조명이 들어온다.

 

배우1  회사일에 치여 살다가 오랜만에 여자친구랑 데이트. #꿀맛같은주말 #이런 인생이지.

배우2  랩실 동기 지연이와 함께 맥주 캔. #한강은 #맥주 #맛집

배우3  시험 끝나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는 #시험 #ㅅㄱ

배우1  여자친구랑 새벽 드라이브 #나도 이제 #오너 드라이버

배우2  지연이랑 #교수님 뒷담으로 이어진 인연 #교수님 사랑해요

배우3  임용 기다리던 다이아 찍고 여친 생김. #1석2조

 

주영     뭐야 다들 바쁘게 사네.

             다들 여자친구 하나 씩 만들었구만.

             예쁘지도 않네.

             보는 눈은 여전하구만.

 

                  (사이)

 

             예쁜가?

 

                  (사이)

 

             아 몰라.

 

                  (사이)

 

             나는 이제 어쩌지?

 

전화가 온다.

주영, 발신자를 확인하고 의아해 한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주영     여보세요?

             동수?

             너 동수야?

 

 

6.

 

국문과 동기. 동수.

작고 못생기고 목소리는 모기새끼처럼 앵앵거린다.

그가 잘하는 것은 오로지 독서뿐.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금은 교수님의 충실한 조교로 살고 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다.

 

동수     주영아. 여기!

주영     아. 어. 야. 동수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동수     그러게. 너도 지냈어?

주영     나야 그럭저럭. 너 대학원생 됐다며?

동수     나야 그렇지.

주영     대학원 공부는 할만 해? 전공이 뭐야?

동수     고전문학. 야담 파고 있어.

주영     야담? 아. 너 역사 좋아했었지. 고전문학 수업 같이 들었던 같다.

             내가 너한테 엄청 물어보고 그랬잖아.

동수     맞아. 너 덕분에 나도 많이 공부했었지.

주영     덕분이라고?

동수     어. 너가 많이 물어봐주니까 대답해주려고.

             너가 되게 재밌는 질문 많이 해줬거든. 그거 생각하느라 공부 됐어.

주영     아. 어. 다행이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다.

동수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깜짝 놀랐지?

주영     아냐. 뭐. 오랜만에 동기한테 연락받고 반가웠어.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식 듣기도 힘들더라구.

동수     맞아. 너 다른 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

주영     아니 전혀. 너는?

동수     나는 대학원 친구들만 알고 나머지는 나도 몰라.

주영     맨날 붙어다니면서 마셨던 엊그제같은데.

동수     다들 어디로 사라져 그렇지?

주영     그러게.

             (커피를 마시다가) 뜨거.

동수     괜찮아?

주영     아, 어. 그럼 당연하지.

동수     여전히 똑같구나.

주영     어?

동수     덤벙대는 거.

             다른 애들은 다 변해도 너는 여전할 줄 알았어.

주영     아. 어.

 

사이

 

동수     좋은 뜻으로 말이야.

주영     그래?

             하긴. 이제 우리가 변해봤자 늙기밖에 하겠어?

동수     그렇게도 해석될 있구나.

             역시 너야.

주영     어?

동수     사실…

주영     어.

 

침묵

 

주영     어?

동수     어?

주영     무슨 있어?

동수     아니.

주영     어.

동수     아니야.

주영     어?

동수     있어. 그러니까. 어…

주영     어…

동수     그러니까…

 

                  (사이)

 

             나… 사실 좋아했어.

주영    

 

                  (사이)

 

             어?       

동수     되게 재밌잖아. 신기하고. 새롭고. 너랑 있으면 항상 즐거웠어.

주영     아… 어….

             (한 마시고 혀가 데인다) 뜨뜨

동수     가져다 줄까?

주영     아니야. 괜찮아.

동수     잠시만.

             여기.

주영     고마워.

 

                  (긴 사이)

 

             그런데 언제?

동수     어?

주영     언제 좋아했었는데? 나를?

동수     아.

             엄청 예전에

주영     예전에.

동수     그러니까.

             어…

             처음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같아.

주영    

             그랬구나.

동수     항상 바빠보였지만.

주영     그랬지.

             다 옛날 얘기니까.

 

침묵

 

주영     지금은?

동수     어?

주영     지금은 어때?

동수     어….

주영     옛날 얘기다. 그치?

동수     어, 아냐.

주영     어?

동수     그러니까.

             지금도야.

 

그날 우리는 1일이 되었다.

그는 내가 여자친구라고 했다.

수작을 부리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주영     동수야!

동수     어. 미안. 내가 늦었지.

주영     아니야. 빨리 가자. 배고프다.

동수     어디 갈까? 가고싶은데 있어?

주영     있긴 한데… 너 시간 있어? 빨리 들어가봐야하는 아니야?

동수     어…

주영     그냥 시켜 먹자. 오랜만에 과방 와서 좋구만.

동수     방학에 학교 오면 이런 점이 좋지.

             뭐 먹을래?

주영     당연히 짜장면이지.

동수     역시 그렇지?

             시키고 올게.

주영     그래.

 

유치한 질문이지만 내가 좋았냐고 묻고싶었다.

그는 책도 많이 읽고 복잡한 생각도 아니까 좋아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수     간짜장 먹을래 짜장 먹을래?

주영     간짜장. 

동수     간짜장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영     동수야.

동수     어?

주영     내가 좋았어?

동수     뭐야. 갑자기?

주영     궁금해서.

             엄청 오랫동안 날 좋아한 거잖아.

             도대체 내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을까 궁금해서.

동수     갑자기 말하려니까 부끄러운데.

주영     그래도 말해주라. 궁금하단 말이야.

동수     그냥

주영     뭐?

동수     그냥 좋아.

주영     웃기시네.

             좋은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지 마라.

             그런 거에 절대 안 속거든. 나는.

동수    

주영     응? 응?

             안 말해?

             안 말해줄 거야?

동수     알겠어. 알겠어. 말할게.

             그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주영     신입생 환영회?

동수     맞아. 그랬던 같다. 술자리였어.

             너랑 같은 자리였는데 기억 나?

주영     그랬던가?

동수     응.

             내가 말 수가 없어서 못어울릴까봐 엄청 걱정했거든.

             그런데 너가 나한테 말 걸어주고, 내 얘기도 물어봐주고 그랬다?

             또 너가 많이 웃어주고 그래서 엄청 편했어.

주영     아….

동수     또… 어 가끔 멍해질 있는 알아?

             뭔진 모르겠지만 너만의 세상으로 들어가버린 것 같더라.

             그러다가 누가 부르면 그때 막 정신 차리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귀여워. 

주영     그랬…구나.

동수     너랑 있을 가장 재밌고

             또 마음이 편해.

             그리고…

주영     그리고?

동수     너…

             엄청 예뻐

주영    

 

                  (사이)

 

             고마워.

             짜장면 아직 안 왔나?

동수     금방 온다 했는데?

             오 전화왔다.

             여보세요?
             도착했나보다.

             갔다올게?

 

동수, 퇴장

 

주영     생각보다 없잖아?

 

동수 등장

 

동수     주영아 짜장면 먹자!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도 얕은 수작이 먹히는 멍청이가 있어 다행이었다.

 

주영     그래!

 

 

7.

 

동수     너도 연락 받았지?

주영     무슨 연락?

동수     아무개 결혼한대.

주영     아아아 맞아. 이직하기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랬나.

동수     응. 너 그것도 들었어? 이 아무개도 결혼한대.

주영     아아. 정말? 학생 커플이라니 힘들겠다.

동수     유학 같이 가려나보더라고. 미국으로.

주영     아아.

동수     아무개도 결혼한다더라. 소개팅으로 만나서 결혼한다던데

주영     오. 잘됐네.

동수     우리는 언제 할까?

주영     어?

 

사이

 

주영     언제?

동수    

주영     어…?

동수     어….

             나는 당연히 너가 어…

주영     어…

동수     혹시 아직 부담스러운 거라면

주영     아… 아냐. 어…

동수     너도 당연히 생각이 있는 줄…

주영     아. 어. 그렇지. 뭐. 우리 나이대가 슬슬 결혼할 때기도 하고

동수     그렇지.

주영     그런데 서두룰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

동수     그냥. 그냥. 어.

             너랑 있는 게 좋으니까. 헤어질 때마다 아쉽거든. 나는.

주영     어. 그렇지.

동수     부담스러우면 생각해봐도

주영     아니. 그냥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야.

동수     진짜로.

 

사이

 

주영     시간이 늦었다.

동수     지금 가려고? 그냥 자고 가.  

주영     아니야. 나 내일 일찍 나가봐야 해. 어 그러니까.

동수     알았어. 괜찮아. 바래다 줄게.

주영     아니야. 너도 내일 아침부터 수업있잖아. 그러니까 혼자 갈게.

동수     괜찮아. 너네 집이 여기서 것도 아니고.

주영     아아아아아니야. 진짜 진짜로            

             너 여기있어. 나오면 죽는다?

             그러니까. 안녕.

             내일 봐.

동수     도착하면 연락 해.

주영     그럼. 당연하지.

 

집으로 돌아가는 방금 동수랑 나눈 대화를 되짚었다.

결혼에 대해서 번도 생각해본 없었다. 왜냐하면

 

주영     도망치기만 했으니까.

 

내가 결혼같은 무거운 제도를 버틸 있을까? 내가 그걸 버틸 만한 주제가 될까?

동수라면 괜찮을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신부가 되어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두껍게 화장을 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꽃을 들고 음악에 맞춰 딴따다다단 딴따다다단

세상에서 가장 길다란 끝에 보이는 동수의 얼굴

 

동수     주영아.

주영     으앗 깜짝이야.

동수     상상에 빠졌던 거야?

주영     어? 어… 그런가?

동수     가자.

주영     어, 어딜!!!!?

동수     먹으러. 가고싶은 있다면서

주영     아. 그렇지.

동수     여기로 가면 돼?

주영     응.

             저, 저기. 동수야.

동수     응?

주영     그냥 거기 가지 말자.

동수     어? 갑자기?

주영     그냥 가기 싫어졌어.

동수     그래. 그럼 어디갈까?

주영    

동수     먹고싶은 없어?

주영     …. 잘 모르겠어.

동수     그래? 어… 그럼. 저기 떡볶이 어때?

주영     떡볶이?

동수     응. 너 떡볶이 좋아하잖아.

주영     그렇지.

             근데 별로 먹고싶지가 않네.

             그냥 집에 갈래.

동수    

주영     아.

             미안.

동수     아니야.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주영    

동수     그럼 집앞까지 바래다줄까?

주영     뭐?

동수     어… 싫어?

주영     아니.

동수     그럼 왜?

주영     … 너 기분 나빠?

동수     내가? 아니? 왜?

주영     내가 마음대로 밥먹기도 싫다고 그러고 집에 가겠다고 하니까.

동수     어…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주영     ….

동수     주영아 무슨 있어?

주영     아니.

 

사이

 

동수     가자. 바래다줄게.

주영     어…

             아냐. 혼자 갈게.

             어… 미안해.

동수    

주영     괜찮아?

동수     너야말로 괜찮은 거지?

주영     물론이지

동수     어. 그러면 도착해서 연락해?

 

동수, 퇴장

 

나는 다시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문득 애가 나의 애인이라기보단.... 커다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애의 눈빛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는 사랑으로 반짝였지만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이 아니라 훨씬 무거운 무엇이었다.

 

다시 못말리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동수의 상처받은 눈빛을 보고싶다는 욕망.

도대체 이런 욕망이 드는 건지 이해할 없지만

그에게서 벗어나면 뭐라도 있을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영, 전화를 건다.

 

동수     여보세요?

주영     동수야. 나야.

동수     응. 잘 들어갔어?

주영     그럼.

동수     주영아. 무슨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말해줘. 쌓아두지 말고.

주영    

동수     뭐든지 괜찮으니까.

주영    

동수     주영아?

             듣고 있지?

주영     우리 그만 만나자.

동수     어?

 

침묵

 

동수     무슨 있었어?

주영    

동수     내가 잘못했나?

             그런 거라면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주영    

동수     주영아.

             혹시 결혼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어… 난 시간을 가져도 괜찮아.

주영     아니야. 그런 거.

동수     그럼 왜?

주영    

동수     주영아…

주영     동수야.

동수     응?

 

침묵

 

주영     네가 싫어졌어.

 

             그게 이유야.

 

 

8.

 

과거의 나, 미래의 나, 등 모든 배우가 등장해서 다같이 뛴다.

오이디푸스와 윌리 로만도 있다.

 

주영     나는 도망치고 있다.

배우     어디로부터?

과거     몰라.

배우     어디로?

미래     그것도 모르겠다.

 

주영     나는 그냥 달린다.

미래     마구 달리니까 기분이 풀리는 같기도 하고.

과거     심장이 벌렁 벌렁 뛰고 호흡이 가빠지고 피하지방이 흔들리고 발바닥이 지면에 닿았다가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목에서 피맛이 때까지

배우     나는 달린다.

배우     달린다.

과거     진짜로?

주영     도망친다.

배우     도망친다.

미래     또?

주영     또.

과거     어디로부터?

배우     몰라.

미래     어디로?

배우     몰라.

과거     언제까지?

주영    

미래     언제까지?

주영     몰라!!!

             나 그만 따라와!

             나 힘들단 말이야!

             날 좀 내버려 둬!

과거     야! 우리도!

 

미래의 나, 과거의 나를 말린다.

과거의 나, 미래의 퇴장.

주영과 남은 배우들 계속 달린다.

 

주영     안녕하세요?

오이디푸스       네.

주영     달리시는 중이지만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오이디푸스       간단하게 물어봐요.

                           나이 들어서 뛰는 게 예전만 못하니까.

주영     네. 그.. 어쩌다가 이렇게 달리시는 거예요?

오이디푸스       저는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립니다!

                           제 운명은 너무 비극적이거든요!

주영     아… 네….

             저. 안녕하세요?

윌리     네.

주영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윌리     간단하게 물어봐요.

             제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요. 언제 돌아버릴지 모르거든요.

주영     네. 그.. 어쩌다가 이렇게 달리게 되셨나요?

윌리     저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립니다!

             제 현실은 아주 비극적이거든요!

주영     아… 네…

 

                  (사이)

 

             저는 안 궁금하세요?

오이디푸스, 윌리        

주영     저는 궁금하시냐구요!

오이디푸스, 월리        

주영     저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도망치는 중입니다!

오이디푸스       젊어서 힘이 좋구만

윌리     저도 생각 함.

 

침묵

 

주영     저기요.

             언제부터 달리기 시작하셨어요?

오이디푸스       그건 몰라요. 눈 떠보니 달리고 있었어요.

주영     그럼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거예요? 계속 뛰면 끝엔 뭐가 있죠?

윌리     저길 보세요.

주영     네?

             헐

 

저승사자 등장.

주영은 멈추고, 오이디푸스, 윌리는 저승사자를 향해 달려간다. 퇴장.

 

주영     당신은 저승사자 아닌가요?

저승사자           맞다.

주영     그럼 죽는 건가요?

저승사자           죽을래?

주영     네?

저승사자           새파랗게 어린 주제에 벌써 죽음 타령이야.

주영     아. 그렇네요.

저승사자           다행이지?

주영     네?

저승사자           아직 죽을 같으니까.

주영     아.

저승사자           죽고싶어도 마음대로 죽는다.

주영     아까 그분들은 죽은 건가요?

저승사자           그렇지. 오이디푸스는 죽었다. 윌리 로만도 죽었다. 그러므로 너도 죽을 것이다.

주영     네.

저승사자           그렇지만 그들은 너와 달라.

주영     뭐가요?

저승사자           오이디푸스는 무려 왕도 되었고, 스핑크스가 문제도 풀었고, 역병에 걸린 마을도 구했다.

                           윌리 로만은 샐러리맨으로 잘나갔던 시절도 있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가족도 있지.

주영     …          

저승사자           했니?

주영     저요?

저승사자           그래.

주영     저… 저는…

 

전화가 온다.

 

저승사자           받아봐.

주영     네?

저승사자           네가 알아야할 소식이니까.

주영     아, 네.

 

             여보세요?

             동수?

             어. 동수야. 진짜 오랜만이다.

             나?

             나 뭐. 그럭저럭. 늘 똑같지.

             응…

             어?

             결혼?

             결혼한다고?

 

             우와.

             축하해.

 

             아니야. 진짜 축하해. 동수야.

             정말이야.

 

             난 정말 기뻐.

 

 

9.

 

과거의 나, 미래의 멍청하게 있다.

 

과거     안녕하세요

미래     안녕하세요

 

미래     저… 하나 물어봐도 돼요?

과거     물어보세요.

미래     여기가 어디에요?

과거    

미래     저보다 먼저 여기 계셨던 같아서요

과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이

 

미래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과거     그러세요

미래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죠?

과거     ….

             그것도 잘…

미래     그렇군요.

             그럼 그쪽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과거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미래     저와 다를 없는 처지네요.

과거     그렇죠.

미래     뭔가 아주 중요한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그걸 잃어버린 다음부터 전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뭘 하고있는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가 소리로 엉엉 울다가

             보세요. (미래의 나, 달린다.)

             이렇게 달리진 않고선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과거     오….

미래     이런 기분 드세요?

과거     저도 아주 중요한 뭔갈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요. 늘 들어서 답답하죠.

             제가요 달리기 하나는 정말 잘했거든요? 근데 중요한 시합이 있는 날엔 넘어졌어요.

             공부도 꽤 잘했는데 정작 중요한 시험은 못봤어요.

미래     긴장을 많이 하는 타입인가보다.

과거     아. 그게 아니라요. 아예 고사장에 들어가질 못했어요. 아니, 않았어요.

미래     아…

과거     어찌어찌해서 대학엔 들어갔던 같은데 졸업은 했고 연애도 여러 했는데 오래 가질 않았죠.

             결정적인 순간엔 꼭! 중요한 뭔가가 비어있어요.

             뭔가가 비어있다는 것만 알고 비어있는 뭔가가 뭔지는 몰라서 답답해죽겠어요.

미래     그렇구나.

과거     이젠 여기를 떠나고싶어요. 여기에  머물수록 답답해지는 같거든요.

미래     어디로요?

과거     그걸 모르겠네요.       

             빙빙 돌기만 하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어서… 떠나봐야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주영 등장.

오래 달린 탓에 지쳐있다.

 

주영     어? 어?

미래     누구…?

주영     와. 진짜 오랜만이다. 잘들 지냈어?

과거     누구세요?

주영     나야 주영이.

미래     주영?

주영     나야. 한주영! 나 몰라?

과거     한주영?

미래     그건 이름인데

과거     이름이기도 하죠!

주영     뭐야. 장난치지 말고.

             나 지금까지 달리느라 너무 힘들었어. 이제 쉬고싶단 말이야.

미래     지금까지 달리기만 했다고요?

             나도 그런데?

과거     나도!

주영     그래. 너네도 수고했겠다. 나 때문에 달리기만 하니까. 그 생각은 못했네.

             아무튼 난 이제 지쳤어. 이제 뛰겠어. 다리가 후들거리거든.

미래     아.

과거     기억났다.

미래     나도.

과거     현재로구나

주영     그래. 맞아. 현재, 나는, 지쳤어.

미래     지쳤다고?

주영     그래.

과거     도대체 너가 했다고 지친 거야?

주영     뭐?
과거     현재의 나. 너 때문에 미래의 나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미래의 나, 달린다.

 

과거     저렇게 갑자기 시도때도 없이 달려대고 있다고!

미래     나는 달린다! 어제도 달렸고 오늘도 달리는 중이고 내일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주영     아, 어…

미래     나만 이러면 다행이게? 과거의 나는 어떤 알아?

과거     결정적인 순간이 기억이 나!

             내가 뭘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 순간을 떠올리면 흔들리는 살의 무게, 목구멍에서 느껴지던 피맛,

             헝클어진 머리카락같은 거밖에 없다고!

주영    

과거     주영아. 나 이제 피맛같은 그만 느끼고 싶어.

미래     주영아. 나 이제 멈추고싶어. 힘들어 죽겠어.

주영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과거     사과는 됐으니 이제 말해봐.

주영     어?

미래     이제 거야?

주영     어…

과거     이제 거냐고? 뭐가 거냐고?

주영     나는 아무것도 하고싶지도 되고싶지도 않은데

미래     대체 왜?

             넌 미래에도 이렇게 달리고만 싶니?

             내가 고통스러워보이지도 않아?

주영     그건 아니지만

             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과거     변명같은 통해.

             네가 당장 선택하지 않겠다면 네가 갈 곳은 저기야.

주영     저기에 뭐가 있는데?

미래     직접 가봐.

주영    

             얼마나 깊은 거야? 아무것도 보여.

과거     그래. 저기에서 뛰어내리면 아무것도 해도 돼.

미래     머리 아프도록 생각할 필요도 없지.

과거     숨이 차도록 달릴 필요도 없고.

주영     그건 무서워.

미래     그럼 선택해. 이제 건지.

주영     그래야 해?
             난…

             난…

             난…

             잘 모르겠는데…

과거     때까지 선택하지 않으면 내가 밀겠어.

미래     맞아. 우린 너무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어.

과거     이제 여길 떠나고 싶어.

             난 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의 과거가 되고 싶어.

미래       미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의 미래가 되고 싶어.

주영     저. 저기..

             내가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응?

             그러지 말고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줘.

과거     생각할 시간? 지금까지 충분하지 않았어?
미래     과거의 나. 저 애의 수작에 넘어가지 마.

             눈물에 호소해서 우리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거니까.

과거     셋을 세겠다.

미래     하나

주영     과거의 나. 미래의 나. 너네까지 나한테 이러지  마.

과거    

주영     이제 외롭단 말이야. 나 이제 너네밖에 없어!

미래    

 

하얀 마리(개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연출하면 좋겠다)가 등장하여 절벽으로 달린다.

 

주영     뽀삐…?

 

과거의 나, 미래의 나가 주영을 민다.

 

주영     으아아아아아아악

 

암전.

 

 

10.

1장 장면

주영 웅크리고 앉아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라도 것처럼 겁에 질려있다.

얼마 시간이 지나고 몸을 살핀다.

주영, 자신이 멀쩡한 확인하고 안도한다.

흰색 말티즈(역시 개도 실제 개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를 바란다. 극 등장하는 모든 개가 실제 개가 아니길 바란다.)가 주영의 눈앞을 지나간다. 

 

주영     뽀삐야!!!!

             나가면 안 돼!

            

             옳지.

 

             이리 와.

            

             응?

 

주영, 웃고.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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