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당선작]

스물 두 번째 도로시

박초원(건축·18) 

검은 하늘에 도로시들이 흩어져 있다 고개 들어 눈을 마주치면 스물 두 번째 도로시가 찢어져 나온다 손을 내밀어 주세요 물색 눈동자가 차가운 뺨에 앉아 사그라든다 먼 행성의 건너편으로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생긴다 돌 속에 빛을 박아넣고 그 위에서 휘청이는 하이커들 한 손에 행성어 사전을 들고 수성이나 금성을 찾아 고꾸라지다보면 그 사이에 몇 번째의 도로시 자국이 있을 거였다 도로시는 새까만 하늘에 산개바람이 되어 날리고 있지만 가끔 차가운 손 끝에 눌리면 영원히 자국으로 남는다 배고픈 하이커들의 푸른 눈빛이 영원히 가장자리에 머문다 희미하게

 

안개 속에는 도로시에 관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수많은 손가락들이 늘어져 목놓아 도로시를 원하고 있다 물 말고 반지 말고 묽은 체리색 눈동자를 원한다 잠깐 반짝이고 사라진 후로 손가락들은 더 빨리 더 집요하게 움직인다 도로시는 수많으니까 목이 마를 때까지 마시고 당겨도 괜찮으니까 하늘에 고개만 들면 가득한 게 저 오래된 희미한 색들 빛 눈동자들이니까

 

이 행성의 하늘은 오래 전 궤도를 탈락했다 여러 색의 도로시들은 지금도 간혹 얇은 비명을 남기며 제자리를 찾아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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