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듀크대학교 댄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서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 합리화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의사결정을 할 때 비윤리적 결정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하는 소위 윤리적 실명 상태가 존재한다. 이러한 비윤리적 행동은 뇌가 스스로 기억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친 경쟁과 효율성 추구는 윤리적 실명 상태의 의사결정과 함께 부패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양산할 단초가 된다.

생명체 활동은 주위 생명체나 환경, 즉 영양물질과 같은 가용 자원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생명체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무한하지 않고 대부분 제한돼 있다. 곤충을 통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의 경우는 제한된 자원인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꿀, 꽃의 색, 꽃의 형태, 분비하는 휘발성 물질을 조작해 서로 경쟁한다. 마찬가지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은 다른 식물의 발아를 제한하고 물이나 영양물질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다양한 발아억제 물질을 분비하거나 뿌리를 고도로 발달시켜야 한다. 동물 또한 제한된 먹이, 공간, 배우자 쟁취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을 발전시켜 생존의 효율성을 최대로 높여야 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가장 잘 적응한 개체는 자신이 가진 유전체를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남길 기회를 우선적으로 얻음으로써 진화의 생명 사슬은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 생명체에게 경쟁과 효율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지나친 경쟁은 윤리적 실명으로 인한 부정과 부패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 문제점을 양산한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젊은이가 희망을 잃고 자살하며, 빈부갈등, 성별 갈등, 세대 갈등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때문인지 젊은이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자손을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경쟁이 심해지면 개체의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자손의 수를 줄이는 생물종의 특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기본 틀을 흔드는 불안 요소로 남게 돼 결국 국가의 지속가능성은 떨어지게 된다.

해결책은 생물체가 생태계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근원적 목표를 이해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생명 활동의 목표는 자기가 가진 유전적 실체를 다음 세대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생물종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기생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 회피와 공생을 통해 생존의 기회를 극대화한다. 생태적 지위는 특정 생물종이 생태환경에서 차지하는 생물학적, 지리적, 행동학적 상호작용을 포함한 생태계 역할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 환경에서 유사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 생물종은 먹이와 서식지를 대상으로 서로 경쟁하게 되고, 경쟁자들의 공존과 상생은 이용 자원 범위나 환경 제한 범위 내에서 가용 자원을 분배하거나 생태적 지위를 달리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숲에서 식물이 생육하기 위한 빛, 이산화탄소, 수분, 무기양분은 공간적으로 제한돼 있지만, 각자의 식물종은 경쟁의 한편에서 서식 지역을 나눠 생장하며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공멸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채택한다. , 생물은 동일 자원에 대한 종간 또는 종내 경쟁을 줄이기 위해 먹이, 서식처 등에 대한 서로의 생태적 지위를 분화시킨다. 마찬가지로 콩과식물은 토양에 서식하는 뿌리혹박테리아에게 그들이 번성할 수 있는 뿌리 내 공간과 탄수화물을 제공하고, 대신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 질소를 식물에 제공하는 공생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두 종이 모두 상생하는 체계를 만든다. 이처럼 숲은 다양한 동식물이 주위 환경조건과 함께 서로의 삶이 그물처럼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도록, 소위 생태계라는 협동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의 생태적 지위의 분화는 각자가 맡은 사회적 임무를 중첩되지 않게 하면서도 서로가 연결되게 구성해가는 것이다. , 전문적이고 독창적 영역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서로가 존중하고 상생하는 사회, 경제, 정치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경쟁은 특정 개체나 집단이 한정된 자원쟁탈을 위해 사회 생태적 다양성 또는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경쟁자의 차별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경쟁을 줄이려면 잠재적 경쟁자의 차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존중해야 하는데, 이는 생태계 안에서 생태적 지위가 분화하여 상생과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인간 사회 구조의 다양성이 점증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자연 생태계에서는 다양성이 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자원 이용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도 증진된다. 지난 2017년 경영자문 회사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가 수행한 Delivering through diversity연구 프로젝트에 의하면, 기업 이사회 구성에서 여성이나 인종적 다양성이 높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비교 그룹에 비해 기업의 재무와 지속가능성 성과가 더 높았다. ,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제품 시장 경쟁에 대한 협업적 대처가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대체전략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이다라는 디지털 매개 생태계 구축 개념을 제시해 지금의 사물인터넷 산업의 새로운 상생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전문분야 간 협업과 그에 따른 공통 목표의 구현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선 향후 미래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인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태생적으로 서열 경쟁을 하는 종이다. 어린 아이들도 서열을 나누곤 한다. 이런 특성을 볼 때 어느 정도의 경쟁은 인간의 본성이다. 경쟁은 자원 이용의 효율을 높이는 등 장점이 분명함에도 경쟁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과유불급이 된다.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해 상생을 버리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존엄성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제는 조화로운 생태계에서 인간이 사는 방법을 배울 때다.

지나친 경쟁으로 지치고 분열된 우리 사회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우리의 유산을 물려받을 미래 후손들을 위해,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혜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인식, 제도, 법률, 경제구조 등을 구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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