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서 편집국장 (경영·19)
김예서 편집국장
(경영·19)

 

'피의 월드컵’, 항간에선 이번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이렇게 부른다. 전 세계인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지구촌 축제는 어쩌다 이토록 잔혹한 오명을 얻게 됐을까.

카타르 월드컵은 여러모로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월드컵 92년 역사상 최초의 겨울 월드컵이자 첫 중동 월드컵이니 말이다. 한편 카타르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개최국이라는 평가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카타르에서 남아시아 5개국 이주노동자 6751명이 숨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사되지 않은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들까지 합하면 사망자 수는 이를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의 월드컵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카타르의 전체 인구는 290만 명. 인천광역시와 비슷하다. 30만 명가량에 지나지 않는 카타르 시민권자를 제외한 인구의 90%는 대부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경기장, 공항, 호텔, 철도, 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가 주도한 초대형 월드컵 프로젝트에 대거 동원됐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인권, 건강, 복지 문제가 제기됐다. 지난 2016년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 아름다운 경기의 추한 단면(The Ugly Side of the Beautiful Game)’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낮은 급여, 사기, 체불, 여권 압수 등 불법행위와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동자의 피로 물든 월드컵이라는 논란이 일자,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제발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향유하는 축구와 월드컵에 희생된 그들목숨은 철저히 이분화됐다. 카타르에 피의 월드컵이 있다면, 이곳 대한민국엔 피 묻은 빵이 있다. 불과 한 달 전인 1015,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끼임 사고가 발생한 당일, 같은 층에서 제조된 소스로 만든 샌드위치 4만여 개 전량이 시중에 유통됐다. 누군가의 배를 불릴 샌드위치는 누군가의 목숨을 갉아먹고 세상에 나왔다.

우리나라는 매년 2천여 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분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총 280명이었다. 그중 828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깔리거나 뒤집혀 사망했다. 이마저도 사망한 사람의 수만 헤아린 것으로, 재해자 수를 모두 합하면 12만 명이 훌쩍 넘는다.

이렇듯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 뒤엔 죽음의 그림자가 조용하고도 은밀한 형태로 드리워져 있다. 이젠 내가 먹는 빵이, 열광하는 축구 경기가, 사는 집이, 타고 있는 지하철이 죽음 위에 쌓아올린 허울 좋은 피의 산물이라는 것을 마냥 부정할 수 없게 됐다. 대신 이면의 부조리를 똑바로 응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싸하게 포장된 껍데기를 벗겨낸 후에야 비로소 피눈물이 빚어낸 심연을, 묵인돼 온 희생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상반기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446. 2022년에도 어김없이 10만여 명이 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 아플 것이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이상 나의 일상에 타자의 희생이 녹아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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