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재활전문가 김영호 회장을 만나다

재활은 병을 회복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중독의 경우에도 재활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독재활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인식과 제도는 부족하다. 중독재활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중독재활의 필요성과 과정에 대해 중독전문가 김영호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이자 한국중독전문가협회에서 회장을 맡은 김영호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경기북부센터의 운영위원장으로 역임하는 등 현재 중독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의 중독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청년 세대는 이생망*, N포세대**라는 표현들이 보여주듯 암울한 사회를 마주한 세대이다. 영끌*** 같은 방법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청년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쾌락을 찾는다. 그렇기에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이 청년층 사이에서 만연해지는 것이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행위를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즐김과 중독 사이에는 어떤 구분점이 있는가.

즐김과 중독의 가장 큰 차이는 강박이다. 즐김은 자신의 의지로 그만둘 수 있지만, 중독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기 어렵다. 중독된 일을 그만뒀을 때는 중독자에게 손상, 즉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건강한 즐김은 있어도 건강한 중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하지 않은 강박 증세가 즐김과 중독을 구분할 수 있는 요소다.

 

중독재활의 과정이 궁금하다.

중독재활은 총 4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해독이 이뤄져야 한다. ‘중독(中毒)’은 한자 뜻 그대로 사람에게 독과 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고, 우리는 그것을 해독이라 부른다. 해독 단계에서 따라오는 금단증상을 해결할 치료도 함께 이뤄진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중독자가 치료를 지속해서 받고자 하는 동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인 동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상담사와 의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단계는 재발 방지 훈련이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중독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다른 중독자들과 치료 모임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중독 없는 일상생활에 대한 학습과 중독 없는 일상을 스스로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바른 중독재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다.

 

알코올 중독재활과 도박 중독재활 사이에 차이점은 없는가.

도박 중독재활이 좀 더 까다롭다. 알코올 중독은 물질 중독이고, 도박 중독은 행위 중독이다. 물질 중독은 중독의 결과가 눈에 잘 보여 인지가 쉽지만, 행위 중독은 자신이 중독됐는지를 인지하는 것이 어렵다. 인지 후에도 도박 중독자들은 해독이 필요 없다고 느끼지만, 사실 도박을 그만두는 것 자체가 해독이다. 또 도박은 금단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도박 중독에서도 해독 단계는 중요하다.

 

중독자의 중독은 가족들에게도 상처가 될 것 같다.

중독의 또 다른 이름은 가족병이다. 중독자의 가족은 그의 건강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쉽게 닮아간다. 더 나아가 살아갈 이유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는 중독자가 중독에서 벗어나면 가족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러나 가족들도 돌봄이 필요하다. 가족들도 중독자의 재활과 별개로 직접적인 치료를 통해 상처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중독전문가협회는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한국중독전문가협회는 중독 당사자를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중독 당사자가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도박 중독자는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붙다 보니 치료조차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협회에서는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중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중독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알리는 데 힘쓰기도 한다.

 

중독자들을 향한 우리나라의 국가적 대응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중독재활에 있어서 아직 후진국이다. 인식과 제도 차원의 문제가 있다. 먼저 우리나라는 중독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당사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정책을 만들 때도 중독자는 결함이 있는 존재로 여겨져 논의에서 제외된다. 다음으로 제도의 실질적 부재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독 문제를 다루는 기본법조차 없다. 법이 없으니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과 전문가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중독 예방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필수도 아니며 파편화됐다 보니 결국 큰 효과가 없다.

 

국가의 대응이 부족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하나.

중독 문제를 다루는 기본법을 제정하고 중독재활을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재활 사업을 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다. 결국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중독자 중심의 재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독은 만성질환이자 뇌 질환이다. 효과적인 재활을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중독이 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이 어떤 병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지난 1995년부터 중독전문가로서 재활 치료를 해오며 느낀 것들이 있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독자들에게 더 좋은 동반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중독자 본인이 중독재활의 중심이 되는 것.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 중독은 결코 단순한 병이 아니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중독으로부터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과 국가적 제도가 중독재활의 좋은 밑거름으로 작용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글 강하영 기자
kang_hayeong@yonsei.ac.kr

<사진 본인제공>

 

*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의 줄임말로, 청년들이 자기 삶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조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
** N포세대: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등을 포기한 세대.
***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의 줄임말. 부족한 것을 부풀려 보이기 위해 없는 돈이나 물건 등을 끌어모은 모습을 희화화한 표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