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정책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보다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함께 산·학·연·관이 서로 협력하여 최적의 혁신여건과 수준높은 생활환경을 갖춘 새로운 차원의 미래형 도시입니다.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

지난 2005년, 대한민국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했다. 산업·학계·연구기관·관공서가 협력해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지방 도시로 이전시켜 해당 권역의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육성할 계획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150개가 넘는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위치를 옮겼다. 강원도(원주 혁신도시)부터 전라도(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그리고 제주도(제주 서귀포 혁신도시)까지 총 10개의 혁신도시가 출범했다. 그러나 혁신도시가 과연 ‘균형발전’을 도모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충북혁신도시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소비자원 본사.
▶▶ 충북혁신도시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소비자원 본사.

 

공공기관은 이전했지만··· 정주환경*이 미비하다

 

기자는 혁신도시의 모습을 담고자 지난 17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위치한 충북혁신도시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국가기술표준원, 법무연수원 등 11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해 있다. 출범 당시 서울과 가장 가까운 혁신도시로 수도권 인구가 일부 이주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오전 11시 경 기자는 충북혁신도시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엔 10명 남짓한 승객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표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지 않은 듯했다. 직원 없는 매표소는 텅 빈 채, 무인 발권기를 이용해달라는 팻말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 방금 떠나온 동서울터미널의 북적거리던 모습과 대조됐다.
터미널을 나서자 상가와 오피스텔이 먼저 보였다.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소비자원의 건물도 눈에 띄었다. 5분쯤 걷자, 충북혁신도시의 중심가인 ‘원중로’가 나왔다. 중심가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거리엔 임대 현수막이 가득했다. 폐업해서 불이 꺼진 점포도 다수였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지만, 근처 식당과 카페는 한산했다. 충북혁신도시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60)는 “정주환경이 좋지 않고 이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 상권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며 “혁신도시가 처음 개발될 때 일부 투기 세력이 땅값과 임대료를 높여 분양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15년부터 계속 비어있는 상가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오가 넘도록 원중로를 돌아다녔음에도 거리는 한적했다. 명찰을 매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든 공무원들을 간간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혁신도시에서 만난 주민들은 미비한 정주환경에 불만을 표했다. 교육, 의료, 교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충북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어린이집 교사 B씨는 “학교가 충분하지 않아 대부분의 학급은 과밀 상태다”고 말했다. 충북혁신도시에 3년째 거주하고 있는 C씨 역시 “혁신도시 내에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대중교통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자가용이 없으면 이동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생활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B씨는 “혁신도시 내에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고 특히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정주여건의 어려움은 비단 충북혁신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대학교 김갑성 교수(공과대·도시공학)에 따르면 “대부분의 혁신도시가 기존 도시 내에 조성되지 않고, 외곽에 만들어져 편의시설이 미비하다”며 “주말이나 야간에 전부 서울로 올라오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도시만 남고 사람은 없는 ‘유령도시’가 되는 셈이다.

 

▶▶ 충북혁신도시의 중심가 '원중로'의 상가는 공실이 많아 임대 현수막이 즐비했다.
▶▶ 충북혁신도시의 중심가 '원중로'의 상가는 공실이 많아 임대 현수막이 즐비했다.

 

혁신도시, 공공기관도 어렵다

 

혁신도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150여 개의 공공기관이 각기 다른 지역으로 이전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행정 비효율을 초래했다. 지난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직원들의 출장 횟수는 2013년 65만 6306회에서 2015년 84만 1997회로 28.3% 증가했다. 출장비 역시 2013년 526억 4100만 원에서 2015년 716억 9200만 원으로 36.2% 늘었다. 협력이 필요한 공공기관이 서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다 보니 출장과 이동에 드는 비용이 증가한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이 신성장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단국대 도시재생·부동산학부 김현수 교수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에 따라 신성장산업은 광역교통 여건이 좋은 대도시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 정책은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김현수 교수는 “신성장 공공기관을 무작정 지방에 이전한다면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전된 공공기관의 직원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충북혁신도시의 공기업에 재직 중인 D씨는 “혁신도시의 정주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출퇴근을 선택하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가족이 있다면 정주환경이 중요하기에 혁신도시로 이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충청북도 혁신도시발전과 장성건 주무관 역시 “공공기관 직원의 상당수가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며 “출퇴근을 희망하는 직원을 위해 38대의 출퇴근 버스가 매일 충북혁신도시를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이 많아야 하지만 출퇴근하는 직원이 많다 보니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혁신도시, 혁신하려면

 

정치권에선 ‘혁신도시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 2018년엔 60여 개의 공공기관을 추가로 이전하는 계획이 수립됐고 국토교통부가 혁신도시 시즌2의 목표와 대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존 혁신도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새 혁신도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정주여건의 개선 ▲도시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추진 ▲산· 학·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갑성 교수는 “새로운 정주환경이 정착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혁신도시의 정주환경은 여전히 정착하지 못했다”며 “정주환경이 미비해 출퇴근을 하는 경우 생활비와 교통비가 이중으로 지출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도시의 성장을 위해 “부족한 편의시설 확충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장 주무관 역시 혁신도시의 정주여건이 부족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정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복합혁신센터, 스포츠센터 등의 건설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고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는 등 노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는 것이 장 주무관의 설명이다. 그는 “진천군과 음성군의 예산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정부의 꾸준한 재정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의 특성을 고려해 혁신도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북혁신도시처럼 인근에 정주여건을 갖춘 대도시가 없는 경우, 정주여건을 갖추고 도시의 기능을 수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김현수 교수는 “혁신도시 중에서 대도시와의 접근성이 양호한 입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했으나 외곽의 혁신도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갑성 교수 역시 “기존의 대도시 인프라와 연계해 새로운 금융의 허브로 떠오른 부산이 혁신도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며 “기존 도심이 쇠퇴하지 않도록 기존 도심에 혁신도시를 만들거나 이들의 인프라를 활용하도록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혁신도시처럼 두 개 이상의 시·군에 걸쳐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경우, 더욱 세심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장 사무관은 “충북혁신도시는 두 개의 군(진천군·음성군)에 걸쳐서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문제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두 군의 행정 시스템이 분리돼 있기에 음성군 주민은 진천군의 우체국이나 동사무소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양쪽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과 행정시설을 중복 투자해야하는 문제점도 있다. 장 사무관은 “혁신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작동하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시·군에 하나의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그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사전에 행정 시스템을 통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학계와의 협력은 혁신도시가 성공하기 위한 열쇠다. 김갑성 교수는 “앞으로의 혁신도시는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것을 넘어서 공공기관을 바탕으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교수 역시 “성장거점을 조성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혁신도시에 함께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을 주도로 지방 도시에 특정 산업을 발전시키는 ‘기업도시’ 정책이 혁신도시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 사무관도 기업, 대학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그는 “충북혁신도시에 에너지 분야의 산학융합 단지를 조성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근처 대학의 에너지학과, 20여 개의 에너지 관련 기업, 산업단지가 서로 협력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사무관은 “충북혁신도시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부족한 점도 많이 보였지만 산학협력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혁신도시만의 역할과 잠재력도 충분히 체감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사후적인 지원과 꼼꼼한 정책계획이 필요한 이유이다.

 

 

글 김병훈 기자
kk2im@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 정주환경: 개인이 살아가는 주거지와 주변 생활 환경.
** 신성장사업: IT, BT 등 첨단산업과 연구개발 공기업, 혁신기술로 성장하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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