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조명하는 사람, SBS 윤춘호 논설위원을 만나다

SBS 윤춘호 논설위원은 인물 탐구 기사 ‘그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그사람’은 단순한 인터뷰 기사가 아니다. 한 인물에 대한 깊은 관찰을 토대로 하는 인물 탐구 기사다. 그의 글에는 인터뷰 대상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정책에 가려진, 언론 프레임에 가려진,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려진 ‘그사람’을 드러낸다. 그의 글은 탁월한 문장력으로 독자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글에 사람을 담는 그를 담아봤다.

 

▶▶ SBS 윤춘호 논설위원.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는 현재 인물 탐구 기사 '그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 SBS 윤춘호 논설위원.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는 현재 인물 탐구 기사 '그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그사람’의 인생

 

민주화, 학생운동, 진보로 대표되는 386이념의 포로로 살아왔다.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지난 1980년대에 학교에 입학했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으나, 당시의 학생사회에서는 학생운동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며 “당시 학생사회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기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놈’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맥주만 마셔도 ‘서양 문물을 좋아하는 놈’으로 취급 당한 시절이었다. 용기가 없어 학생운동 일선에 참여하지 못한 그에게 학교는 견디기 힘든 장소였다. 
도망치듯 군대로 향했다. 입대날은 1987년 1월 16일. 그날 라디오에선 박종철 군이 ‘탁 치니 억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후로 평생 학생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는 동안 자신은 도망쳤다는 죄의식이다. 본인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첫 대답은 이러했다. “출생은 1965년, 학번은 84학번입니다. 전형적인 386세대를 살아왔고, 그 시대의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진아’라 표현했다. 제대 후 언론고시 열풍에 힘입어 기자를 준비했으나, 10번 이상 면접에서 떨어졌다. 지금이야 웃으며 “면접에서 떨어진 횟수로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 말하지만, 당시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기자가 된 후에야 SBS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힘들게 입사했음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부에 있으면서 방송기자로서의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는 목소리, 마른 체형은 그에게 콤플렉스였다.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느린 사람이다. 스스로도 “적응을 빨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친다. 조직에 빠르게 흡수된 것도 아니다. 동기들이 국장, 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그는 논설위원이 됐다. “논설위원은 승진의 계단에서 밀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며 “동기들에 비해 커리어가 좋은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기자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사회부 이후에 법조부에 있으며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비리를 보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아래 5.18)보도에서도 활약했다.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나에게 있어 기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원래 5.18에 관심이 많아 공부가 돼 있었다. 준비가 철저히 돼 있던 덕에 내가 생방송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지진아 이미지를 벗은 것과 동시에 운동권에 갖고 있던 부채 의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살았다.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세월만큼 작가로 살기를 꿈꾸고 있다. 읽는 것을 좋아하고 쓰는 것은 더 좋아하는 그에게 꼭 맞는 일이다. 논설위원은 작가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는 ‘길게 쓰기’를 목표로 설정했다. 방송 기자들은 1분 30초를 말하기 위해 원고를 작성한다. 이제 작가로서 책 출간을 위해 300쪽 정도의 글을 써야 한다.

 

글에 사람을 담는 일

 

사람을 담기로 했다.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비례대표 1번에 대한 글을 썼다. ‘그사람’ 연재의 시작이다. 뉴스 프레임에 가려진 인물의 ‘사람다운’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또한 원고지 65매 분량의 글을 쓰며 긴 글을 쓰는 근육을 키우고 싶었다. 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했다. 이틀 이상 인물에 대해 탐구한 후 3~7시간의 인터뷰를 하면, 인터뷰 녹음본을 글로 옮기는 것에만 6~14시간이 걸렸다. 사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글을 쓰는 데에만 30시간 이상 걸렸다. 이 과정을 2주에 한 번씩 반복했다. 그는 말했다. “주말에 출근한 적이 다반사였다. 2주에 기사 한 편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자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답변하는 사람만큼 질문하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사람이 화제를 독점하거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을 지양한다. 동시에 말을 지나치게 적게 하거나 주관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지양한다. ‘그사람’을 보면 그의 이런 생각이 드러난다. 인터뷰 대상의 주관에 필적하게 자신의 주관이 드러난다. 인터뷰 대상이 하는 말의 의미를 되살리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고 때론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터뷰 대상의 눈빛을 자세히 서술할 때도 있다. 

 

누적된 피로 탓일까, 아니면 일흔이라는 나이 때문일까, 조명으로 가리고 분으로 덮었음에도 얼굴은 부숭부숭했고 피곤이 더께더께 내려앉았다. 좀처럼 웃음기를 보이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길을 이제 다 왔다는 안도, 여유, 홀가분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재임 5년 기간이 온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섭섭함과 아쉬움,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이 사람을 지배하는 듯했다. 
-[그사람] ‘그 자리’의 무게가 버거웠던 사람, 문재인-

글에서만 글쓴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인터뷰 기사는 인터뷰 대상의 사진만을 지면에 싣는다. 그러나 자신의 독사진도 ‘그사람’ 웹페이지에 싣는다. 자기 얼굴을 걸 만큼 글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놓기 부끄럽지 않다. 기자 직함이 없어도 글로 밥을 벌어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의 비결을 묻자 스스로 “일필휘지하는 천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대상에게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좋은 글의 비결”이라 밝혔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혹은 모두가 자는 꼭두새벽에 계속해서 글을 쓴다. 몰입해서 글을 쓰다 보면 글이 글을 부른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지 80매 분량의 글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끊임없이 덜어낸다. 스스로 생각해도 효율적인 과정은 아니나, 자신만의 글을 쓰는 방법이다.
2년 6개월간 ‘그사람’을 연재하며 60명이 넘는 사람에 대해 글을 썼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사람에 대해서도 글을 썼고, 대중이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좋은 기사를 위해 인터뷰 대상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경륜’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세월이 쌓이다 보니 내 눈높이보다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며 “인터뷰 전에 항상 ‘최대한의 선의와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만나려고 합니다’라는 말을 항상 한다”고 전했다.
60명의 사람은 어떻게 정했을까. “지식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체 손으로 끄적거리고 입으로 더듬거리며 말한다”며 “전형적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 반성한다. 이어 “자신의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과 남성의 비율, 2030세대와 5060세대의 비율 역시 비슷하게 하려 노력한다. “글을 쓰다 보니 글의 대상으로 성공한 5060 남성 위주로 선정해 왔다”며 “젊은 여성의 비율을 좀 끌어 올리려는 목표가 있다”고 전했다.
인물 선정에서 균형을 맞추듯, 한 인물을 서술할 때도 균형을 맞추는 것이 기조다. 그래서 ‘내 편’에게는 더욱 시린 비판을 할 때도 있다. 예로 유시민 작가를 들었다. “386이념에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유시민의 공과 역할을 잘 안다. 공감대도 있다. 따라서 이 사람이 뭘 두려워하고 뭐가 약점인지도 알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 사람의 취미다. 그림 그리는 솜씨가 뛰어나다 보니 공룡 뼛조각 하나로 공룡을 열 마리쯤 그려내기도 한다. 천재가 아니면 절대 이런 솜씨 발휘하지 못하는데 뼛조각 하나로 열 마리의 공룡을 창작해내는 것이야 천재의 자유지만 문제는 천재의 그 상상력을 철석같이 믿는, 그가 그린 상상의 공룡이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믿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사람] 바람속의 먼지같은 존재, 유시민」-

기사를 쓰며 난관에 부딪힐 때도 있었다. 인터뷰 대상을 온전히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60명의 인터뷰 대상은 모두 생각이 다를뿐더러 서로 충돌할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조국 사태 이후의 유시민 작가와 진중권 교수다. 인터뷰 대상에 온전히 공감하며 글을 쓰지만, 2주마다 태도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럴수록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많은 준비량이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의 책을 더 읽고, 인터뷰 대상이 출연한 동영상을 통해 어투와 행동을 익혔다.

 

언론인의 글쓰기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이다. 글쓰기가 천대받고 과거와 비교했을 때 글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로 자기만족이다. 글쓰기를 하며 몰입하는 순간이 아니면 그런 행복감을 못 누린다. 둘째로 내가 쓴 글로 남에게 받는 인정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로 글쓰기를 통해 공동체를 향해 발언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스스로 글쓰기에 쏟는 노력을 ‘엉덩이를 바위에 비벼 구멍을 내는 노력’이라 표현한다. 그는 “글이 너무 안 써져서 정말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끝도 없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다독, 다상, 다작으로 대표되는 글쓰기 훈련에서 다작의 중요도가 80%다. 엉덩이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 노력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런 꾸준함이 결국 한 편의 글을 만든다.”
현직에 있으면서 언론의 변화를 체감한다고 한다. 언론 매체의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각 기자의 힘은 커졌다고 한다. 재직 중인 SBS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현재 SBS의 힘은 시청률과 함께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줄어든 힘은 SBS의 힘이지 기자 개인의 힘이 아니다. 과거에는 기자들이 매체의 힘에 의존하려고 했다. 지금은 기자 개인이 스스로 브랜드가 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에 따라 언론이 ‘글쓰기’라는 기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업계가 따라오지 못하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글쓰기라고 설명한다.

 

기자로서의 인생이 20개월 남았다. 기자 생활 이후 작가 생활에서 청년 시절을 기억하며 역사책을 쓸지, 지금처럼 사람책을 쓸지 정하지 못했다. 자기 삶에 자부심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사코 부정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관이 명확히 드러나는 글을 보나, 인터뷰 대상의 사진과 더불어 자신의 사진을 넣는 것을 보나 자기 삶에 대해 자부심을 충분히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글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김민서 기자
sarah01040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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