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의 시계는 아직도 멈춰있다

광복(光復). 1945년 8월 15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왔다. 되찾은 봄의 이면에는 원치 않은 강제징용과 전쟁으로 죽고 다치며,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비명이 파묻혀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의 핏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하근찬 작가는 소설 「수난이대」에 일제 침략 전쟁과 6·25전쟁을 관통한 부자의 아픔을 담았다. 주인공 만도는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됐다. 그의 아들 진수는 6·25전쟁에 참전한 상이군인이었다. 기자는 이들 부자의 상처가 묻힌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으로 향했다.

 

▶▶지난 2021년 새단장을 마친 하양역. 작지만 말끔한 모습이다.
▶▶지난 2021년 새단장을 마친 하양역. 작지만 말끔한 모습이다.

 

하양역에서 남양 군도로

 

만도는 하양역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 있으니 뇌리를 스치는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에도 그는 같은 장소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가 북해도 탄광이 될지, 만주가 될지, 남양 군도가 될지는 몰랐다. 다만 일본에 강제 징용된다는 사실만이 명확했다. 
기자는 만도가 강제징용의 아픔을 떠올렸던 하양역을 찾았다. 넓지 않은 역 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21년, 하양역은 신축역사로의 단장을 마쳤기에 소설 속 역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기자는 시간과 공간이 모두 변한 곳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만도의 얼굴을 상상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공포로 가득 찬 만도를 마주하기 위해 기자는 기차역 안 대합실로 향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고객 대기실 명패가 붙은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이 보였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만도의 공포 어린 긴장감은 없었다. 다만 목적지가 뚜렷한 기차표를 품에 지니고 있을 뿐.

만도가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바로 거기 눈앞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뚝이 하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긴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팔뚝이었다. 만도는 그것이 자기의 어깨에 붙어 있던 것인 줄을 알자 그만 으악! 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자국 전쟁에 인력과 물자를 조달하는 창구로 한반도를 이용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부터 1945년에 걸친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전쟁 중 군사력 부족에 시달린 일본은 국민징용령을 공포해 수많은 청춘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만도 역시 일제강점기 말 남양 군도로 징용됐다. 하양역에서 출발해 기차로 꼬박 사흘이 걸렸다. 남양 군도에서 비행기 격납고로 쓸 동굴을 팠다. 연합군의 폭격이 시시때때로 이어져 그들의 공습에 대비해야만 했다. 산속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 그가 팔 한쪽을 잃은 비극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며 발생했다.
남양 군도의 삶은 잔혹했다. 지난 2010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9년부터 2년간 5천명 이상의 한국인이 남양 군도로 징용됐다. 대부분이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 등에 혹사당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이후로는 총알받이로 내몰리기도 했다. 징용자의 60% 이상이 폭격과 굶주림을 이유로 숨졌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쟁의 아픔은 되풀이됐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 한반도에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탓이다. 지난 2014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행한 『통계로 본 6·25전쟁』에 따르면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중 60만 명 정도가 다치거나 숨졌다. 진수는 그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의 잔인함을 경험했던 만도는 아들 걱정에 늘 시달렸을 테다.
생사의 소식이 요원했던 진수가 살아 돌아온다는 편지를 보냈다. 6·25전쟁에 참전한 장병 중 다수가 죽거나 생사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찾아온 편지였다. 만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기 위해 하양 시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샀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시장은 지나간 세월만큼 달라져 있었다. 시장은 현대식 인테리어를 한 말끔한 모습이었다. 경관은 자못 달라졌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설레이는 마음은 만도와 비슷했다. ‘하양바다수산’에서 장을 보고 있던 이모(67)씨는 “남편과 저녁에 구워 먹을 생선거리를 사러 왔다”고 했다. 시장은 만도처럼 가족과의 한 끼를 그리며 걸음 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자는 하양 시장을 나와 하양역으로 향했다. 1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였다. 길은 큰 경사 없이 평지로 이어졌다. 만도는 70여 년 전 기자보다 앞서 하양역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고등어 몇 마리를 든 손에는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대합실에 도착한 만도는 그곳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태웠다. 그가 한쪽 팔을 잃은 상념에 잠긴 건 그 무렵이었을 테다.

꽤애액 기차 소리였다.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오는가 보다. 만도는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서며 옆에 놓아둔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중략)…

그러나 아들의 모습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저쪽 출찰구로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속에 두 개의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면서 걸어나가는 상이군인*이 있었으나, 만도는 그 사람에게 주의가 가지는 않았다.

…(중략)…

“아부지!”

…(중략)…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 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양시장은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변모했다.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양시장은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변모했다.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기자는 만도와 아들이 만난 하양역 터에 섰다. 이곳에는 각자의 이유로 발걸음을 바삐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근처에 4개 대학이 인접해 있는 탓에 과잠을 입고 들락날락하는 대학생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기자는 하양역 입구로 들어가는 한 대학생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최모(22)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 무궁화호를 타고 대구로 간다”고 답했다. 집으로 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진수의 외발에 실린 전쟁의 무게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소설은 진수의 이야기를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그가 전쟁 중 수류탄 파편에 다리를 맞았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진수의 아픔은 만도의 절망감을 통해 드러난다. 이처럼 소설 속 아버지와 아들의 고통은 전쟁의 상처를 통해 연결된다. 전쟁은 아버지의 팔 한쪽과 아들의 다리 한쪽을 빼앗아 갔다. 하근찬 작가는 일제 침략 전쟁과 6·25전쟁의 연속성을 이들의 다친 몸에 투영했다.

 

여전히 건널 수 없는
외나무다리 앞에서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이다. 진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중략)…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

…(중략)…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집으로 향하던 부자는 금호강의 외나무다리를 마주했다. 기자도 외나무다리의 흔적을 찾아 금호강으로 향했다. 하양역에서 걸어서 15분 남짓한 거리였다. 몸도 마음도 성치 않은 부자에게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다. 외나무다리는 전쟁을 겪은 이들의 삶에 따라올 고난을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와 진수는 힘을 합쳐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그러나 현실에는 건널 수 없는 외나무다리들이 있다. 생계의 어려움이 대표적이다. 6·25전쟁 참전용사는 전쟁 이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2000년 전까지 국가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을 행하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널 아버지는 없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는 지지부진하다.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참전유공자 중 65세 이상 대상자에게 월 35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80세 이상 생계곤란자의 경우에는 월 10만 원을 준다. 생계지원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부족한 액수다.

 

▶▶외나무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왕복 6차선의 하양교가 위치해 있다.
▶▶외나무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왕복 6차선의 하양교가 위치해 있다.

 

전쟁으로 무너진 일상은 쉽사리 되찾아지지 않는다. 하근찬 작가는 소설 수난이대를 통해 전쟁 앞에 한없이 무너져내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고자 했다. 진수를 기다리기 위해 대합실로 간 만도가 처음 마주한 것은 고장난 시계였다. 세월을 지나온 전쟁피해자의 시간 역시 그날에 멈춰있다.

 

 

·사진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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