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 교수(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이인성 교수(우리대학교 글로벌창의융합대학)

우리대학교가 올해 THE(The Times Higher Education) 세계대학평가에서 글로벌 78위, 아시아 사립대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많은 연세인들의 열정을 깨우는 쾌보였다. 이번 평가의 결과는 연세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 조치로 서로 격리된 채 각자의 위치에서 연구, 온라인 수업, 학교 행정에 쏟은 헌신이 이룩한 성과이기에 더욱 빛이 난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특정 목적과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합력해 소기의 성과를 낼 때 빛이 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회조직은 중장기 발전방안과 연도별 운영방안을 수립하며 고도의 성과를 추구한다.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방안으로 흔히들 더 많은 예산과 인력투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구성원들의 협업을 효율적으로 끌어내고 관리하는 조직체계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아무리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더라도 조직체계의 부실로 내부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기의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와 같이 구성원의 수가 수만 명을 넘어가는 거대 조직의 경우에는 적합한 내부 협업체계를 갖추는 일이 대학공동체의 원활한 운영과 지속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사회조직의 내부 협업이 워낙 중요한 과제이다 보니 조직모델은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경영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그중 현대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유형은 관료조직모델일 것이다. 관료조직은 업무 기능의 분업화, 행동의 표준화, 관리 통제의 집권화 등의 원칙에 근거해 사전 역할 분담과 책임 구분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수직적 조직체계이다. 근대 사회과학의 거두인 베버(Max Weber)로부터 합리적 행정체계로 찬사를 받은 관료조직 모델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체계로 활용됐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기업과 대학이 체계적으로 기능별 사업별 부서 조직을 구축하고, 매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세밀하게 목표관리(MBO)를 수행한다. 그러나 수직적 조직체계는 이제는 세상 변화의 속도와 복잡성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세상이 개방적이고 복잡해지면서 사전 계획과 세밀한 통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료조직의 사업계획들은 수립 즉시 노후화되고, 내부 부서들은 상호 간에 벽을 쌓은 채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통제적 목표관리가 조직 전체의 진취성을 해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근래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의 미래 조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사전 계획과 통제 지향적인 수직 조직에서 유기적 자율과 사후 평가에 기반을 둔 수평 조직으로의 변화가 시작된 지 오래다. 많은 첨단기업들은 더 이상 장기 사업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큰 비전과 전략은 공유하되 세부 운영은 치밀한 계획 대신에 현장 담당자의 자율에 맡기는 추세이다. 지식의 창출과 학습이라는 사회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도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며, 대학의 미래 조직도 혁신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때 수직적인 관료조직의 대안으로 팀 조직, 네트워크 조직 모형이 제시되었지만, 이제는 생명조직 모델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생명체야말로 환경 변화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조직이고, 생명체의 조직이 자기조직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혁신하고 질서를 갖춘 유기체가 되는 모습에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명체 조직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인체는 하나의 수정란이 60조 개의 세포로 성장하는 동안 누구의 지시 없이 각 세포가 스스로 뇌세포, 장기 세포, 혹은 손가락 세포가 되는 자기조직화의 과정을 거쳐 인체를 구성하고 변화시켜 나간다. 인체의 세포는 생태계와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우리 몸을 지속해서 최적화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인체의 60조 개의 세포들은 각자가 전체 DNA 유전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대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생명조직의 핵심 요건으로 VIP(Value, Information, Profit)의 공유가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구성원 사이에 가치와 정보와 이익이 공유되고 자기조직화의 혁신이 발현되는 우리대학교를 상상해본다. 과거에는 구성원들의 VIP 공유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대학 전체의 클라우드와 개인의 모바일 기기에서 데이터가 공유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해졌다. 교내 여러 단위의 팀과 개인이 연세의 가치와 실시간 정보에 기반해 최선의 자기조직화를 꾀하고, 학교 본부는 사후 평가와 공정한 보상에 근거해 구성원들의 자기조직화를 지원한다면, 연세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기조직화와 공진화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한층 더 내실 있는 발전을 할 것이다. 그때에는 세계대학평가의 경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업조직의 창조적 파괴가 시작된 것처럼 대학의 조직혁명도 곧 본격화될 텐데 미리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선도적인 대학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