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장향미 연구위원과의 인터뷰

장향미(43)씨는 IT업계에서 16년째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지난 2017년까지 그에겐 업무와 일상의 경계가 없었다.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이다. 밤새 일하던 그는 몸이 아파도 회사를 탓하지 않았다. 되려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했다. 내가 강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라며 자책했다.

과로의 그늘은 오히려 그의 가족에게 더욱 짙게 드리웠다. 지난 2018년 그는 ‘과로자살’로 동생을 잃었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즉각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업무상 과로와 죽음 간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장씨는 과로로 세상을 등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세상에 풀어내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장씨는 저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를 펴내며 과로사로 남겨진 유족들의 경험담과 제언을 남겼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에 소속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과로에 얽힌 이야기를 더욱 들어보고자 지난 16일, 그를 만났다.

 

▶▶ 2018년 7월, 장향미씨가 동생이 근무했던 회사 에스티유니타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2018년 7월, 장향미씨가 동생이 근무했던 회사 에스티유니타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과로 자살,
입증책임은 유가족에게

 

어떤 죽음은 당사자와 유족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만 재해로 분류된다. ‘과로자살’이 그렇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전체 자살자 1만 1천776명 중 492명이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를 원인으로 세상을 등졌다. 장씨는 “그 중 과로자살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건수는 87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인은 과로자살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때문이다.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책임은 유족에게 귀속된다. 산업재해 발생 현장에 대한 정보가 없는 유족은 과로와 자살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 산업재해 신청 비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다.

 

Q. 유족이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A.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원인이 과로임을 밝혀내긴 어렵다. 유족은 피해자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알아도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안다고 해도 얼마만큼,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증빙할 자료는 회사에 있다. 그러나 회사는 과로사가 발생한 기업이 되기 꺼린다. 그래서 유족이 증빙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유족이 산재신청조차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Q. 신청하는 유족들은 어떻게 하나.

A. 산재 심사 기간은 몹시 길고 지난하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에서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과로사를 증명할 핵심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보니 신청 준비를 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공들여 신청해도 산재로 승인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 과정에서 유족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건강이 피폐해진다. 그럼에도 유족은 긴 싸움을 지속한다. 피해자의 죽음을 매듭짓고자 하는 일념에서다.

 

Q. 죽음을 입증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A.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선 산재로 처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현행 의료보험제도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며 의료보험 대상에서 환자를 배제하는 경우는 없다. 과로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재는 개인에게 주의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지우는 셈이다.

프랑스는 앞서 언급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산재로 처리한다. 이후 회사가 산재가 아닌 이유를 입증하게끔 한다. 혹자는 부정수급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수급이 우려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게 아니듯 부정수급이 우려된다면 이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방법은 있지만,
과로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장씨는 과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을 과로하게 할까.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발행한 「장시간 노동, 과로: 생존의 문제–생활임금보장 없는 노동시간단축은 현실이 되기 어렵다」에 따르면 회사는 인건비를 절감하면서도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인원의 근무 시간을 늘리는 방식을 택한다. 노동자는 이에 저항하지 못한 채 과로하게 된다. 과로를 당연시하는 기업 문화가 고질적 악습관으로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장씨 역시 “회사에서 늦은 퇴근과 장시간 근로가 이미 당연한 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대법원판결에서 처음 인정된 포괄임금제는 업무 특성상 추가근무수당을 명확히 집계하기 어려울 때 체결하는 임금 지급 방식이다. 「근로기준법」 제17조는 연장, 휴일, 야간 근무의 경우 근무 시간에 따른 수당을 별도로 지급할 것을 규정한다. 포괄임금제가 해당 규정의 예외상황을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추가근무수당을 명확하게 집계할 수 있는 직군까지 포괄임금제가 악용되고 있다. 장씨는 우리나라 대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이 사무직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가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등 원래의 목적을 벗어나 악용되고 있다.

 

Q. 포괄임금제가 어떻게 과로를 은폐하나.

A.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회사는 포괄임금제를 체결한 뒤, 직원의 초과 근로 기록이 남지 않도록 수를 쓴다. 근무 시간 기록을 위조하거나 초과근로수당을 신청치 못하도록 암암리에 압박을 가한다. 회사 내부 직원이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해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현 체제에 순응해야만 한다.

 

Q. 회사는 왜 포괄임금제를 채택하나.

A. 당연히 비용 때문이다. 기업은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업무량에 따라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를 악용할 때 인건비 지출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기업의 시선에서 포괄임금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묘책이다. 회사가 포괄임금제를 남용해 위법을 저질러 적발되더라도 피해가 크지 않다. 사법기관은 회사에 미지급수당만 추징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측의 입장에서 위법 행위로 얻는 기대이익이 손실 발생 위험보다 크기에 굳이 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

 

Q. 회사의 위법 행위를 제재할 방법은 없나.

A.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법규 위반에 대한 감독을 실시한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하는 감독관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2021년을 기준으로 근로감독관 1명당 900개가 넘는 업체를 관리 감독해야 했다. 과로를 감독하는 인력마저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감독이 이뤄지지 못한다.

 

Q. 주 52시간 노동제도의 시행으로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A. 주 52시간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이 52시간 안에는 최대 연장 근로 시간까지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연장 근로 시간까지 정규 근로 시간에 포함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주 35시간 제도를 시행한다. 35시간에는 정규근로 시간만 포함된다.

해당 제도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며 적용 범위를 한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80%는 5인 미만 사업장이며, 전체 재해 사망 사고의 20%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정작 이 사업장에는 주 52시간 노동제도가 가닿지 않기 때문에 사고를 실질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기업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데.

A. 인식 변화와 함께 기업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과로가 성실함의 지표가 아닌, 그릇된 근무방식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회사 내부에서 이러한 생각이 공유될 때, 기업도 행동에 나설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재택근무 활성화와 더불어 정시 근무 체제를 그 대안으로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주 4일제 도입도 추진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유럽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Q. 정부 대처에는 문제가 없나.

A. 산재보험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고 산업재해로부터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다. 이러한 복지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다. 그러나 정부는 몹시 시혜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 태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인식 전환과 더불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 회사는 철저히 이윤과 손실을 따져 움직인다.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손실이 이익보다 클 때 회사는 위법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사회는 “힘든데 왜 그만두지 않았냐”며 과로사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장씨는 말했다. “과로로 인한 죽음이 나의 문제라는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과로해 봤을 테다. 과로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함께 목소리 내는 건 나의 삶과 일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글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사진 제공 장향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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