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판매행위하며 버젓이 공공 전기 사용하는 새빛시장, 단속은 여전히 어려워

“여기는 장사 안 하는 건가요?”

 

서울 중구 동대문에 위치한 이른바 ‘짝퉁의 성지’, 새빛시장. 기자는 불이 꺼진 노란 천막 앞에 멈춰 서서 왜 장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상인 A씨는 “전기가 나가서 아직 장사를 안 하고 있다”며 “옆에서 전기공사 중이다. 1시간 뒤면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조금 이따가 방문하라”고 말했다. 천막 옆에는 7톤짜리 ‘긴급전기공사’ 트럭이 있었다. 한국전력 서울본부에서 나온 차량이었다.

 

▶▶ 전기공사 중인 한국전력 서울본부 직원과 한국전력 하청 업체 관계자들
▶▶ 전기공사 중인 한국전력 서울본부 직원과 한국전력 하청 업체 관계자들

  

가품 판매는 불법,
가품 노점은 합법?

 

기자가 방문한 날 새빛시장은 교차로를 중심으로 빛과 어둠이 엇갈려 있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앞에 늘어선 노란 천막은 밤 9시부터 환한 빛을 냈지만, 3번 출구 인근의 천막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3번 출구 쪽 상인 대다수는 어두운 천막 안에서 핸드폰만 만지작대며 공사가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왜 오늘 전기가 나갔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기공사 중이던 직원은 “정기 점검을 다니다가 기름이 새고 있음을 발견했다”며 “폭발사고를 예방하려고 급히 공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동대문역사공원역 2번 출구 앞을 시작으로 다닥다닥 붙은 채 들어선 가품 노점은 길이 끝날 때까지 늘어서 있었다. 새빛시장 매대에는 구X, 루이비X, 에르메X 등 갖가지 명품 브랜드 상품이 즐비했다. 종류 역시 다양했다. 모자, 외투, 신발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할 수 있는 물품은 물론, 가방이나 지갑 같은 액세서리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편 기자가 지갑을 들고 진품과 같은 디자인인지 묻자, 상인 B씨는 “지금 팔고 있는 상품 전부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과 겉보기에 똑같다”고 답했다. 조잡한 인조 가죽을 사용했지만, 디자인은 실제로 해당 브랜드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과 동일했다.

 

“상표권자는 지정상품에 관하여 그 등록상표를 사용할 권리를 독점하는 한편(상표법 제89조), 제3자가 등록상표와 동일ㆍ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ㆍ유사한 상품에 사용할 경우 이러한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상표법 제107조, 제108조 제1항)”

- 대법원 2021. 3. 18., 선고, 2018다253444, 전원합의체 판결 -

 

상표법에 따르면 가품 판매는 ‘불법’이다. 새빛시장에서 가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인들 모두 상표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가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합법적’으로 전기를 쓰고 있었다. 상인들은 한국전력공사에 전기 사용료를 내고 노란 천막을 밝히고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한전 관계자는 "상인들은 요금을 내고 전기를 쓰고 있다"며 “가게마다 전기 요금 측정기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새빛시장에 전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에 대비해 정기적인 보수공사까지 해주고 있었다.

새빛시장 가품 노점은 불법 영업행위를 벌이면서도 어떻게 공공이 제공하는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새빛시장 노점들이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허가 노점’이라는 사실이 있다. 지난 2016년 서울시 중구청은 ‘도로점용 허가계획’을 내면서 동대문 야간 노점 175개소를 끌어안았다. 동대문 야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 동대문 야간 노점 도로점용 허가계획(2016). 주요 허가조건에 법령상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된 품목을 취급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 동대문 야간 노점 도로점용 허가계획(2016). 주요 허가조건에 법령상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된 품목을 취급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당시 중구청이 가품 판매까지 허용한 건 아니었다. 중구청은 ‘법령상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된 품목 취급 금지’를 조건으로 도로 점용을 허가했다. 그러나 가품 판매 계획을 감춘 신청서로도 가품 상인들은 노점을 세울 수 있었다. 아울러 사후적인 조치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새빛시장이 ‘가품의 성지’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취급 금지 조건은 가품 판매에 이렇다 할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한편 상인들이 처음엔 신청서에 명기한 상품을 팔았다가 가품으로 판매 상품을 바꿨다는 지적도 있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가품 상인들이 처음부터 가품을 판매한 건 아닐 수도 있다”면서도 “현재 가품 판매가 지속되는 실정을 보면 사후적인 대처는 미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속할 사람이 없다…
가품 판매 근절할 대책은?

 

공공이 제공하는 전기가 가품 판매에 쓰이고 있지만, 한국전력 차원에서 무작정 전기를 차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엄연히 구청이 허가해서 운영하는 노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한국전력이 전기를 공급하고 있더라도 점용허가를 받은 노점에 대해선 문제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도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자는 새빛시장을 찾은 날, 경찰에 단속을 요청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입니다. 노점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명품 브랜드 제품을 팔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가품인 것 같습니다. 단속이 가능하십니까?” 전화를 받은 경찰은 “노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상표권자인 기업에서 요청한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단속은 어렵다”고 했다. 서 교수는 “경찰이 가품 단속에 나서기엔 인력 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심야 시간에 제한된 인원으로 치안을 유지하려면 가품 단속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중구청 역시 인력난으로 단속이 버거운 상황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중구청은 새빛시장, 남대문시장 등에서 가품 시장을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단속 담당 인력이 3명에 불과하다. 실효적인 단속 성과를 거두기엔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가품 단속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중구청과 경찰 모두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인력난을 해소할 시민감시단을 도입해봄 직하다. 정부에서 시민감시단을 임명하고 성과에 따라 포상금을 주는 식으로 가품 판매를 단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지식재산권을 침해당한 당사자인 명품 기업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며 “해외 명품 기업이 우리나라 가품 시장을 문제 삼으면서 사회 파장이 일 때, 정부의 단속 의지를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로 점용 신청서에 명기된 규칙을 어긴 노점에 대해 ‘옐로카드’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앞서 중구청은 도로 점용 신청서에 ‘허가조건을 위반할 시 점용하기를 취소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명기한 바 있다. 이 교수는 “규칙을 어긴 노점을 제재할 제도적 기반은 이미 있다”며 강력한 처벌 사례가 쌓이다 보면 가품 시장의 팽창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도로 점용 허가를 갱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 점용을 허가한 중구청이 노점에 갱신을 요구하면서 가품 판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 교수는 “중구청이 도로 점용 신청서를 갱신하면서 상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을 판매할 건지 명기하도록 할 수 있다”며 “도로점용 신청서 조항 내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인근. 노란 천막이 도로를 밝히고 있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 출구 인근. 노란 천막이 도로를 밝히고 있다.

 

기자가 새빛시장을 빠져나온 밤 11시, 새빛시장은 여전히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인파는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명품 브랜드의 지식재산권이 감춰져 있다. 이 교수는 가품 근절이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품을 처벌할 법적 기반은 이미 있다.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지 않다. 규칙에 근거해 제재한다면, 지식재산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사진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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