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유니온 창립자 권지웅씨를 만나다.

사람은 민달팽이와 같다. 날 때부터 집을 소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달팽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집을 가질 권리를 꿈꾸는 단체를 만들었다. 바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다. 지난 2,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집 없는 모든 이들의 집 있는 삶을 위해 힘써온 우리대학교 동문이자 민달팽이유니온 창립자 권지웅(34)씨를 만났다.

 

▶▶ 대학 시절부터 주거권에 관심을 가졌던 민달팽이유니온 창립자 권지웅씨.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했다.
▶▶ 대학 시절부터 주거권에 관심을 가졌던 민달팽이유니온 창립자 권지웅씨.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했다.

 

우리대학교 민달팽이
기숙사를 짓다

 

권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주거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우리대학교 47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할 당시만 해도, 청년 주거는 학생사회에서 다루는 이슈가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학생사회는 농민과의 연대나 통일문제 등 실제 학생들의 삶과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가 체험한 대학의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학교는 주거시설을 충분히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때 우리대학교 신촌캠 내 학교 기숙사는 무악학사뿐이었다.

부산에서 자랐지만 학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권씨에게 주거는 특히 민감한 문제였다. 그는 불안정한 주거환경을 직면하며 주거권이 시민의 보편적인 권리임을 체감했다. 따라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해 청년 주거 문제를 공약으로 다뤘다. 먼저 학내에 기숙사를 짓고자 했다. 교외로는 기숙사에 살지 못하는 대학생들을 위해 주거 대출을 만들자고 우리은행에 제안했다. <관련기사 16255총학생회 선거 후보 <(you)>선본을 만나다’> 움직임은 느리고 미약했지만, 민달팽이의 첫걸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Q. 주거권이란 무엇인가.

A. 주거권이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다. 지난 2015년에 만들어진 주거기본법에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주거권을 가진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Q. 왜 청년의 주거권이 문제인가.

A. 주거 빈곤율*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청년 주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빈곤 가구 실태 분석에 따르면 전체 세대의 주거 빈곤율은 지난 199546.6%에서 201511.6%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청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청년 주거 빈곤율은 31.2%에서 37.2%로 꾸준히 증가했다. 청년 주거 문제는 가만히 두면 없어질 문제가 아니다.

 

Q. 청년 중 대학생의 주거권에 주목해왔는데.

A. 그렇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생 주거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야만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월 40만 원씩 기숙사비를 내며 무악학사에서 지냈다. 하지만 대체로 2학년부터는 우선순위가 밀려 기숙사 추첨에서 탈락했다. 길거리에 나앉을 수 없으니 자취를 시작했다.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데 월세를 내니 수중에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남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일하며 주거비를 충당하다 보니, 교육권을 침해받는 것 같기도 했다.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으려면 주거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기숙사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A. 학생 수용률이 낮았다. 지난 2010년 기준 우리대학교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4.2%에 불과했다. <관련기사 16905기숙사, ‘언제’, ‘어떻게지을 것인가’> 학생 대부분이 자취를 위해 주거비를 반드시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주거비를 벌었다.

 

Q. 기숙사 신설 계획이 없었나.

A. 기숙사 신설 계획이 나오긴 했으나 민자 기숙사** 도입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2005년 당시 교육부가 민자유치 교육시설 관리 지침을 발표하면서 교내에 민간 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일었다.

 

Q. 민자 기숙사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나.

A. 비용 문제가 있었다. 민자 기숙사는 건축비용을 학생이 간접적으로 부담하는 꼴이다. 민간 업체가 들어와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학생들에게 민간 주택 월세와 비슷한 금액을 받는다. 먼저 민자 기숙사를 운영한 서강대의 경우, 21실임에도 불구하고 인당 약 월 40만 원을 내야 했다. 학교가 기숙사를 짓는 데 드는 재정 부담을 학생들에게 전가한 셈이다.

그래서 착한 기숙사 짓기를 학교 측에 요구했다. 착한 기숙사란 기숙사 건축비용 등을 학생에게 전가하지 않는 기숙사다. 기숙사는 학교의 소유물인데 학생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Q. 기숙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A. 냉소적이었다. 당시 총장실을 점거해서 교육 재정비 10억 원을 겨우 받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200억 원 이상이 드는 기숙사를 지어달라고 하니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지난 2011년부터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민달팽이유니온을 설립했다. 이 단체를 통해 학내에 기숙사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학교가 기부금으로 기숙사 우정원을 세웠다.

 

Q. 대학교 때의 경험이 시민사회운동으로도 이어진 것인가.

A. 그렇다. 일반 기업 취업과 시민사회운동 사이에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말, 지방 미분양주택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시 서울에는 살 곳이 없었는데, 지방에는 주택이 분양되지 않았다.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의 미분양주택을 찾아다니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보름을 예상하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1년 반 동안 미분양주택을 찾아다녔다.

 

세상 모든 빌려 사는 이들이 안녕할 수 있도록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지난 2019년도를 기점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동시에 주거 문제는 시민 모두의 문제로 부상했다.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시민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신화처럼 여겨졌던 내 집 마련이 모든 시민의 삶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저에는 집을 빌려 살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감각이 있다. 임대와 소유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형태의 전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임대는 나쁜 것이라는 명제를 내면화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 주거 공간을 급매했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거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생애 목표가 내 집 마련이라는 게 이상하진 않나고 물음을 던졌다.

민달팽이유니온의 다음 목표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다. 이들은 안전과 존엄이 집의 소유 여부로 배분되는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빌린 집에 살아도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린다.

 

Q.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나.

A.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 세입자들과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을 통해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는 원룸 관리비,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풍토 등 세입자의 권리가 침해받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 더 많은 상담이 진행될 수 있도록 청년 주거상담사 양성 과정을 만들어 청년 주거상담사를 양성했다. 기숙사 및 공공임대주택이 건립될 수 있도록 주민 간담회, 공공기관 간담회를 추진하기도 했다.

 

Q. 현재는 민달팽이유니온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A. 임대 주택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입자에게 월세는 매몰 비용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면 남는 게 없다.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이 시스템에선 세입자가 임차 형태로 월세를 내는 게 집값을 할부해 내는 것과 같다. 월세를 일정량 낸다면 세입자가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제도다. 월세의 성격을 매몰 비용이 아닌 투자 비용으로 바꾸는 셈이다.

 

Q.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 같다.

A. 그렇다.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의 자가 점유율은 단 1%도 오르지 않았다. 이 수치는 약간의 등락이 있더라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기존의 매매를 통한 소유 중심의 패러다임은 자가를 확보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40년간 실패했다면 다른 전략에 도전해야 한다.

 

Q. 다른 전략의 핵심은 무엇인가.

A. 점유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점유 중립성은 주택을 소유하든 소유하지 않든, 주거의 형태와 상관없이 중립적인 상태를 만든다는 뜻이다. 예컨대 지금 대한민국의 주거모델에선 소유자와 세입자라는 구분이 전부다. 이러한 이분법 안에서 세입자를 향한 차별이 존재한다. 세입자들은 집주인에 의해, 또 국가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점유 중립성을 실현하려면 빌려 사는 사람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집이 없어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집을 가진 사람에게도 안전한 사회다.

 

Q.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A. 주거 문제는 특히 시스템의 해결이 중요하다. 우선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소유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세입자가 돼 자신의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계획된 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이 많아지면 소득이 불안해진 시민들이 머물 수 있는 주거의 완충지대가 생긴다. 지금은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이 7%쯤 된다. 10% 이상으로 높아져야 한다.

 

Q. 세입자가 그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를 위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A.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는 점을 말해야 한다. 가령 이만큼 일해도 주거비를 벌 수 없다거나, ‘자취촌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 각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연결돼야 한다. 이야기가 연결되며 권리에 대한 담론이 사회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입자의 문제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다. 세입자 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를 개인의 고충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이끌어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권씨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거시적인 담론 사이에 놓인 일상의 얘기에 주목하자는 의미였다. 그렇게 그가 그렸던 변화의 물결은 지금도 일렁이고 있다.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모든 집 없는 이들의 안녕한 삶도 터무니없는 꿈은 아닐 테다.

 

 

글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송지혜 기자
shd0691@yonsei.ac.kr

 

* 주거 빈곤율: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의 비율. 주거실태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 민자 기숙사: ‘민간투자 기숙사’의 줄임말. 학교에 외부 민간 자본이 지은 기숙사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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