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대규모 인파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시민들은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헌법 제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로 돼 있다. 이번 참사에서 국가는 이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 행사에 주최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와 같은 단서는 책임회피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를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현 정부가 참조할 것은 헌법이 명시한 의무이다. 헌법 34조에 명시된 의무에는 그 어떤 조건도 달려 있지 않다. 재해의 유형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자연 재해이든, 사회 재해이든 정부는 끊임없이 그것의 발생 가능성을 살피고, 예방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재난이 가져올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재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리 완벽한 대비를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오는 재난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듯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예방 노력, 안이한 상황 인식, 정치정략적 이유에 의한 상황 오판 등 때문에 발생한 재난이라면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그것은 상황의 객관적 파악과 후속 조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사실 같은 달 열렸던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만, 행사를 주최한 용산구청이 안내원 배치, 도로 통제 등의 안전 조치를 해 사고가 없었다. 이번에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못했는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안전관리 매뉴얼 문제였다면 그에 대해 체계적인 보완이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매뉴얼을 적용하는 문제였다면 현장 대응 방식의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 외 다른 이유였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위무를 다하진 않은 정부가 애도 방식에 대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설정했다. 그리고 애도의 방식에 대해 과도하게 간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야당과, 시민과, 언론에게 정쟁을 중단하고 ‘애도’과 ‘추모’에 집중하라고 하였다. 정부가 말하는 애도는 과연 무엇인가? 시민은 정부가 설정한 방식의 애도를 하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받고 있다. 정부는 심지어 검은 리본에 글자가 있어야하느니 없어야 하느니의 문제까지 개입을 한다. 시민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통렬한 정부 비판으로 애도를 표현할 것이다, 정부는 그런 방식의 애도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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