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환 보도부 기자(QRM·21)
최제환 보도부 기자(QRM·21)

 

옛날 인도의 임금 경면왕(鏡面王)이 명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와서 맹자(盲者)들에게 보여주시오”

맹자들은 저마다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보았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는가?”
임금이 맹자들에게 물었다.

상아를 만진 사람이 대답했다.
“코끼리는 무와 같습니다”

머리를 만진 사람이 대답했다.
“코끼리는 돌과 같습니다”

꼬리를 만진 사람이 대답했다.
“코끼리는 밧줄과 같습니다”

 

불교 경전 「열반경」(涅槃經)에 등장하는 일화다. 여기서 코끼리는 부처를, 장님들은 무지한 중생을 가리킨다. 불교의 관점에서 이 일화는 ‘중생들이 부처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코끼리를 더듬는 맹인일지 모른다. 현실에서도 코끼리를 제대로 살피기는 어렵다. 정보의 홍수, 가짜뉴스, 진영논리, 확증편향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하나의 ‘팩트’를 두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주장을 늘어놓는다.

코끼리를 만지고 밧줄이라고 대답하는 행동은 어리석다. 그리고 이는 본인 생각만 옳다고 단정 짓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서 정답을 찾으려 한다. 자신이 내린 정답 이외의 설명은 전부 ‘오답’으로 치부한다.

현명한 사람은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겸손은 경청에서 시작한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야 코끼리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직접 본 것일지라도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사람이 코끼리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언론은 코끼리를 ‘조명’한다. 어디를 더 집중적으로 조명할지는 코끼리 전체를 보여준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언론은 정보를 ‘전달’한다. 기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것은 정보를 온전히 담아낸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세운 빌 코바치는 언론의 첫 번째 의무를 ‘진실 추구’라고 말한다. 기사 작성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학보사 기자로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기사를 썼다. 청소노동자, 강사 노조, 음악대 부조리 등 수많은 의제들이 나의 펜촉을 거쳤다. 기사를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객관성’을 잃지 않았는지 경계했다. 문제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객관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기사와 다른 글의 차이점을 만든다. 객관성은 닿을 수 없지만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수학의 극한 같은 개념이다. 기사의 존재 목적은 독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함에 있다.

사실 맹인들이 만진 것은 코끼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기사는 “맹인들이 말하길, 코가 길고 다리가 두꺼운 거대한 동물”이라고 서술할 뿐이다. 판단은 대중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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