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콘텐츠의 현주소를 짚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화면 아래로 내린다. 숏폼 콘텐츠(아래 숏폼)를 보기 위해서다. 국내 최대 다중 채널 네트워크 기업인 샌드박스 뉴미디어 트렌드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숏폼은 2022년 미디어 산업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다. 틱톡에서 시작해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에 이르기까지. 숏폼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

 

 

숏폼의 어제와 오늘

 

유례없는 콘텐츠 홍수 시대가 도래했다. 동시에 숏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광고총연합회 광고정보센터에서 발간한 ‘2021 숏폼 콘텐츠 플랫폼 보고서에 따르면 숏폼의 정의는 1~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다. 최근에는 영상의 길이가 더욱 짧아져 10~15초 이내의 영상까지 나오고 있다. 대체로 모바일 시청 환경에 적합한 세로형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초기의 숏폼은 전통적인 롱폼 콘텐츠(아래 롱폼)의 일부로, 10분 길이의 짧은 예고 영상이나 하이라이트 영상 등으로 제공됐다.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이성민 교수는 숏폼을 입구에 비유했다. 숏폼은 내용의 흥미를 돋우는 시작점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숏폼을 보고 관심이 생긴 사람은 롱폼으로 넘어가 상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숏폼 열풍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나타나고 있다. 처음 숏폼이 활성화된 플랫폼은 틱톡이다. 틱톡의 영상들은 중독성 강한 음악과 따라 하기 쉬운 안무를 통해 청년 세대의 호응을 끌어냈다. 권기수(교육·22)씨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쉽게 유행에 편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숏폼의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숏폼은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로 확산됐다. 틱톡의 흥행에서 숏폼 형식의 위력을 느낀 제작자들은 숏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에는 다음이, 지난 9월에는 네이버가 숏폼을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다.

숏폼 열풍은 여가시간의 활용 편리한 제작 과정이라는 장점으로 더욱 드세졌다.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이정엽 교수는 콘텐츠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오늘날 젊은 세대의 여가시간은 매우 쪼개져 있다고 했다. 숏폼은 이처럼 분할된 여가시간에 즐길 수 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김성철 교수는 미디어 산업에서 숏폼은 스낵(snack)과 같다고 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숏폼도 그렇다는 설명이다. 김민서(QRM·20)씨 역시 숏폼은 통학 시간에 간단하게 보기 쉽고, 중간에 내용이 끊길 우려가 없어 좋다고 했다.

숏폼은 이용자가 영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덜 수도 있다. 강지헌(전기전자·21)씨는 영상이 너무 많아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하다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숏폼은 한 영상을 클릭하면 사용자의 이용 기록과 개인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영상이 무작위로 노출된다. 이성민 교수는 숏폼이 이용자의 탐색비용을 낮춰준다고 말했다.

숏폼은 영상의 길이가 짧아 제작 단계에서 창작자의 부담도 완화한다. 편집할 영상 분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성민 교수는 창작 부담이 덜하기에 누구나 쉽게 숏폼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이는 숏폼에 다양한 창작자가 유입되는 기폭제가 됐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헬퀸(Health Queen) 채널을 운영 중인 오혜린(28)씨는 지루하고 긴 영상보다 호흡이 빠른 숏폼에 매력을 느껴 숏폼 전용 채널을 개설했다고 했다.

 

숏폼, 10초가 75분이 되는 과정

 

숏폼 열풍 너머도 응시해야 한다. 이용자들이 과다하게 숏폼을 시청한다는 분석이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Z세대의 숏폼생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세대의 숏폼 하루 평균 총시청 시간은 평일엔 75.8, 주말엔 96.2분에 달한다. 유튜브는 최대 1분 미만의 영상을 쇼츠 영상으로 규정한다. 쇼츠를 기준으로 하루 평균 70여 개 정도의 숏폼을 시청하는 셈이다.

소비자들이 오래 머무를수록 플랫폼의 수입이 증가한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숏폼 노출이 활발한 플랫폼은 사용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에 각 플랫폼은 광고를 통해 창출된 수익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숏폼은 영상의 길이가 짧아 광고를 붙이기 어렵다. 그렇기에 플랫폼에 소비자가 머무르는 동안 발생하는 트래픽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창출한다. 이정엽 교수는 소비자들이 플랫폼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는 것 자체가 플랫폼의 목표라고 했다.

창작자들에게 숏폼은 수익 창출 수단이 아닌 채널 성장을 위한 발판에 가깝다. 김 교수는 숏폼이 트렌드다 보니, 그 자체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도 본인의 평판을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쪽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숏폼으로 인지도를 높인 다음 롱폼 영상으로 소비자를 유입시킨다는 설명이다. 오씨는 수익을 창출한다기보다는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숏폼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숏폼 수익 구조가 자극적인 영상을 양산하도록 유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셜미디어 형태의 플랫폼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만 사용자들에게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숏폼이 과다하게 공급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영상이 소비자의 알고리즘에 노출될 확률은 낮다. 이에 크리에이터들은 강렬한 콘텐츠의 양산을 자구책으로 삼는다. 김 교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숏폼을 만들 동기가 강하게 주어진다고 말했다. 숏폼에 유해한 콘텐츠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숏폼이 단편적인 정보만을 전달해 이용자에게 쾌락 위주의 정보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길이가 짧은 숏폼의 특성상 전후 맥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압축된 영상물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성민 교수는 모든 정보는 단계별로 구성돼 있다숏폼은 그 중 자극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뽑아낸다고 했다.

 

숏폼, 상생의 문화가 되려면

 

숏폼 열풍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이 열기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숏폼이 이미 청년 세대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숏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디어 산업의 특성과 더불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등 숏폼 자체가 지닌 장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성민 교수는 시간이 지난 뒤 숏폼은 자연스럽게 영상 콘텐츠의 일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숏폼이 청년 세대 너머, 미디어 생태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숏폼과의 바람직한 공존을 꾀할 필요가 있다. 이에 숏폼과의 상생을 위해 미디어 생태계가 성숙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법안 제정 플랫폼의 책임 창작자와 소비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가 관련 법안을 제정해 개별 플랫폼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주요 숏폼 플랫폼은 방송으로 분류되지 않아 방송법등으로 규제할 수 없다. 방송법2조제1호에 따르면 방송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요 숏폼 플랫폼의 경우에는 방송법상 방송이 아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른 심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방송법 이외 다른 다른 법안에 의한 내용 규제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성민 교수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규제가 당장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 차원의 노력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규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플랫폼은 콘텐츠를 관리하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정엽 교수는 콘텐츠의 사전심의는 불가능할지라도 플랫폼을 통한 사후관리는 가능하다사후 모니터링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플랫폼에는 사후 모니터링을 위한 기준이 마련돼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를 쉽게 회피할 수 있다. 그는 선정성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는 문제이기에 사용자가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기 쉽다고 했다.

플랫폼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있다. 이성민 교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알고리즘에 뜨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건전한 생태계 형성을 위해 창작자 역시 노력해야 한다. 이정엽 교수는 창작자가 숏폼 형식으로만 제공할 수 있는 미학적 장점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씨도 비슷한 콘텐츠가 넘쳐나고 이를 모방하는 게 성공의 전략이 된 시장 속에서 숏폼을 통해 나만의 매력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소비자의 역할 역시 강조된다. 잘못된 콘텐츠에 댓글을 통해 정정하거나 신고를 하는 등, 자율적인 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숏폼은 규제받는 콘텐츠가 아니기에 올바른 숏폼 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시청자가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민 교수 또한 소비자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고 콘텐츠를 소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콘텐츠 속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주체성을 가질 때 건전한 숏폼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글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사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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