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최초 고발한 이지문씨 인터뷰

이지문 연구교수(국가관리연구원·내부고발*)는 지난 1992년 군 부재자투표 부정 문제를 내부고발(군 내부고발)을 통해 알린 장본인이다. 군대 내 선거 부조리가 사그라든 것이 오로지 이 교수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군대 내 선거 부조리를 공론화한 데 이 교수의 공이 크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불의에 맞서 세상을 바꾼 그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 정의롭지 않다며 자세를 낮췄다. 1031일 개인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90분간 군 내부고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 이지문, 군 투표 비리를 고발하다

 

▶▶ 지난 1992년 3월 22일 군 내부고발 당시 기자회견 사진. 사진제공 이지문청렴교육
▶▶ 지난 1992년 3월 22일 군 내부고발 당시 기자회견 사진. 사진제공 이지문청렴교육

 

그는 내부고발 당시의 망설임과 괴로움을 기억해 군 내부고발 이후 호루라기재단에서 활동했다.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호루라기를 불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1992년 그는 어떤 이유로 호루라기를 불었을까.

 

Q. 지난 1992년 당시 군 내부 상황은 어땠나.

A. 1987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룬 뒤였다. 그런데도 군인들은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위 여당 찍기를 강요받았다. 군부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시 정권을 잡고 있어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려졌고, 1990년대에는 점차 나아지는 상황이었다.

 

Q. 어떤 방식으로 여당 찍기를 강요받았나.

A. 부대 안에 소문이 돌았다. 투표지를 검열기에 통과시키면 사병들이 어떤 후보를 투표했는지 알 수 있다는 소문이었다. 여당을 찍으라는 정신 교육을 받기도 했고, 중대장실에 불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표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Q. 어떤 이유로 군 내부고발을 마음먹었는지.

A. 내가 속한 부대를 담당한 중대장을 보면서다. 그는 군인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며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라는 그의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Q. 그래서 군 내부고발을 결심했나.

A. 일주일 넘게 고민했고, 끝내 내부고발을 결심했다. 한겨레가 도움을 준 덕에 한 시민단체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Q. 기자회견 결과는 성공적이었나.

A. 절망적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내가 속했던 부대를 국방부가 전수조사했다. 부대 소속 500명 중 한 명도 군 투표 비리를 증언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정한 투표라고 입을 모았다. 군에서는 내가 운동권의 사주를 받아서 거짓말하고 있다며 왜곡했다.

 

Q. 군에서 불이익이 주어졌을 것 같은데.

A. 3주간 영창에서 살았다. 중위에서 이등병으로 파면되기도 했다. 입대 후 삼성그룹에 입사할 예정이었는데 그것마저 취소됐다. 5년간 공무원 시험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기업도 공직도, 앞날이 모두 막혔다.

 

Q. 어려운 시기를 보냈을 것 같다.

A. 막상 내부고발을 하니 생각보다 막막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은 없었고, 의리를 배신한 사람으로 몰렸다. 영창에 갇혀있을 때 한 헌병이 쪽지를 건네줬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고 적힌 쪽지였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정말 큰 힘이 됐다.

 

Q. 어떻게 극복했나.

A. 국방부 조사 때 증언을 피한 사람들이 전역 후 증언을 해줬다. 재판부는 그제야 나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 입사하지 못했다. 내부고발 이전의 삶을 완벽하게 되찾을 수는 없었다.

 

교수 이지문, 내부고발이란

 

블라인드 뒤의 할머니를 조심해라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 할머니들이 블라인드 뒤에서 창밖에 있는 나쁜 일들을 전부 신고하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교수는 내부고발이 이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속적인 공익 신고를 통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줘 문제를 사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지문 연구교수는 군 내부고발로 군 내 선거 부조리 문제 공론화에 기여한 후, 내부고발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이지문 연구교수는 군 내부고발로 군 내 선거 부조리 문제 공론화에 기여한 후, 내부고발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Q. 내부고발을 정의한다면.

A. 내부고발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내부 구성원이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인 문제에서 벗어난, 양심과 도덕을 기준으로 한 신고 역시 내부고발로 봐야 한다.

 

Q. 어떤 분야에서 많이 발생하나.

A. 초창기에는 정권 비리 등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안전, 환경 등에서 내부고발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 삶과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분야인 만큼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라봐줬으면 한다.

 

Q. 내부고발 시 조직의 반응은 어떤지.

A.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해당 사실을 부정하거나, 신고자를 폄하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조직이든 내부고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직장에 남아 있는 내부고발자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내부고발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에 다닌다.

 

Q. 그런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내부고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A. 내부고발자라고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대다수다. 그 시민의 눈으로 볼 때도 이거 너무 심하다’, ‘상식과 원칙에 반한다는 생각이 들면 (내부고발을) 하는 거다.

 

Q.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이뤄지나.

A. 내부고발을 하면 국가에서 신분 보장을 해준다. 회사가 내부고발자를 해임하거나 혹은 감봉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포상금 지급은 물론이다.

 

Q. 이런 보호로는 충분하지 않을 텐데.

A. 그렇다. 국가에서 정한 기관 이외의 단체, 언론과 시민단체에 신고하는 것도 내부고발로 인정돼야 한다. 현재 내부고발은 신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시스템이다. 내부고발을 했는데 그곳에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동료들이 밥도 같이 안 먹고, 말도 걸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에 처한다.

 

Q. 어떻게 신고해야 하나.

A. 가장 좋은 것은 내부고발이 필요 없는, 내부고발을 멈춘 사회다. 내부고발을 해야 한다면 우발적인 신고보다는 전문적인 단체와 사전에 상의한 후 진행하면 좋다. 개인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Q. 내부고발의 변화가 있다면.

A. 일상의 폐단을 고발하는 관점에서 내부고발을 바라볼 수 있다. 원래 부패나 공익 침해행위 등은 거대담론에 가까워 일상생활과 거리가 멀었다.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수단으로만 다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전과 환경 등, 우리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에서도 내부고발이 이뤄지고 있다. 가령 학교 급식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그것을 고발하는 형태로도 내부고발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니 내부고발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지 해당 사안의 단편적인 문제라는 감각 너머, 모두의 문제라는 감각이 필요하다

 

Q. 내부고발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A.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의제를 통해 숙의하고 공론장에서 말할 권리를 부여받는다. 내부고발은 한 집단에서 모두가 획일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주고 집단의 의사결정에 폐단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Q. 획일된 의제가 아닌 다양한 의제가 필요한 이유는.

A. 다양한 의제 제시는 정당한 배분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다양한 내부고발을 시작으로 여성들이 국회에 입성하기 시작하며 호주제 폐지 혹은 성매매방지법 등을 만들었다. 기존의 생각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Q. 내부고발이 해결할 수 있는 정치 폐단은.

A. 기득권 정당들이 자신들의 이득 때문에 공무원 연금 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비롯한 표 떨어지는 일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기득권 정당들은 위성정당을 만드는 등 자신들의 권력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내부고발은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잘못됐다고 말하기 때문에 시민적 관점에서, 공익의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글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서예원 기자
harry214yw@yonsei.ac.kr

 

* 내부고발: 현재는 양심선언 혹은 공익제보라 부른다. 본 기사에서는 군 내부고발 당시에 사용된 단어인 ‘내부고발’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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