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신료를 둘러싼 문제를 살피다

 

지난 7월 23일, 프랑스에서 TV 수신료 폐지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수신료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지 2달 만입니다. 일본에서는 현지 공영방송 NHK의 수신료를 기존보다 10% 낮추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 국민들의 조세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수신료 폐지 이슈, 어딘가 익숙합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 KBS 역시 다른 국가들처럼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수신료를 걷어 왔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우리나라의 수신료 징수 방법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있기에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선택적으로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합니다. 반면 공영방송의 존립을 위해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수신료 논쟁, 그 이면을 들여다봤습니다.

 

국민들은 왜 수신료에 반대하는가

 

수신료는 TV 방송 시청에 부과되는 요금으로, 주로 공영방송사에서 징수합니다. 수신료 징수는 ‘텔레비전 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방송법」제64조에 근거합니다. 지난 1963년 수신료 100원을 징수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기준 월 2천500원을 징수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신료인 월 2천500원은 1981년 책정된 금액으로, 30년 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KBS 이사회는 2021년 6월부터 수신료를 월 3천8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대가 거셉니다. 크게 세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먼저, KBS 직원의 절반 이상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수신료를 인상할 게 아니라 직원들의 인건비를 먼저 조정하라는 것인데요.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기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KBS 직원은 2천374명으로, 전체 인원의 51.3%를 기록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효재 상임위원은 KBS의 인건비 비중이 전체 재원의 36.8%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0%대 인건비 비중을 보이는 SBS와 MBC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입니다. 한정된 재원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게 책정될수록 콘텐츠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KBS는 지난 2012년 83편의 드라마와 79편의 예능을 제작했습니다. 올해는 28편의 드라마와 58편의 예능을 제작하며 10년 사이 제작 편수가 많이 감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해 연평균 시청률 역시 2012년 6.0%에서 절반 이상 감소한 2.9%를 기록했습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담보하지 못하는 KBS의 수신료 인상 계획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둘째, 상업광고 수입에 관한 논란입니다. KBS는 지난 1994년 수신료 징수 방식을 변경하면서 KBS 1TV의 광고 수입을 포기했습니다. 수신료를 더 많이 징수하는 대신 광고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KBS는 현재 KBS 2TV를 통해 상업광고 수입을 얻고 있습니다. KBS가 징수한 수신료는 2TV에도 사용되는데, 광고 수입과 수신료 수입을 이중으로 챙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셋째, KBS의 수신료 징수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많습니다. 수신료는 지난 1994년부터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에서 ‘위탁징수제도’를 통해 전기세와 함께 징수되고 있습니다. 위탁 행정기관과 KBS가 함께 수신료를 징수하는 예전의 방식으로는 높은 비용(수입액의 약 33%)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수신료 납부를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현재 수신료 징수 비용은 수입액의 10% 수준입니다.

그러나 한전에 납부하는 위탁 수수료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전은 KBS로부터 매년 400억 원이 넘는 위탁 수수료를 챙기고 있습니다. 지난 1994년부터 시행된 이 방식에서 KBS는 한전에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주더라도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신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꾸준합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7월 27일 국회에서 “KBS가 한전의 전기요금에 같이 붙여서 수신료를 받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고 많은 수신료를 챙기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되는 수신료는 준조세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을 시청하지 않더라도 집에 TV가 있다면 일괄적으로 수신료를 내야 합니다. 수신료를 내지 않으려면 직접 신고해야 하기에 수신료를 자동으로 납부하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시청자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납부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 징수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동의하기도 했습니다.

 

 

KBS, ‘수신료’보다 ‘수신료의 가치’에 집중해야

 

결국 수신료 인상 논의는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징수하는 수신료가 정당한가’, ‘공영방송의 존재가 정당한가’ 같은 의문도 이러한 지적과 맥을 같이합니다. 지난 2021년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의 68.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KBS 수신료를 인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90%가 넘는 국민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KBS에서 발표한 ‘수신료 환불 민원 통계’를 보더라도 수신료 환불을 요구하는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입니다. 지난 2016년 1만 5천746건이었던 환불 건수는 2017년 2만 246건, 2018년 3만 5천531건, 2019년 3만 5천765건, 2020년 3만 6천273건을 기록했습니다. 수신료의 효용, 더 나아가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KBS는 수신료 수입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수신료의 정당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나아가 공영방송의 정당성을 회복해야 합니다.우선 고질적인 방만 경영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공영방송의 핵심은 정치적·상업적 압력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한 방송을 제작하는 데 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휩쓸리거나 상업적 가치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모습을 지양해야 합니다. 상업적 가치가 높은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해 많은 광고 수입을 창출하기보단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제도적 장치 역시 중요합니다. 현재 KBS는 시청자위원회 등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 편성 전반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자는 본래의 취지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50대 이상의 수도권 중심 인사가 시청자위원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해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해 수신료 징수, 분배, 사용 과정 전반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수신료를 지불하는 국민들이 공영방송을 감시할 창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역시 경제적 독립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합니다. 운영자금의 85% 정도를 수신료로 충당하는 BBC는 공영방송협약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기 업무 계획을 세워 내부적으로 평가 결과를 공유한 뒤 수신료를 산정하는 시스템입니다. 공영방송이 수신료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존중하는 사례들입니다.

수신료 징수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수신료 징수의 근거가 「방송법」 제64조에 명시돼 있지만 수신료의 법적 성격, 징수 주체, 징수 방법, 분배 및 사용 방법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제도적 근거가 부족한 것입니다. 한전을 통해 수신료를 위탁 징수하는 방식은 수수료 문제뿐 아니라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는 2025년 한전과 KBS의 수신료 위탁 징수 계약이 종료됩니다. 징수 방법을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효율적인 징수와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담보하면서 국민의 선택권을 존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공영방송만의 역할과 가치는 분명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방송사와 미디어 플랫폼에서 수익성이 높은 예능, 드라마 등을 제작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앞다퉈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비해 경제적인 압력에서 자유로운 공영방송은 ‘공익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전통문화와 예술에 관한 방송, 다큐멘터리 교양 방송,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꼬집는 심층 취재 방송은 공영방송이 제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콘텐츠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수신료 문제의 핵심은 수신료에 있지 않습니다.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수신료 인상을 계기로 표출된 것에 가깝습니다. 수신료 문제의 이면에 집중해 공영방송의 역할과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한 것들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글 김병훈 기자
kk2im@yonsei.ac.kr

<사진 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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