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김용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난 10월 15일 카카오가 멈춰 섰다. 다시 복구되는데 나흘 이상이 걸렸다. 경기도 판교 SK C&C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다. 카카오가 먹통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불편을 겪었다. 소통이 끊기고, 결제를 못했다. 심지어 이동마저 불편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지인들과 카카오톡을 주고 받고, 단톡방에 글을 올리고, 카카오 페이로 대금을 결제하고, 카카오 택시를 타고, 카카오 모빌리티를 이용한다.

카카오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카카오와 같은 미디어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는 편리한 디지털 서비스의 묶음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느새 카카오와 같은 미디어는 우리가 사는 환경이 되었다. 미디어를 환경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플랫폼이라는 은유는 제한적이다. 우리는 미디어 안에 산다. 플랫폼 위에 있는 정도가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미디어를 갖고’, ‘미디어의 도움으로’, ‘미디어와 더불어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미디어 안에서산다. 고래가 바다에 사는 것처럼, 혹은 딱정벌레가 속에 사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미디어 속에서 살고, 일하고, 사랑하고, 논다.

미디어 이제 일상적 말이 되었다. 미디어란 말은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미디어는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 받을 쓰는 도구나 장치를 가리킨다. 다른 때는 그런 도구나 장치가 전달하는 내용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맥락에서는 미디어란 말이 도구나 내용이 아닌 미디어 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미디어가 썩었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미디어 조직, 미디어 종사자, 그들이 따르는 법규, 규범, 관행들을 모두 묶는 미디어 제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초반까지 미디어란 말이 자주 ‘사람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신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을 미디어라고 불렀다.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영매(靈媒),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매(仲媒)장이에 모두 미디어의 의미를 지닌 한자 “매()”가 들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에는 일인미디어라는 말때문에 사람으로서의 미디어라는 의미가 다시 드러났다. 미디어란 말에는 공간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영어권에서 미디어란 말은 유기체가 생존하고, 활동하고, 관계를 맺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공간(空間)이란 말에 사이를 의미하는 (間)이 들어있는데, 그것도 공간이 갖는 미디어적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이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서로 소통케 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런 공간 자체가 미디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도시 전체를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로 전환시키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도 공간으로서의 미디어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사람과 공간의 의미가 들어오면서 미디어란 말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제 미디어는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20세기 매스미디어 시대가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은 미디어와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들을 해왔다. 그들은 우선 ‘미디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해 물었다. 이런 식의 질문에서 미디어는 주어였고 사회는 미디어 영향을 받는 대상이었다.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이 미디어를 , 어떻게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서는 사람이 주어이고, 미디어가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미디어와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미디어와 사회 사이에는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런 질문들을 토대로 미디어 연구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연구들이 앞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다차원적 의미(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 모두 포괄하는 방식의 미디어 이해를 분명하게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기 네번째로 제시할 새로운 생태학적 관점이 중요하다. 관점은 ‘사람들이 미디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다 속에는 물과 바위와 플랑크톤과 해조류와 어류가 있듯이, 숲에는 흙과 공기와 햇볕과 풀과 나무와 곤충과 포유류가 있듯이, 미디어라는 환경에는 도구, 내용, 제도, 사람, 공간으로서의 미디어가 공존한다.

이제 ‘미디어 환경이란 말은 그저 수사적으로만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고래가 자기가 바다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듯이, 딱정벌레가 생태계 안에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카카오 먹통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미디어 바다와 미디어 숲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깨달음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미디어를 환경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카카오 사태는 다른 무엇도 아닌 환경 재난이었다. 미디어가 환경이라면, 그것이 환경 재난이 아니고 무엇이었단 말인가?

카카오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환경 전체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환경이라는 관점에 맞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환경은 얼마나 자원이 풍부한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균형잡혀 있나?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얼마만큼의 복원력을 갖는가? 얼마나 포용적인가? 얼마나 공정하고 평등한가?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개인과 기업에게만 질문에 대한 답을 맡길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 답해야 한다.

카카오 사태 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있는 미디어 환경 재난을 생각하면 그것은 전주곡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21세기 미디어 환경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발생하면 소통, 결제, 이동의 불편 정도가 아니라 숨을 쉬는 것까지 힘들어질지 모른다. 아무 제약없이 그냥 놔둔다면 미디어 플랫폼이 공기마저 통제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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