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3천12% 증가한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단속 건수… 근본적 해결은 여전히 요원해

이현성씨 되십니까? 서울중앙지검 이○○ 수사관입니다. 본인과 관련된 사건으로 몇 가지 확인차 연락드렸고요.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사건 내용부터 간단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작년 4월에서 8월까지 강남 오피스텔에서 전자금융법 위반 혐의로 주범 김민수를 포함한 일당을 검거했습니다. 본인은 혹시 국민은행에서 과장으로 재직했던 42세 남성 김민수씨를 아십니까?”


010-5***-8**8. 지난 5일 오전 10,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기자는 금세 이 전화가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824010-8**0-4**7 번호로 연락해왔던 이의 목소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범은 지난 전화에서 성폭행 혐의를 거론했다. 이번에는 전자금융범 위반으로 혐의만 바꿔 같은 형식의 말을 반복했다. 사건이 발생했다는 장소 역시 두 번 모두 강남이었다. 기자가 4**7로 끝나는 번호를 저장했을 때 카카오톡 프로필에 서울중앙지검지능범죄수사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지난 8월 24일과 10월 5일, 보이스피싱범이 중계기를 활용해 기자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8월 24일 걸려 온 전화번호를 저장해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하니 ‘서울중앙지검–지능범죄수사부’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 지난 8월 24일과 10월 5일, 보이스피싱범이 중계기를 활용해 기자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8월 24일 걸려 온 전화번호를 저장해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하니 ‘서울중앙지검–지능범죄수사부’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보이스피싱범은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아래 중계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국제전화나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를 받지 않으려 한다. 국제전화·인터넷전화가 보이스피싱이나 광고일 수도 있다는 불신이 쌓였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범은 이를 파고들어 중계기를 사용한다. 중계기를 활용하면 ‘010’ 번호로 전화를 걸 수 있다. 010으로 걸려 온 전화에 경각심이 무뎌진 피해자는 의심을 덜어내고 전화를 받는다.

이처럼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아래 국수본)가 지난 718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전화금융사기 발생·검거 현황 분석에 따르면 국수본이 4~6월 특별 단속한 중계기 수는 9679대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12%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21년 상반기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건수와 피해액이 30.4%, 29.5% 감소한 결과와 대비되는 수치다.

 

▶▶ 법무법인 ‘태신’ 경찰수사대응팀 이범주 전문위원. 그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지도관을 지낸 바 있다. 사진 본인제공.
▶▶ 법무법인 ‘태신’ 경찰수사대응팀 이범주 전문위원. 그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지도관을 지낸 바 있다. 사진 본인제공.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늘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아울러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듣고자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지도관을 지낸 법무법인 태신경찰수사대응팀 이범주 전문위원을 인터뷰했다. 이 전문위원과의 인터뷰는 지난 26일 전화로 진행됐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전한다.

 

누구냐 넌

 

Q. 중계기는 어떤 기기인가.

A. 중계기의 공식 명칭은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 게이트웨이. 이 장치에 유심을 삽입하면 신호를 변조해 전화를 걸 수 있다. 국제전화·인터넷 전화 발신 번호를 ‘010’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중계기에 삽입된 유심 번호로 이동 통신사의 전파를 통해 피해자 휴대전화와 연결되는 식이다.

 

Q. 보이스피싱범들이 중계기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A. 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등장한 초기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 등 수사기관의 단속 사례가 늘자 보이스피싱범들은 중국, 필리핀 등 해외로 달아났다.

해외에서 한국인에게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려면 국제전화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휴대전화 사용자는 대개 국제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에 해외에 콜센터를 둔 보이스피싱범들은 번호 변작 기술을 범행에 활용했다. 중계기에 삽입한 유심 번호(010-0000-0000)를 피해자 휴대전화에 띄워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중계기를 이용한 보이스피싱의 경우 십중팔구가 해외 콜센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Q. 보이스피싱범들은 검찰이나 경찰 같은 사정기관 관계자라고 사칭한다. 실제로 공직자가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시민에게 연락하기도 하나.

A. 수사기관 대부분은 업무 담당자에게 공용 전화기를 지급한다. 참고인 조사 등 수사 대상자에게 출석을 요청하는 경우 수사기관 관계자가 010 번호로 전화를 걸 수 있다. 다만 이때 전화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출석 일자를 조율하는 일에 그친다. 절대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기관도 안전한 계좌로 돈을 옮기라거나 금전을 대면으로 전달하라고 하지 않는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보이스피싱범들은 국내에서 중계기를 설치·운용할 인력을 모집한다. 보이스피싱범들에게 고용된 이들은 이전까지 주로 고시원이나 모텔, 원룸 등과 같은 곳에 중계기를 두고 범행에 가담해왔다. 그런데 수사 기관의 단속 빈도가 늘어나자, 최근에는 중계기를 차량에 싣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고 이동하는 식으로 단속을 피해 다니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보이스피싱 총책이 해외로 자리를 옮겨간 지금, 근본적인 단속은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Q. 수사기관의 잇따른 단속에도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은 왜 줄지 않는가.

A. 중계기를 발견하더라도 이들이 고용한 단기 인력만 검거될 뿐, 총책의 덜미를 잡기엔 한계가 있다. 중계기 설치자와 관리자에 대한 검거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이를 이용하는 범죄 조직을 직접 검거한 경우는 없다.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는 이유다. 총책을 잡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만 누는 셈이다.

 

Q. 단속할 수 없으니 보이스피싱 범죄가 줄지 않는 것 같다.

A. 맞는 말이다. 중계기를 찾으려면 중계기에 삽입된 유심에서 나오는 전파를 잡아야 한다. 이때 쓰는 탐지 장비는 무게만 15kg가량이다. 중계기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속 직원들은 탐지 장비를 직접 들고 단속에 나서야 한다. 더군다나 더이상 보이스피싱범들은 고정된 공간에만 중계기를 두지 않는다. 이들은 중계기를 실시간으로 이동시키면서 관리한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한꺼번에 중계기와 유심을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기 번호로 타인의 권리를
좀먹는 보이스피싱
해결할 방법은?

 

전기통신사업법84조의2 32호에 따르면 전기통신사업자는 외국에서 걸려 온 전화란 사실을 이용자에게 안내해야 한다. 하지만 중계기를 활용한다면 수신자의 화면에 국제전화라는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다.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은 보이스피싱 방지 앱의 감시망을 피해 가기도 한다. 앱에 등록된 번호가 아닌 이상 보이스피싱·텔레마케팅 등 발신자 유형이 노출되지 않는다. 중계기를 거쳐 걸려 오는 전화를 사용자 차원에서 예방하기 어려운 이유다.

번호 변작 보이스피싱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은 지난 5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아래 통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수신 전화번호의 국외 발생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010으로 걸려 오는 보이스피싱을 근절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Q. 지난 5월 양 의원이 발의한 통신법 개정안은 수신 전화번호의 국외 발생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이 보이스피싱 근절에 얼마나 큰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가.

A. 실효성이 떨어진다. 휴대전화 통신 과정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휴대전화 통신은 기본적으로 유심번호·유심고유번호(IMSI)·단말기번호(IMEI) 식별 과정을 거친다. 지난 2018년 공직자로 근무할 당시 보이스피싱범의 단말기번호를 찾아 정지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불과 1주일도 안 돼 보이스피싱범이 중계기로 단말기번호를 바꿨다. 양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중계기로 변작된 유심번호에 대해서는 제재 자체가 어렵다.

 

Q. SKT·KT·U+와 같은 이동 통신사가 변작 여부를 식별할 순 없나.

A. 중계기에 국내 유심을 삽입해 전화를 거는 범죄 특성상, 이동 통신사조차 발신된 번호가 변작 됐는지 여부를 식별하기 어렵다. 이동 통신사는 변작 번호를 휴대전화 번호로만 인식한다.

 

Q.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을 근절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A. 중계기를 활용한 범죄라고 해서 중계기에만 천착해선 안 된다. 중계기에 들어가는 유심을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애당초 유심이 없으면 전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심이 어디로 유통되는지 감시해야 한다. 아울러 범죄에 쓰인 유심 번호를 추적해 정지시킬 수 있는 법적 기반도 필요하다.

 

Q. 수사기관 차원에서 수사 효율성을 높일 방법은 없나.

A. 총리실에 전기통신을 이용한 금융범죄 전담팀을 상시 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해봄 직하다. 현행 수사 방식에선 보이스피싱이 일어나더라도 그 유형에 따라 담당 수사팀이 갈린다. 가령 대면 편취 범죄는 지능 및 강력계에서, 인터넷 이용 범죄는 사이버팀에서, 물품 사기 등은 경제팀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식이다. 전담팀이 갈리면 수사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없다. 갈수록 지능적으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범들에게 맞대응하려면 총체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수사팀이 꾸려져야 한다.

 

Q. 수사기관 차원의 대응력을 제고하기에 앞서, 휴대전화 사용자가 고민해볼 수 있는 예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나.

A. 중계기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전화가 010으로 걸려 오는 만큼 전화를 받지 않는 식의 예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상황에서도 예방은 가능하다. 보이스피싱범의 목적은 결국 돈이다. 어떤 경우라도 돈을 요구하면 더이상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발신자가 설명한 상황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가 언급한 수사기관이나 은행 등의 공식 연락처로 직접 문의하라. 발신자가 알려준 방식을 따라선 안 된다. 이것만 지켜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의심만으로도 보이스피싱을 예방할 수 있었다. “검찰에서 연락하셨다고 하셨죠? 소속을 다시 여쭤볼 수 있을까요의심하는 기자의 말에 보이스피싱범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거짓은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보이스피싱범이 중계기로 번호 수천만 개를 써도, 수사기관이나 은행 등에 확인 전화 한 통이라면 보이스피싱을 예방할 수 있다.

 

 

글ㆍ사진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사진 제공 이범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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