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누구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기자는 흔히 진실을 맹목적으로 쫓고 사건의 원근을 캐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나는 대학 생활 이전에 진실을 향해 질주하는 기자의 모습이 곧 기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와서 마주한 ‘연세춘추’의 보도와 취재 방식은 사뭇 달랐다. 연세춘추 기자들은 취재 대상을 매서운 카메라 셔터로 마주하기보다, 그저 조용히 취재 대상을 관조했고, 기록했다. 춘추 기자가 사건을 경중과 상관없이 보도와 기록이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취재를 시작했고, 해당 내용은 기사로 지면에 실렸다. 

우리대학교에 입학한 첫 해는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비대면 학번 학생’들은 연세춘추를 통해 비대면 강의 운영, 교육권 침해에 대한 학생회와 학교운영위원회의 서른 번 이상의 회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 청소노동자 처우 관련 논란이 일었을 당시 연세춘추 기자들은 시위 현장, 공론장, 학교운영위를 오가며 가장 정확한 눈으로 사건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약자가 존재할 때 연세춘추 기자가 현장을 방문해 기록하는 것만으로 당사자들에게 힘을 주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구성원들의 주장은 사실과 맥락을 고찰하며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의 잣대에서 판단됐다. 

기자와 관련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광화문에서 목격한 1인 시위와 이를 취재하던 기자였다. 시위자는 홀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지만 그 곁에 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메시지에는 힘이 실렸고, 시위자도 위축되지 않았다. 이렇듯 기자는 존재만으로도 상징성을 가진다. 기자가 지지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아도 취재 대상에 대한 ‘헤아림’을 표현한다. 그동안 연세춘추는 헤아림의 시선을 학내 다양한 영역에 보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헤아림의 시선으로 학내외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기자는 ‘정의의 사도’의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현장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도 빛을 발한다. 그 책임감을 갖고 기자들이 학내외의 소외된 영역에서도 소외된 메시지와 주제를 발굴하고 기록하기를 바란다. 이로써 학생들이 연세춘추를 통해 좀 더 넓은 헤아림의 창으로 일상과 학생 사회를 바라보고 변화가 필요한 영역에 대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궈질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