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믹스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다

지난 2021tvN이 방영한 드라마 해피니스는 좀비 사태가 발생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계급 간 차별과 신경전을 그렸다.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임대·분양주택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임대동과 분양동의 갈등, 어딘가 익숙하다. 같은 단지, 같은 아파트 안에서 구획을 나눠 위계를 가르는 일은 2022년의 한국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한쪽(임대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제를, 다른 한쪽(분양동)은 형평성과 공정을 문제 삼는다.

대도시 신축 아파트라는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은 마냥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5층까지는 임대, 6층 이상은 일반 분양으로 되어있는 극 중 아파트는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한데 섞는 소셜믹스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런데 사회 통합을 위해 고안된 소셜믹스가 주민 공동체를 좀먹는 고질적인 좀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제대로 섞이고있을까.

 

사회 통합 위한 소셜믹스,
제대로 기능하고 있나

 

소셜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정책이다. 1980년대 후반 공공임대주택단지가 대량 공급되자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분리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고 사회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소셜믹스 정책이 도입됐다.

그러나 소셜믹스가 오히려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셜믹스의 부작용으로는 크게 건축 구조상 차별 사회적 차별 소통 부재가 꼽힌다.

건축 구조상 차별은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임대동 주민들이 헬스장, 노인정 등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임대동과 분양동 사이의 통행로가 막혀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기도의 한 소셜믹스 단지 임대동에 거주하고 있는 어모(52)씨는 자유로운 왕래를 막기 위해 임대동과 분양동을 오가는 문을 폐쇄하려했던 적이 있다주변 다른 대형 소셜믹스 단지에서는 분양동 주민들만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 A씨는 서울의 ㄱ아파트 단지의 경우, 일부 분양동 주민들이 입주 초기에 임대동 주민들의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후 임차인을 대상으로 별도의 등록 기간을 거쳐 갈등은 해소됐으나, 임대동 주민들을 향한 차별과 배제를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2012년 완공된 서울 마포구의 ㄴ주상복합 단지의 경우, 저층에 사는 임대층 주민들이 비상구를 통해 옥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국립소방연구원 관계자 B씨는 화재가 발생하면 지상 대피가 원칙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옥상으로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의 옥상 접근이 막혀있는 소셜믹스 설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임대동 주민들을 향한 사회적 차별 역시 심각하다. 어모씨는 말했다. “임대동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이 상당하다. 특히 임대동에 사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안다. 일부 임대동 주민들은 차라리 단지를 따로 조성하는 편이 낫겠다고 할 정도다.” 서울 송파구의 ㄷ소셜믹스 단지의 분양동 동대표를 맡고 있는 홍모(50)씨 역시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거주지를 알고 있다 보니 임대동에 사는 아이를 향한 편견을 내비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임대주택 주민과 분양주택 주민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통이 부재하기 때문에 갈등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는 형국이다. 공동주택관리법은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함께 있는 공동주택단지를 혼합주택단지로 규정하고 있다. A씨는 혼합주택단지 관리에 관한 사항은 분양동 주민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와 임대사업자가 공동으로 결정하는데, 임대동 주민들로 구성된 임차인대표회의의 경우 임대사업자와의 사전협의권만 있을 뿐 의결권은 없다고 말했다.

임대동 주민들은 커뮤니티 시설 이용, 청소·경비 업체 선정 등 단지 운영 관련 주요 사항에 사실상 참여할 수 없다. 이에 홍모씨는 입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임대동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집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권을 행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소통 과정에서 임대동과 분양동 주민들의 의견이 한데 모이지 않고 어긋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제도는 잘 작동하고 있나

 

소셜믹스 주택의 부작용을 해결하려면 관련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소셜믹스 제도가 시작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도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같은 단지에 살더라도 임대동과 분양동에 적용되는 법령이 다르다. 분양주택의 경우 주택법공동주택관리법임대주택의 경우 공공주택관리법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받는다. 한 단지 내에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이 병존하는 혼합주택단지의 경우 이 모든 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때 법안의 내용이 상충하거나 특정 내용이 누락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가령 서울주택도시공사(아래 SH공사)공공주택 커뮤니티 시설 활용 및 공급 정책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잡수입 관련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잡수입은 재활용품 판매수입, 시설 임대 등을 통해 마련된 수익으로 통상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한다. 임대동 주민들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임대동 입주민의 결정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의사소통 구조도 손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 주택관리과 관계자는 현행법상 분양동과 임대동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혼합주택단지대표회의에 관한 법·제도가 부재해 혼합단지 내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로 인해 혼합단지 내 분양-임차 세대 간 갈등, 차별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소개한 ㄱ아파트의 경우 혼합주택단지대표회의와 같은 소통 창구가 있었다면 갈등이 발생하기 전 원활한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라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서울시 내 혼합주택단지의 혼합주택단지대표회의 구성률은 22.1%.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혼합주택단지대표회의를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지대 부동산학과 김주영 교수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시간과 비용만 많이 들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임대주민과 분양주민들이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와 SH공사가 앞장서 주민들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셜믹스 건축 형태 변화를 보여주는 모형도. 건축 구조상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임대동과 분양동을 혼합해나가고 있다. 분리로 생기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서울특별시 주택정책실·SH도시연구원 제공
▶▶소셜믹스 건축 형태 변화를 보여주는 모형도. 건축 구조상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임대동과 분양동을 혼합해나가고 있다. 분리로 생기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서울특별시 주택정책실·SH도시연구원 제공

 

소셜믹스, 제대로 섞이려면

 

윤석열 정부가 임기 내 총 50만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약속하는 등 소셜믹스를 강화하는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 역시 지난 5월 취임사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차별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 4서울 임대주택 혁신방안을 발표해 임대주택의 평형을 넓히고, ‘동호수 동시공개추첨제를 통해 분양-임대 세대가 구분 없이 섞이도록 하는 완전 혼합 배치를 공표했다. 임대동 주민들이 아파트 공간 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단지의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하는 데 들어가는 건축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정책 역시 시행 중이다.

임대동 주민들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려면 먼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건축 구조상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임대주택 단지를 따로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는 저들(분양주택 주민)과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임대주택을 별도로 짓기보다는 같은 동 안에 무작위로 배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서울시 소셜믹스 단지 393개 중 동별 분리형 단지가 126개로, 여전히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 당국 역시 이러한 취지에 공감해 임대 세대가 하나의 동 안에 함께 자리하는 혼합동을 늘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분양동 주민들의 목소리 역시 적극적으로 반영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SH공사는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패널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는 가구 특성, 소득, 생활비, 일자리 등을 고려한 200여 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해당 조사에서 정작 분양 세대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이외에도 분양 세대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조사나 연구는 전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셜믹스 정책이 성공하려면 분양 세대 주민들과 임대 세대 주민들의 의견을 모두 경청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셜믹스가 진정한 사회 통합의 토양이 되려면 소셜믹스 아파트라는 단일 정책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권 교수는 무작위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임대주택 주민들이 느끼는 사회적 박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기계적으로 수치를 맞추는 소셜믹스 정책에서 나아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소셜믹스 정책을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계층 차이가 큰 두 집단이 소셜믹스를 통해 함께 살아간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평등과 통합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우리 사회에 적합한 한국형 소셜믹스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믹스 정책은 사회 통합이라는 토대 위에서 청년과 저소득층을 비롯한 주거 약자에게 질 좋은 주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통합이라는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생활의 기초가 되는 주거를 개선하는 데 있어 소셜믹스 정책은 더욱 세심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글 김병훈 기자
kk2im@yonsei.ac.kr

<그래픽 제공 서울특별시 주택정책실·SH도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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