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박스, 영아 보호인가 유기 조장인가

지난 6월, 칸 영화제 수상으로 화제가 된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 문제를 다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베이비 박스는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논쟁적인 이슈”라며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사려 깊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베이비 박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여 뜨겁게 논의되는 문제입니다.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베이비 박스 제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TheY』가 살펴봤습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베이비 박스엔 아이의 건강 보호를 위해 생명유지장치가 설치돼 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베이비 박스엔 아이의 건강 보호를 위해 생명유지장치가 설치돼 있다.

 

베이비 박스,
무엇이 문제일까

 

베이비 박스는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한 영아를 임시로 보호하는 간이 보호시설입니다. 버려진 아기의 생존이 가능하도록 온도, 습도 등 생명보호장치가 달린 상자죠. 부모가 베이비 박스에 영아를 두면 24시간 상주하고 있는 베이비 박스 운영소 직원이 긴급구제해 아이는 국가의 보호를 받습니다. 양육하고자 하는 뜻을 가졌으나 형편이 어려울 경우 베이비 박스 운영소가 1~6개월 동안 24시간 보육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베이비 박스가 처음 설치됐습니다. 지난 6월 기준 총  1천989명의 영아가 지금까지  베이비 박스에 맡겨졌습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 박스를 찾는 부모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베이비 박스를 찾는 95%의 부모가 상담을 받은 후 아이의 입양 위탁이나 원가정 복귀를 결정합니다.

지난 8월 13일 베이비 박스 유기 혐의에 첫 무죄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영아를 두고 이탈한 것이 아닌 담당자와 상담을 통해 보호·위탁한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8월 23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는 ‘베이비 박스 설치 및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도 개최됐습니다. 베이비 박스의 설치와 운영 지원에 관해 제주도민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함입니다. 공청회 이후에도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룸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를 돌보기 힘든 부모를 위해 다양한 상담을 제공한다.
▶▶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룸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를 돌보기 힘든 부모를 위해 다양한 상담을 제공한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찬성 vs 반대

 

베이비 박스 찬반 논쟁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찬성 측에서는 베이비 박스가 영아를 지키는 수단이라 주장합니다. 이 목사는 “베이비 박스를 이용하는 부모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베이비 박스를 이용한다”며 그간의 경험을 밝혔습니다. 법률사무소 Y 대표 연취현 변호사는 “베이비 박스는 아이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설”이라며 “사회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부모에게는 베이비 박스가 유일한 대안”이라 밝혔습니다. 베이비 박스 찬성 청년들도 같은 이유로 찬성을 선택했습니다. 허수현(24)씨는 “생명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베이비 박스를 이용하는 주체가 미혼모와 청년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베이비 박스를 이용한 가정 중 미혼 가정이 70.3%를 차지했습니다. 이용 연령대는 10대 10.8%, 20대 52.7%, 30대 29.7%로 청년과 청소년들이 베이비 박스 주 이용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목사는 “베이비 박스를 이용하는 부모 중 미혼모나 청소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청소년들은 쉽게 출생 신고하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미혼모들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아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베이비 박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반대 측은 베이비 박스가 오히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고 주장합니다. 베이비 박스가 아이를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죠.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정책센터 이연화 연구위원은 “베이비 박스가 면죄부 효과를 만든다”며 “부모가 아이를 갖다 놓기만 하면 책임을 다했다는 인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김기훈(24)씨는 “제도적으로 아이를 버리는 것을 장려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 박스 설치 이전에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연구위원은 “안전한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제도가 지원된다면 많은 미혼 및 한 부모가 유기 대신 양육을 선택할 것”이라 전했습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미진 대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아동의 생명권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이비 박스 없는 사회되려면

 

결국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모가 영아를 책임지고 지킬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를 우선 마련해야 합니다. 부족한 정부의 지원은 부모로 하여금 베이비 박스를 찾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미혼 상태의 한부모를 위한 특화된 정책 도입과 촘촘하게 설계된 양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연 변호사는 “국가가 단기적인 지원책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친모가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 의사를 밝힐 경우 국가가 대신 출생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내는 제도입니다. 사회적 낙인을 없애는 익명 출생신고를 통해 미혼모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기본권을 지키는 동시에 안전한 양육환경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전국입양가족연대 김지영 사무국장은 “보호출산제의 필요성은 베이비 박스가 증명해왔다”며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출생통보제’를 병행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출생통보제’는 출산 후 분만 병원이 이를 지자체에 통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의 경우 미등록 아동으로 분류돼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적절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목사는 “출생신고된 아이는 입양기관을 통해 바로 원가정이나 양부모 만나 자랄 수 있다”라며 “보호출산제와 함께 어우러져 도입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대표는 “국회에 계류 중인 출생통보제가 조속한 시일 내에 시행돼 국가가 적극적으로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회적 인식 개선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김 대표는 “미혼 상태의 한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해소돼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성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연 변호사는 “자유로운 성행위에는 생명과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가정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베이비 박스의 필요성을 넘어 베이비 박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어려움을 바라봐야 합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베이비 박스 관련 공론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산모와 아이를 모두 지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미혼 한부모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글 송혜인 기자
hisongs@yonsei.ac.kr
한주현 기자
coana143@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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