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보도부장(국제관계·18)
허준 보도부장(국제관계·18)

 

“잠들지 않는 진실의 공간에서 소명을 지면에 담아라.
그대의 문장이 칼이 되어 
침묵을 가를 것이니
지성인의 혜안으로 펜촉을 
곧게 세워 그대 역사의 증인이 
되어라”

 

아이러니하게도 「고대신문」 창간사를 보고 「연세춘추」 입사를 결심했다. 대학사회를 넘어 우리사회까지 영향을 끼쳤던 과거 학보의 찬란한 순간들이 마음을 울렸다. 소통의 장이자 학생여론을 대표하는 학보사가 좋았다. 자연스럽게 글에 흥미가 붙었다. 2021년 봄, 우리신문사에 입사했다.

나는 글이 좋았다. 글쓰기는 정제되지 못한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다.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며 마음을 다잡고, 글을 다시 보며 나를 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진심을 다 해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남들보다 못하기에 부끄럽다, 혹은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노력해본 적은 없었다. 우리신문사에 입사하면서 이제는 글에 진심을 담아보고자 했다.

우리신문사 기자로 활동한 지난 3학기는 끊임없는 글의 향연이었다. 한 주의 시작은 글의 ‘부정’이다. 월요일 오후 7시면 구성원들이 내 글에 대한 따가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간의 노력은 부정되고, 기사는 아쉬움만을 남겼다. 부정, 그다음은 ‘소통’이다. 기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지난한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 취재에 응하겠다는 답변보다 거절의 답변을 받다 보면 어느덧 지면을 제작하는 금요일이 돌아온다. 제한된 정보로 기사를 제출하면, 수많은 지적과 교정부호가 돌아온다. 제작의 끝은 곧 주말의 끝을 의미한다. 일요일 자정, 마침내 웹상에 기사가 올라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내일은 또 어떤 평가를 받을까 두려움에 떨며 잠을 청했다.

착잡한 나날을 보내던 중 일면식 없는 후배가 우리신문을 두고 ‘에타에서 긁어오는 여론 모음집’이라 칭했다. 내가 진심을 다했던 기사들이 누군가에게는 복사붙여넣기 기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부인의 시야에서조차 내 기사가, 우리 부서의 기사가,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자 했던 기사들이 모두 부정당한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글로써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나 역시 기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었다. 우리대학교는 학부생, 대학원생, 교원, 교직원, 노동자까지 4만 연세인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거대한 공동체다. 나는 이 공동체의 곁에서 연세의 역사를 기록했다.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며, 때로는 구성원 간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이 일어나는 공동체. 어떤 사회보다 젊고 역동적인 ‘연세사회’ 이야기를 지면에 담고자 했다. 학생사회를 이끌어갈 대표를 뽑는 학생 선거, 고용안정을 위해 지금도 분투하는 노동자들의 외침, 소수자 이야기까지. 내가 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아가 공론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통념에 맞서는 글을 통해 학생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의 기사들이 모여 학생사회의 의제가 되는 발판을 만들고자 했다.

나는 진심을 다했다. 모 교수 연구실 앞에서 4시간을 기다려서 한 문장. 마흔 번이 넘는 통화 시도 끝에 작성한 한 문장. 2주간의 연락 끝에 만날 수 있었던 교직원을 통해 한 문장. 이렇게 모여 15매가량의 글이 완성됐다. 일요일 자정에 웹에 올라온 기사는 내게 작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서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작은 한 문장에 담긴 노고를 타인은 알 수 없다.

 

보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단문으로 이뤄진 정보 나열의 글. 문장 배치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난 3학기를 보냈던 것일까. 남은 학기 동안 글과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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