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이필재 교수(우리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생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
저는 마지막 수업 시간에 ‘내 인생의 오답 노트’를 공개하곤 합니다. 첫 항목이 ‘인생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입니다. 저의 잠정적인 답은 ‘없는 거 같다’입니다. 그렇다고 오답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답은 감옥에 있습니다. 물론, 감옥에 갔다고 모두 오답은 아니죠. 권위주의 시절엔 정치범들도 갔고, 무엇보다 판사도 오판을 합니다. 

아예 해답 없는 질문, ‘노답’인 상황도 있습니다. 8년여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동그란 창 앞에 모인 아이들이 눈앞에서 어둡고 차가운 바다로 빨려들어 갔지만, TV로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죄책감은 국민적 트라우마가 됐죠. 그 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다시피 했습니다. 일부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그 시절의 시대정신이 저는 ‘사익추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여 전 취임사를 통해 그의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레토릭에 가슴이 설렜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후 문 정부의 집권 엘리트들은 기득권 세력이 됐고 일부는 자신들이 욕하던 사람들을 닮아갔습니다. 그 시절 한 언론인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 부제가 ‘기대할 것 없는 정권, 기댈 곳 없는 국민’입니다. 

엘리트 검사 출신인 문 정부의 검찰총장은 공정과 상식의 기치를 들고 야당 후보로 변신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불임정당화’한 당시 야당은 그를 영입해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습니다.(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가 우리대학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불임정당 운운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비판에 동의하고, 그래서 이 말을 작은따옴표로 묶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든 깃발은 취임 100일 만에 빛이 바랬습니다. 국정 지지도는 30%선을 맴돕니다. 지난 정부 이래 이 나라의 시대정신은 ‘내로남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입니다. 저의 ‘시선’이 좀 삐딱한가요?

저는 우리 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후 30여 년 간 기자로 살았습니다. 9년 전 첫 직장인 신문사에서 정년퇴직했지만 지금도 우리대학교 동문회보 등 몇 곳에 인터뷰 기사 등을 씁니다. 기자가 ‘기레기’, ‘기더기’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시대지만, 언론이라는 무대에 누군가는 올라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부에서 “언론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고 이야기하지만 언론 무용론이라기보다 언론을 고쳐 쓰자는 쓴 소리로 받아들입니다. 

일찍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서생적(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패러디해, 여러분에게 저는 대학 시절에 기자적 문제의식과 학자의 균형감각을 갖추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기자적 문제의식은 일종의 비판 정신입니다. 학내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나름의 눈으로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균형감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선입니다. 표절 등 문제가 많은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한 김건희 씨가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면 국민대가 그에게 과연 ‘면죄부’를 줬을까요?  

비판적 안목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사·인간사를 가능하면 글로 써 봤으면 합니다. 머릿속 생각은 글이 되는 동안 더 견고해질 겁니다. 글쓰기 능력은 모든 조직에서 요구되는 기술입니다. 조직에 들어가면 보고서와 기획서·제안서를 써야 합니다. 독립해 치킨집을 차린다면 전단지의 카피를 써야 합니다. 초대 국립 생태원장을 지낸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상 거의 모든 일의 끝엔 글쓰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유튜브도 글쓰기가 기본입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겁니다. 라이팅 이즈 리라이팅. 리라이팅은 가성비 높은 글쓰기 훈련법입니다.  

언론사에 함께 근무한 한 후배는 대기업 간부로 옮긴 후 직원 채용 때 기자 출신을 뽑았습니다. 기자 출신은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문제해결 능력이 바로 일머리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공부 머리로 연세인이 됐지만, 현장에서 솔루션을 찾는 데는 일머리가 필요합니다. 일머리란 문제해결 능력과 대안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최근 우리대학교 동문회보에 싣기 위해 인터뷰한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했습니다. 우리 학교 사학과 83학번으로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 그는 독일 연수 후 가족여행 중 스코틀랜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 사고로 부인이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아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귀국 후 재활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푸르메재단을 설립한 후 1만여 명의 시민과 넥슨 등 약 200개 기업으로부터 모금해 장애 어린이를 위한 아름다운 재활병원을 만든 그가 말했습니다.

 

“기자생활 할 때 맨땅에 헤딩하듯 취재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아, 물론 저의 이런 이야기도 정답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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