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인 중심 사회에 만연한 농인 차별을 들여다보다

농인은 음성언어 대신 수화언어(수어)를 사용한다.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농인은 언어적 소수자다. 이들의 손짓은 각종 언론 매체를 비롯한 청인* 중심 사회에 쉽사리 가닿지 못한다. 청인 중심적 오디즘(Audism)이 만연한 사회에서 농인은 음성언어로 말하는 법을 익히고, 음성언어로 주고받는 대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관계 맺기가 가능한 탓이다. 그렇게 의사소통, 노동, 교육을 비롯해 일상 전반에 이르기까지, 농인의 기본적인 권리는 청인의 목소리에 가려져 왔다. 청인 중심 사회에 묻힌 농인의 손짓을 따라가 보니, 농인이 겪고 있는 차별의 민낯이 드러났다.

 

공용어가 된 수어,
일상에서도 공용화됐나

 

 

한국에서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 지난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2조에 따르면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는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 서울시장애인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 김경양 활동가는 해당 법률을 통해 수어가 국어와 대등한 하나의 언어체계로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 제정 당시 농사회의 기대감은 컸다. 한국수어통역사협회 박정근 회장은 농인은 물론 이들의 가족과 통역사 모두가 굉장히 기뻐했다수어를 둘러싼 인식이 개선되면 농인이 수어로 모든 정보를 차별 없이 제공받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떠올렸다.

법률제정 후 6년이 지난 지금, 수어는 일상 곳곳에서 공용어로 자리 잡았을까.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 안정선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수어가 공용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국어와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청인 중심 사회의 기저에는 수어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깔려있다. 수어 통역의 방송화면 크기가 작아 농인이 겪는 어려움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한국수어 활용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방송 및 인터넷 관련 의사소통 영역에서 수어통역서비스를 이용하는 응답자 중 68%는 수어통역사의 화면 크기가 작아서 프로그램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수어 통역이 아예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박 회장은 청와대조차 대변인 브리핑을 진행할 때 수어통역사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어 방송 확대를 논할 때 일부 청인은 수어 통역이 화면을 가린다’, 수어 통역으로 자막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며 농인의 정보 접근성에 무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수어에 무관심한 청인 중심 사회에서 수어 방송은 그저 편의 제공정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수어가 편의 제공 차원을 넘어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이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대표는 “(농인에게) 수어 방송화면의 크기는 (청인에게) 방송 프로그램의 소리 크기와도 같은 것이라 비유했다. TV 소리가 줄어들수록 청인이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수어 방송화면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농인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배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자막 제공으로 농인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방송 하단에 자막이 있더라도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농인에게 한국어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은 농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나 마찬가지라며 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우리 사회에서 성장해 살아가는 농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수어는 농인의 생존권이다

 

농인에 대한 차별은 노동 시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청사회는 음성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근로자를 선호한다. 안 대표는 “(구직을 하는 농인이) 장애인을 채용하는 회사를 찾아서 지원하더라도 면접을 가면 말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받는다고 했다. 농인과 음성언어를 통한 대화가 어렵기에 잘 고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법률상으로 국어와 대등한 자격을 갖는 수어가, 정작 노동 시장에서는 국어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형국이다.

실제로 농인은 전문직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1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장애인 취업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직군은 단순 노무 종사자(28.3%). 박 회장은 장애인 취업 실태를 살펴보면 육체노동을 하는 농인이 대다수라며 전문성을 갖춘 농인이라 하더라도 막상 구직 활동을 해보면 일할 수 있는 곳은 단순직뿐이라 말했다.

장애를 이유로 직업 선택에 제한을 두는 사회.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 수어는 농인 고유의 언어인 동시에 이들의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농인 수어 아티스트가 대표적이다. 수어 아티스트는 수어를 뮤지컬, 노래, 연극 등으로 예술화하는 직업이다. 수어 속에 녹아있는 농인의 문화를 예술로 풀어내는 일을 한다. 농문화를 공유해 온 농인은 청인에 비해 수어에 담긴 문화와 예술성을 더욱 잘 표현해낸다.

그럼에도 청인 역시 수어에 기반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수어가 공용어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농인에게 청인 수어 아티스트의 존재는 달갑지 않다. 대중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주로 청인을 향하지, 농인을 비추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청사회에서 청인이 수어를 예술화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농인의 직업 선택과 기회에 대한 이야기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수어와 농문화의 당사자인 농인은 노동 시장과 직업 선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안 대표는 농인이 청인보다 수어를 훨씬 전문적으로 구사할 수 있음에도 사회적 관심은 줄곧 청인에게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라 꼬집었다. 농사회는 청인 수어 아티스트가 정작 농인의 직업 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청인 수어 아티스트의 수어가 정작 농인에게 가닿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어를 표현할 때도 국어와 마찬가지로 억양, 표정, 눈빛 등 비언어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청인 수어 아티스트가 표현하는 수어는 그 목적이 의사소통이 아닌 예술화다. 이에 조사, 동사와 같은 문장 필수 성분을 생략하기도 한다. 농인들은 청인 수어 아티스트의 수어를 해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안 대표는 단어만 남은 채 이어지는 말들로는 그 맥락과 인과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농인의 권리가 일상으로 확대되려면

 

수어에는 농문화의 정신이 담겨있다. 수어는 언어인 동시에 이들이 몸담고 있는 농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안 대표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려면 농인의 수어, 농사회, 농문화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농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 만연한 농인 차별을 읽어낼 수 있다. 받고 싶은 교육이 있거나 하고 싶은 취미를 할 때 필요한 수어 통역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콘서트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행사 관계자는 그를 배리어프리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게끔 했다.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일반석에 앉아도 괜찮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농인이 콘서트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이들 앞에서 통역을 지원하는 수어 통역사가 필요하다. 이렇듯 청인 중심 사회에서 청인에게 당연한 일상이 농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많다.

노동 시장에서 농인이 겪는 차별을 해소하려면 농인과 청인을 구분하는 시작점을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청인 중심 사회에서 농인이 취업 문턱을 넘기 어려운 현실을 들여다보면, 취업 공고문 대부분이 수어가 빠진 채 국어로만 제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언어장애가 있는 농인은 이러한 취업 공고문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취업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박 회장은 농인이 한국어를 다 이해한다는 청인 중심적 사고 아래 취업 공고문을 한국어로만 제공한다농인에게도 동일한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고문이 수어 영상으로도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농사회와 청사회의 구분을 해소하려면 농인에게 교육의 기회가 촘촘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청각장애인 고용차별 및 고용개선방안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인의 수어 습득 평균연령은 12.3세다. 청인이 유아기부터 국어를 접하고 배우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늦은 셈이다. 이처럼 유아기부터 벌어진 농인과 청인의 지식 격차는 이후 이들간의 차별을 공고히 한다. 수어 교육의 전문성도 미흡하다. 같은 실태조사에서 농인 응답자의 55.6%가 주변 지인을 통해 수어를 배웠다고 답했다. 박 회장은 시기와 전문성을 고려하여 청인과 동등하게 이뤄지는 농인 교육은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각종 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어가 공용어가 된 지 6년이 지났다. 여전히 일상 곳곳에서 지속되는 차별은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인식이 미진한 현실을 드러낸다. 수어에 대한 존중과 함께 농문화를 이해할 때 농인의 손짓은 비로소 우리 사회에 가닿을 수 있다.

 

 

글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그림 마지수

 

* 청인: 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비장애인을 지칭하는 말
** 오디즘(Audism): 청각장애인을 차별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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