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매거진부장(정외/경제·20)
이승연 매거진부장(정외/경제·20)

 

많은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드라마 속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주인공처럼, 내 인생도 결국 아름답겠지’라는 환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도 드라마 속 이야기를 맹신하던 아이였지만, 해피엔딩은 믿지 않았다. 세상일에 유난히 관심이 많던 나는 모든 이의 인생이 결국 행복하게 끝나지 않음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환상은 남들과는 달랐다. 나는 인생의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행위 자체에 꽂혔다. 엔딩이라는 특정한 순간은 좋게 남지 못하더라도, 그리로 나아가는 시간은 우리의 의지로 완전히 채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까, 나는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바꿔나가는 사람이 가장 멋져 보였다. 당시 나에게 세상에서 매력적인 사람의 정의를 묻는다면 그것은 역경을 딛고 단단해진 사람이라 말했을 것이다.

나의 가치관은 지난 상반기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매거진부에서의 인력난 때문이었다. 정해진 코너는 매달 발행해야 했기에 기자 한 명이 짊어져야 하는 기사의 수는 훨씬 늘어났다. 더 많은 시간을 취재에 할당해야 했다. 발행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를 24시간 내내 괴롭혔다. 매거진부의 모든 구성원이 압박감을 가졌지만, 특히 내가 가지는 책임감이 더욱 강했다.

정신적으로 시달리던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왜 남들보다 압박감을 강하게 가지는지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해 압박감이 생기는데, 그 압박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던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압박감이라는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음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난 2월부터 5월까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 학기의 발행이 모두 끝난 6월이 돼서야 비로소 이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나친 책임감의 원인은 10대의 기억에 있었다. 10대는 미성년자 시기다. 성인처럼 온전한 책임과 자유를 갖지 않는다. 하고 싶던 일이 있었는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아 이를 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의 상황을 모르던 사람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하며 원래 너는 그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성인이 된다면 모든 일에 온전한 책임을 다하기로. 그래야만 당시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느낀 강한 압박감의 원인이었다.

원인을 찾은 후에 엄청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지난 상반기에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10대 때 만났던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아니면 내가 그런 결심을 굳이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나는 무력한 존재일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름이 다 갈 때쯤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이 더 필요했다. 현재를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의 ‘적당한’ 풍파를 겪고, 이를 이겨내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미 자격미달이 아닐까. 자격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아니라, 운과 선천적 환경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지난 상반기의 경험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린 시절 가졌던 드라마에 관한 환상은 그렇게 깨졌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9월부터 나는 자격미달로 살기로 했다. 나는 고난이 와도, 앞으로도 무력해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격미달이라는 점에 대한 자격지심은 없다. 세상은 드라마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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