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미 교수(우리대학교 경영대학)
장은미 교수(우리대학교 경영대학)

 

대학을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된다. 학교를 떠나면, 내가 선택하는 조직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조직은 나에게 경제적 임금을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직과 구성원이 갖는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부모님 세대는 한 조직에 입사하면 꾹 참고 조직생활을 해야 하는, 소위 평생고용적 관계가 대세였다. 이 고용 관계에서 구성원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즉, 불편해도 참고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어 가며, 호형호제하는 가족같은 동료관계의 형성이 중요했다. 좀 과장하자면, 특출나게 성과 좋은 사람보다 상사 및 부하직원들과 화합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또는 다소 억울하더라도 잘 참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구성원이 선호되던 시대였기도 하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요즘의 젊은이들은 다르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즐기며 성장한 세대들에게 관계라는 것은 참고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끝내고 다시 설정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다양한 sns의 소통방식에 익숙한 세대들은, 즉각적이고 솔직한 소통, 일상적일 정도로 빈번한 비교, 그리고 개인들 간의 공정성을 매우 중시한다. 이런 젊은이들이 주류가 되는 사회에서는, 회사를 위해서 희생을 하거나 참고 견디며 감내한다는 가치는 미덕으로 중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수십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20세기 말에 어느 학자는 이러한 특성의 일본 젊은이들을 “닌텐도키즈”라고 정의한 바 있다. 

물론 기업들도 변했다. 최근 현대자동차에서는 대대적인 신입사원 공채 방식을 폐기하고 경력직 채용을 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공채라는 선발제도는 젊고 잠재력 있는 인재들을 대규모로 선발하여 교육과 사회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인재로 만들어 나간다는 철학에 기반하였다. 이 철학은, 설명한 바와 같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을 위해서 화합하고 조화로움을 꾀한다는 구성원들의 관계적 가치의 중요성도 함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직무가 어떻게 변할지, 언제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필요한 기술과 역량을 이미 보유한 인재들을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외부에서 확보해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우리 기업들의 성과주의의 물결이 더욱 거세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연공서열이나 인화와 같은 가치들이 개인의 성과나 능력과 같은 요소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이고, 이와 더불어, 관계적 가치도 직무 및 성과의 가치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사기업들에서 더 두드러지지만, 정부, 공기업이나 의료기관 등 사회 어느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성과주의로 설명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과 성과가 강조되는 시대라고 하여 개인의 관계 역량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외부 인재 선발과 관련된 기업 사례들을 보면, 시장에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인재를 고액으로 스카우트해왔지만 바로 실패하고 마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점은, 실패의 원인이 개인의 기술이나 전문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적인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개인의 성과라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 뿐 아니라 팀의 규범이나 분위기, 동료들의 협조와 같은 관계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업무 기술은 출중하더라도 외부에서 채용된 인재들이 대인관계 부적응으로 인하여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흔들리며 단기간에 퇴직하고 마는 경우가 의외로 빈번하다. 개인의 기술과 업무 역량이 탁월하다는 것이 곧 관계적 적응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 간에 역상관인 경우가 많다. 물론 새로운 구성원이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여서 전적으로 어느 한 쪽의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기술 경쟁의 시대, 성과주의 시대에서 성공의 원천이 개인의 기술이나 성과가 아닌, 관계적 역량, 즉 낯설고 열악한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역량에 있다는 점이다. 내부 구성원들의 따가운 시선이나 업무 비협조, 외롭게 밀려난 섬과 같은 느낌, 때로는 억울하게 왕따로 몰리는 듯한 열악한 환경에서 “지혜롭게 살아남기” 가 필요한 것이다.

21세기는 불확실성과 변화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는 탁월한 기술이 곧 경쟁력이다. 기업은 개인의 기술과 성과에 기반하여 인재를 수시 채용하려고 하고, 개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더 잘 알아주는 조직으로 옮겨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참으로 역설적인 결론이지만, 성과를 강조하는 조직에서 인재들이 고성과를 보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 내부 인력들과 얼마나 조화롭게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는 가와 같은 관계 역량이라는 덕목을 가장 필요로 한다. 첨언하자면, 관계 역량은 기술적인 역량보다 오랜 시간 경험과 노력을 통하여서 얻어지는 것이다. 효과적인 매뉴얼 같은 것이 없으며, 컴퓨터나 각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과 시도가 가능한 젊었을 때부터 자기주도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따라서, 21세기 성과주의 시대에 기술과 고성과라는 경쟁력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학창시절부터 관계적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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