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공공성 복원하려면 “제도가 사람 견인해야 해”

제주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내 여행지. 우뚝 솟은 한라산이 도내 어디를 가도 보이고, 섬 가장자리를 따라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곳. 제주의 비경은 제주도민의 삶의 터전이자 이곳 관광산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동력이다. 그런 제주 경관이 사유화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독점하려는 이들의 세는 점점 커지고 있다. 자연을 파헤쳐 경제적 이익을 뽑아내려는 자본의 비정함이 제주를 병들게 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땅제주에 난개발의 징후는 뚜렷하다. 해변을 가로막는 카페와 리조트, 산을 깎아 우후죽순 세워진 관광 단지들. 제주가 개발 광풍에 휩싸인 지금,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 제주 경관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나.

 

누가 제주를 사유화하나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일대 육지에 위치한 ㄱ카페는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일대 육지에 위치한 ㄱ카페는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해변가에 조성된 카페는 제주 바다의 경관을 사유화하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일대를 이루는 카페거리는 육지와 바다를 가르는 경계를 따라 일렬로 세워져 있다.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좋은 풍경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반인들에게 카페 앞 해안가 산책로를 개방하고 있긴 하나, 최적의 경치를 최적화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여유는 이곳 카페촌에서만 누릴 수 있다.

카페거리의 ㄱ카페를 드나들며 기자들이 취재한 결과, 육지에서 바라본 바다와 바다에서 바라본 육지는 너무나도 달랐다.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는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면 바다에서 바라본 육지는 카페 일대로 꽉 막혀있어 조망이 어려웠다. 카페거리가 조성되기 전 녹빛 파도와 현무암 절경이 자아내는 고유한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음료와 빵과 함께 값어치가 매겨진 바다 경관을 구매하는 관광지로서의 가치만 남은 상태다. 자연경관이라는 공공 자원을 특정 개인과 기업이 소유한 결과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변은 애초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현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인근 주민들만 알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다 20216, 제주 12번째 해수욕장으로 지정된 월정리해변은 관광 핫 플레이스중 한 곳으로 급부상했다.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건 해안사구 위에 만들어진 해안도로, 그 옆으로 즐비한 카페거리와 식당가뿐. 전례 없는 택지 개발은 월정리를 부동산 개발지, 관광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월정리 마을 주민들의 농경지와 집터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해안 경관을 사유화한 상업용 건축물들이다.

 

▶▶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변 자락에 자리한 ㄴ카페. 최적화된 공간에서 최적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변 자락에 자리한 ㄴ카페. 최적화된 공간에서 최적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변 자락에 자리한 ㄴ카페에서도 비슷한 폐해가 드러났다.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물결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여유와 아름다움은 관광객들이 이곳 해변을 즐겨 찾는 주된 이유이다. ㄴ카페는 현무암 일대 위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대표 음료 ㄴ에이드는 한 잔에 9천 원. ‘경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카페와 함께 좋은 경치를 이용할 수 있다. 관광객 장모(46)씨는 비용은 부담되지만, 경치를 보고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제주의 자연경관이 있는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관광지의 모습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관광객 영순호(32)씨는 카페가 없다면 해변 어디서든 현무암 지대와 해안 절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텐데, (카페라는) 조금 이질적인 공간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제주 고유의 생태적지리적 가치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난개발의 주 무대가 된 제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에 덩그러니 방치된 '코지하우스'. 무너져가는 기둥이 들어가는 길을 간신히 막아서고 있다.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에 덩그러니 방치된 '코지하우스'. 무너져가는 기둥이 들어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

 

제주 섭지코지는 옛 풍경을 잃은 지 오래다. 드라마 올인에 나와 명소가 된 올인 하우스건물은 정상에 있는 등대로 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지금은 곳곳에 거미줄이 쳐진 상태로 빈집처럼 흉물로 남아 있다.

 

섭지코지에 있는 글라스하우스. 네모난 정문 뒤편으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섭지코지에 있는 글라스하우스. 네모난 정문 뒤편으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섭지코지 정상에서 훤히 내다보이던 성산일출봉은 휘닉스아일랜드가 세운 글라스 하우스에 가려져 조망이 어려운 상태다.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카페와 스튜디오의 위치를 안내하는 글라스 하우스 입구 조형물을 거쳐야 한다. 성산일출봉이 ‘Glass House’가 적혀 있는 네모난 정문 안에 갇힌 셈이다. 섭지코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한숙영(55)씨는 올인 하우스는 철거명령이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방치돼 있고, 글라스 하우스는 뜬금없이 섭지코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올인 하우스와 글라스 하우스 모두 섭지코지 경관을 저해하는 건물이라 말했다.

 

▶▶ 철장으로 둘러싸인 오라관광단지 부지는 나무가 쓰려져있는 등 폐허가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 철장으로 둘러싸인 오라관광단지 부지는 나무가 쓰려져있는 등 폐허가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제주 오라관광단지는 도내 최대 면적(3575753), 최대 투자 규모(6조 원대)의 개발 예정지였다. 당초 계획은 제주시 오라2동 산91번지 일대에 숙박시설과 골프장 등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해당 단지는 한라산국립공원과 인접한 해발 350~580m 중산간 지역에 조성될 예정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 무언가를 새로 짓는 일인 만큼, 오라관광단지도 난개발 논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지난 1999년 사업 승인을 받았으나, 잇따른 사업시행자 변경과 중국 투자 자본의 신뢰성 논란 등으로 2021년 사업 계획안이 최종 부결됐다. 기자들의 취재 결과, 오라관광단지 부지는 현재 듬성듬성한 풀 무더기와 함께 철창으로 둘러싸인 폐허에 가까웠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개발 구역 입구에는 사람이 출입하면 법률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개발 논란에 휩싸인 이호유원지 부지. 녹슨 컨테이너 주변으로 풀무더기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 개발 논란에 휩싸인 이호유원지 부지. 녹슨 컨테이너 주변으로 풀무더기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제주 이호유원지 역시 난개발 문제로 부지 일대가 방치된 상태다. 말 모양 등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조성된 해안도로 뒤편으로 녹슨 컨테이너와 풀에 뒤엉킨 조형물이 흉물스러운 개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200810월 승인된 이호유원지 개발 사업은 제주분마이호랜드가 제주시 이호동 일원 276218부지에 1조 원대 자본으로 호텔과 콘도 조성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사업자 측에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채무 문제가 얽히면서 경매로 넘어간 사업 부지 중 86필지 47천여의 소유권이 모두 이전된 상태다. 관리 주체가 부재한 이호유원지는 그렇게 반쪽짜리 관광지가 되었다. 이호유원지를 방문한 마지수(21)씨는 말 등대를 보려고 이호유원지에 방문했는데, 주변이 휑하게 방치된 상태라 놀랐다관광지를 조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모조리 매몰 비용이 되면서 사회경제적 낭비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제주 경관, 공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경관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제주 경관은 이곳의 고유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자원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자본 유치, 관광단지 조성, 도심 랜드마크 같은 개발사업으로 경관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대 건축학과 김태일 교수는 바다, 산과 같은 자연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제주의 경관은 공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가 가진 천혜의 비경은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돈을 내야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개발 광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발의 열기가 가라앉아야 비로소 경관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김정도 정책국장은 제주 해안의 절반 이상은 재해 위험 지역이라며 개발이 이뤄진 공간 중 낙후된 지역이 이미 상당한데, 여기서 새로운 공간을 추가로 개발하는 건 환경적 측면에서도 무리라고 했다.

공적 차원에서 개발 총량을 제한해 난개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 61일 제주는 환경자원총량관리계획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담기로 했다. 해당 계획은 대표적인 난개발 억제책으로, 이를 특별법에 추가해 개발 전후 환경자원총량이 동일하게 유지되도록 한 것이다. 김 교수는 환경자원총량관리계획은 개발과 보존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이라며 양적 개발의 상한선을 규정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이 불필요한 개발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개발이 무산되고 경관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환경자원총량관리계획을 시행하기에 앞서 관광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남윤섭 교수는 법적인 결격 사항이 있는지를 따지는 현행 인허가 제도에서 벗어나, 관광 수요를 선제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도지사가 관광 개발의 시행 여부를 통제할 수 있다. 제주도개발특별법에 따르면 개발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자는 도지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개발에 우호적인 도지사가 선출될 경우 언제든 전례를 뒤집을 수 있는 셈이다.

되돌릴 수 없는 폐허를 양산하지 않으려면 지속 가능한 개발을 뒷받침하는 규범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오가는 개발 풍경을 직시해야 한다사람이 제도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제도가 사람을 견인하는 식의 법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주 절경은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다. 제주는 자연경관의 복원 가능성을 논하는 대신, 바다를 껴안고 있던 현무암과 모래사장 자리를 허문 비정한 난개발의 논리를 체화하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개발의 흔적이 짙어지면 지금의 제주 풍광을 옛 사진으로만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 정책국장은 말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여 돈을 벌고자 하는 본능이 해안 경관의 사유화와 난개발이라는 풍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 번 파괴된 경관은 복원할 수 없다. 제주의 다채로운 경관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사진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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