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급식소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다

지난 823일 찾은 바하밥집은 매주 누군가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보문동에 위치한 이곳은 2009, 성북천 인근에서 밥과 라면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규모가 커져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 이곳을 찾아 식사를 해결하는 이들에게 무료 급식은 어떤 의미일까.

 

▶▶ 최 운영팀장, 자원봉사자, 그리고 기자가 배식 장소인 공원으로 음식을 나르고 있는 모습
▶▶ 최 운영팀장, 자원봉사자, 그리고 기자가 배식 장소인 공원으로 음식을 나르고 있는 모습

 

무료 급식,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될 한 끼

 

, 취재하러 오신 기자님이시구나.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 오후 410, 평범한 주택가 사이에 있는 바하밥집은 프라이팬 부딪히는 소리, 식기 나르는 소리로 가득했다. 10평 남짓한 조리실에는 조리기구, 냉장고가 가득 들어서 있었다. 15분쯤 지나자 제육볶음이 완성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준비된 용기에 제육볶음과 밥을 담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부터 바하밥집에서 일한 최성욱 운영팀장은 원래는 식판에 밥과 반찬을 제공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기에 밥을 담는다고 말했다. 8월 말이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얼린 물과 차가운 식혜가 함께 제공됐다. 놓친 것이 없나 조리실을 살피던 최 운영팀장은 일회용 수저, 포크와 모기향, 파스 등을 챙긴 후 준비한 음식을 차에 실었다.

배식 장소까진 차로 이동합니다. 자리가 좁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오후 440, 최 운영팀장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기자와 최 운영팀장, 3명의 자원봉사자는 음식을 싣고 배식 장소인 공원까지 차로 15분가량 이동했다. 오후 5시 무렵 도착한 공원에는 노인들이 이미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가지고 오자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음식은 10분 만에 모두 동이 났다.

최 운영팀장과 자원봉사자들은 배식이 끝나고도 20분 정도 더 머물렀다. 뒤늦게 찾아오는 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준비한 제육 덮밥은 모두 소진됐지만, 최 운영팀장은 즉석밥, 라면 등 간편식을 제공하며 이들을 맞이했다. 최 운영팀장은 몇몇 노인에게 모기향이나 파스 같은 생필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여름 공원에는 모기가 너무 많아 노숙하시는 분들의 경우 모기향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몸이 이곳저곳 쑤신다는 노인들이 많아서 파스를 꼭 챙겨드린다고 덧붙였다.

무료 급식을 지원받는 노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 그들에게 무료 급식은 어떤 의미일까. 안재삼씨는 쪽방촌에 살고 있다. 그는 급식을 받기 위해 매주 공원에 나온다. 그는 빚이 있어 음식과 물을 사 먹을 돈마저 없다받은 음식을 이틀에 걸쳐 나눠 먹는다고 말했다. 안씨는 여기서 3~4명은 무료 급식이 없다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은 생수를 몇 개 더 챙긴 뒤, 그는 발길을 옮겼다.

노인들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최 운영팀장은 말했다. “무료 급식을 받으시는 분 중 노숙자가 1/3, 쪽방촌 거주자가 1/3이다. 하지만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이다. 이곳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싶으신 분들이 대다수다.” 이 말처럼 무료 급식 지원 현장에서 만난 77세 노인 A씨도 그랬다. 최 운영팀장이 그를 소개했다. 그는 2달 전 쪽방에서 쫓겨나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면서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국민연금이 나오지만 금액이 매우 적어 끼니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원에 나와 무료 급식을 받는다. 바하밥집에서 음식 지원을 그만두면 다른 급식소를 찾기 힘들 것 같다. 노숙인들이 많아 급식 지원이 꼭 필요하다.”

 

▶▶ 도시락은 운반용 바구니 4개를 가득 채웠으나, 급식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바구니들은  모두 비워졌다.
▶▶ 도시락은 운반용 바구니 4개를 가득 채웠으나, 급식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바구니들은 모두 비워졌다.

 

물가 상승에 한 번, 부족한 지원에 두 번 우는 무료 급식소

 

오후 540분 무렵, 바하밥집은 공원에서 철수를 준비했다. 이윽고 다시 차를 타고 조리실에 돌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빈 통을 정리한 뒤 이곳을 떠났다. 벽에 붙어있는 화이트보드엔 8월의 배식 일정과 메뉴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최 운영팀장은 원래는 배식 봉사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3일 동안 진행했다물가가 너무 올라 이전만큼 음식을 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치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 825, 한국은행은 올해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5.2%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무료 급식소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식재료 값 역시 지난 2021년 보다 대폭 상승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식자재 유통 업체에 재직 중인 김모씨는 급식에 주로 납품되는 식재료 가격의 경우, 2021년 동기 대비 평균 30~50%가 올랐다소매로 식자재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물가 체감 상승률은 그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운영팀장 역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데 지장이 크다고 말했다. 직접 장을 본다고 밝힌 그는 식용유, 감자, 당근, 양파, 양배추 할 것 없이 코로나19 이전 시기보다 3배 정도 가격이 올랐다“20kg 한 박스에 18천 원 정도 하던 감자는 2년 만에 5만 원이 됐고, 한 통에 2만 원 정도였던 식용유 한 통은 48천 원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밥 자체의 품질을 낮출 수는 없다이전에는 간식도 함께 제공했으나 같은 가격으로 밥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간식을 제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무료 급식소인 바하밥집은 언제까지 무료로 운영될 수 있을까. 최 운영팀장은 정부의 지원은 없다일정 금액은 한 교회에서 지원받지만, 나머지 예산은 모두 일반 모금으로 충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무료 급식소를 유지하는 데 대표님의 사비가 들어가기도 한다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가 까다롭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공익법인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아래 공설법)에 따르면 민간 무료 급식소가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 위해선 사회복지법인 등 제도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기관으로 등록돼야 한다. 바하밥집과 같은 소규모 무료 급식소의 경우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공설법은 재단 소유의 재산 20억 원, 이사진 7명 이상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두고 있다. 최 운영팀장은 작은 무료 급식소의 상황이 비슷하겠지만 법인격을 갖추려면 비용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이사회를 구성해야 하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법인격을 갖추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2~3명의 운영진만으로 운영되는 시설이 법인격을 갖추기 위한 재산과 인력을 갖추는 것이 힘든 이유다.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더라도 지자체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급식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일복지재단 대외협력실 관계자 B씨는 재단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했으나 무료 급식 지원 사업의 경우에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을 받을 때 까다로운 절차가 생기고, 지자체의 간섭이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말했다. “무료 급식소는 지자체 단위로 지원이 이뤄지는데, 타지에서 무료 급식을 받으러 오는 경우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간혹 지자체에서 급식 메뉴 등 운영에 간섭하기도 한다. ,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급식 제공을 중단하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도 있다. 하루만 급식 제공을 하지 못해도 1천 명 가까운 어르신이 식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원해주지는 못해도 급식 제공을 막진 않았으면 좋겠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바하밥집은 음식을 식판이 아닌 일회용기에 담아 제공한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바하밥집은 음식을 식판이 아닌 일회용기에 담아 제공한다.

 

무료 급식소, 그 너머의 이야기

 

무료 급식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빈곤한 이들이 있다. 다일복지재단 관계자B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에 1천 명이 이상이 무료 급식소를 방문해 밥을 받아 가셨다무료 급식이 없으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인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양의무자인 자녀가 있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하지만 자녀에게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해 무료 급식으로 살아가는 노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순둘 교수는 지난 2016년 시행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수급 빈곤층 5명 중 1명은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그 숫자보다는 적겠지만, 여전히 무료 급식이 필요한 사람은 많다고 덧붙였다.

무료 급식소는 제도 밖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최재성 교수(사과대·사회복지학)빈곤 등의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국가나 자자체가 책임질 의무가 있다국민이 국가로부터 그러한 보호를 요청할 권리 또한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순둘 교수는 정부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모든 재원을 갖추고 있지 않다무료 급식소 등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료 급식소가 이웃 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지역사회의 복지관이나 사회복지 공무원이 소외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에 개입하는 것은 힘들다취약계층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무료 급식소가 이들을 사회복지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순둘 교수 역시 정보가 없어 사회복지제도의 수혜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무료 급식소에서 정보를 공유한다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를 찾아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 급식소가 복지시스템을 알려주는 공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제 무료 급식소에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정순둘 교수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무료 급식소의 경우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민간 무료 급식소의 경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서 무료 급식에 필요한 지원금을 배분받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승한 식자재비를 지원하는 방안 또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원 기준을 완화할 수도 있다. 최 교수는 민간 무료 급식소가 투명한 운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지원할 수 없다신청 제도와 심사 기준은 유지하되, 신청과 심사 절차를 단순화해서 국가의 지원을 더욱 간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순둘 교수는 취약계층의 생존권 측면에서 무료 급식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누군가에게 무료 급식 지원은 없어선 안 될 한 끼가 된다. 무료 급식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이상, 그들을 위한 모두의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글 김병훈 기자
kk2im@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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