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가 불편한 9천620원

 

 

2023년도 최저임금이 현행 최저임금 9160원보다 460(5.0%) 오른 962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주 40시간을 근무(월 노동시간 209시간)하는 노동자 월급은 201580원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아래 최임위)에서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이 9명씩 모여 협상합니다. 최저임금법7조에 따르면 최임위는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합니다.

그런데 노사 양측 모두 만족하는 결과는 아니었나 봅니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2023년도 최저임금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노동계에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낮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경영계에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금리·고환율·고물가라는 삼중고에 처한 소상공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재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최저임금법 제93항에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가 제기한 이의가 합당하다고 인정할 경우 최임위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그런데 지난 1987년 이후 최임위는 단 한 번도 재심의를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6월 이후로 별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만큼, 재심의가 진행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노사 모두가 원하지 않는 최저임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배경은 의결 과정에 참여하는 공익위원의 표결에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최저임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표결 이전에 회의장을 나갔습니다. 사용자위원 9명 역시 표결 선포 직후 공익위원이 제시한 금액이 못마땅하다며 전원 퇴장했습니다. 결국 최임위 표결은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5명과 공익위원 9, 기권 처리된 사용자위원 9명을 의결 정족수로 진행됐습니다. 그 결과 찬성 12, 반대 1, 기권 10표로 2023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그 누구도 상대를 설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근로자위원 측은 먹거리와 유가 등 물가가 올랐다는 근거를 제시해 최저임금이 1만 원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인 사용자위원 측도 물가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용자위원 측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난이 심했다면서 최저임금을 동결을 제안했습니다.

타협이 이뤄지지 않자 공익위원 측의 셈법이 힘을 얻었습니다. 2023년 최저임금 9620원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금액이었습니다. 최임위 공익위원 측은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2.7%)’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하고, 여기에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를 빼는 방식으로 2023년 최저임금을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계산 방식은 최저임금법과 내용상 괴리가 있습니다. 최저임금법 제41항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서 정합니다. 하지만 공익위원 측 셈법은 최저임금법 제41항이 명기한 요소를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최저임금법이 빠진 최저임금이 나온 셈입니다.

최저임금법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논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업종별 최저임금 지급 문제 역시 논란이 되곤 합니다. ‘업종별 최저임금제말 그대로입니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입니다. 업종별 최저임금제는 최임위 회의가 열릴 때마다 사용자위원 측에서 꺼내온 카드입니다.

지난 517일 최임위 2차 전원회의에서 노사는 업종별 최저임금제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업종별 최저임금은 최임위 회의장에 매년 등장하는 단골 의제입니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경영계에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일률 적용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노사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논거는 이렇습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이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종을 보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근로자위원 측은 생활 안정을 확보하려면 단일 최저임금부터 올려야 한다는 이유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안에 반대했습니다. 최임위 2차 전원회의에서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은 “1만 원짜리 한 장으로는 밥 한 끼도 못 사 먹을 정도로 노동자·서민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다업종 구분과 같은 불필요한 논쟁은 걷어버리고, 최저임금 본래 목적을 확립할 수 있는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근로자위원 측이 최저임금 1만 원을 호소하는 배경은 따로 있습니다. 지난 201719대 대선에서 다섯 후보는 모두가 5년 안에는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정치권으로부터 최저임금 1만 원을 약속받은 셈입니다. 그런데 5년 전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와중에 업종별 최저임금이 의제로 나오는 상황이 노동계는 반갑지 않았던 겁니다.

지지부진한 협상에 경영계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자는 경영계 역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지급은 경영계의 숙원으로 평가받습니다. 경영계는 매년 열리는 최임위에서 꾸준히 업종별 차등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업종별로 어떻게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없었습니다. 대안과 방침은 빼놓고 무작정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지급하자고 주장한 겁니다. 결국 4차 전원회의 표결에서 27명 중 16명이 반대표를 내며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지급안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를까요. 고용노동부는 20233월까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방법, 생계비 적용 방법 등과 관련한 기초연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3년 전에도 정부는 관련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9513일 고용노동정책 현안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노사 교섭 중심의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놓고 사회적 문제 제기가 집중돼 온 점을 고려하겠다. (중략) 최임위 심의를 요청한 이후에도 업종별 최저임금 영향에 대한 현장 실태 파악을 계속했다고용노동부는 3년 전에도 실태 파악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방증하듯, 변화는 요원했습니다.

앞으로 최임위 협상이 어떻게 진행돼야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최저임금법에 있습니다. 해당 법안에서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라 명시된 생계비·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현재 최저임금법에는 4가지 항목을 계산할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이 셈법을 먼저 논해야, 논의가 공회전하지 않을 겁니다.

셈법과 함께 고민할 내용은 업종별 최저임금제입니다. 매년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업종별 최저임금제는 어떤 방정식으로 풀어야 할까요.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나라 중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국가는 일본, 호주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는 국가 최저임금을 하한선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 업종별 최저임금은 국가 최저임금보다 낮을 수 없습니다. 사용자위원들이 생각하는 단일 최저임금보다 낮은 업종별 최저임금은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노동자의 최저 생계 보장이라는 최저임금법의 본질을 상기해야 합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이 실효적이지 못하는 관측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영세한 기업의 임금 수준에 최저임금 기준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하더라도 업종별 임금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 셈입니다.

 

최임위 회의를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노사 모두가 불만족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원점으로 돌아가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법은 특정 금액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최저임금법은 금액 산출에 쓰일 요인만 제시했습니다. 이제 공식을 만들 차례입니다. ‘얼마나(How much)’를 따지기 전에 어떻게(How)’부터 고민하자는 의미입니다. 기준이 바로 설 때, 모두가 납득할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습니다.

 

 

글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그림 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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