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도 ‘치유’ 필요해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가족을 일대일로 지원하며 이들의 일상 회복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유가족과 아픔을 함께한다. 유가족의 슬픔에 크게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원망에 상처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도 참사의 파편이 깊숙이 박힌다. 대한적십자사 국내사업본부 재난구호팀 정유연 활동가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재난 현장을 마주하고 유가족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의 치유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그렇게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아픔은 가려진다.

 

 

참사는 계속되는데 법제화는 멀었다

 

가족의 죽음은 상실감을 동반한다. 곁을 잃은 아픔은 온전했던 일상을 가로질러 유가족의 마음에 깊고 큰 슬픔을 아로새긴다. 참사로 인한 죽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유가족은 시신 수습부터 사고 경위 조사, 장례 처리, 법적 보상을 위한 공방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416재단나눔사업1팀 박성현 팀장은 유가족이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행정적 절차가 존재한다고 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유가족이 죽음의 바다에서 외로이 헤엄치지 않도록 이들의 일상 회복을 돕는 일을 한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 실시됐다. 개별 가정과 장례식장에 전담 공무원이 배치된 것이 그 시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장례 절차를 안내하는 장례 지도를 비롯해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긴급 생계 지원을 제공한 바 있다. 유가족의 불편 사항이 최소화되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민원을 해소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역할이다.

이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7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업무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는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일대일 맞춤형 행정서비스의 일환으로 구체화됐다. 2021년 발행된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대응 백서에 따르면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식사, 숙소 등과 같은 사소한 생활 지원에서부터 장례 절차 동행, 법규 질의, 상담 지원, 지원금 수령을 위한 행정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 충청북도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박 팀장은 제천시로부터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 대한 정보를 요청받았다. 박 팀장은 메뉴얼이 부재해 세월호 참사 때 진행했던 프로그램과 사업을 소개해야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가 법제화되지 않아 제천시에서 정보를 직접 수소문하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선발하는 기준이 부정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난이 발생한 지자체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자체적으로 선정하기 때문이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선발 기준은 특정 부서의 과장 이상 직급인 경우’, ‘민원인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경우등으로 다양하다.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 및 위기관리위원회 육성필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적인 교육 없이 여러 부서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차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문득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된 이들이 겪게 될 앞날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과의 만남부터 참사의 후유증에 이르기까지, 죽음 이후의 일들을 홀로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만남,
유가족과 전담 공무원 모두의 상처로

 

취재 결과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어느 지역에 얼마나 배치돼 있는지 그 수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직책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탓이다. 박 팀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과 연관된 단체나 부서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이 극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지적했다. 서울시의 경우 유가족을 전담하는 관련 부서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 A씨는 유가족 관련 업무의 경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사고와 관련이 있는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규모 재난 참사의 경우 유가족 전담 공무원 배치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 팀장은 세월호와 같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참사 이외에 소수의 유가족이 발생하는 참사에도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흡한 제도 탓에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유가족에게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음은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대응 백서에 실린 인터뷰 일부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소중한 아들을 잃은 유가족에게 어떠한 말로 위로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A) ‘소중한 가족을 잃은 분들이라 동향 파악 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매우 조심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B)

서울소방재난본부 홍보기획팀 이수민 주임은 유가족은 감정적으로 격양돼 있거나 실의에 빠져 있는 등 저마다 애도의 과정이 상이하다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적인 매뉴얼이 있긴 하나 개인과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빈틈을 유가족 전담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으로 메우는 실정이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만남은 유가족에게 의도치 않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유가족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길 수 있어서다. 박 팀장은 말했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 중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신 경우가 많습니다.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에게 사망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굉장한 폭력일 수 있어요. 전문적인 교육 없이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이러한 부분까지 소상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때때로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심리상담연구소 사람과 사람김기환 소장은 유가족은 참사 당시 분노를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 투영하기도 한다고 했다. 유가족에게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감시자 혹은 사고의 책임자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가족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격앙된 상태라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복잡한 심정의 유가족이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업무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채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한다. 장례식장에 배치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장례식 내내 유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 최윤경 교수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가정에 돌아가서도 당시의 생각들이 떠올라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리 외상의 발생 가능성을 짚었다. 사고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간접 경험으로 인해 마치 그 일이 자신에게 직접 일어난 것처럼 심리적 외상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과도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들은 종종 참사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김 소장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책임을 본인화하는 것은 이들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했다. 육 위원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복지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유가족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으로서의 경험은 대리 외상의 수준을 넘어서서 트라우마가 된다. PTSD라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져 수면장애, 폭력적인 행동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육 위원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참사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타인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것만으로 실제와 유사한 경험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후유증은 일시적이지 않다. 육 위원장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되살아나고 일생에 걸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심각하다고 부연했다. 유가족의 회복이 사회의 몫인데 비해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고충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죽음 이후 유가족의 아픔을 거쳐 업무상 후유증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홀로 남겨져 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 별다른 치유 프로그램이 권고되지 않을뿐더러, 해당 업무가 종결된 이후 이들은 휴식 기간 없이 계속해서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에게 심리 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김 소장은 슈퍼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슈퍼비전은 상담가보다 숙련된 상담가에게 치유 받는 과정을 의미한다. 주로 상담 경험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거나 상담 과정에서 내원자가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슈퍼비전이 이뤄진다. 김 소장은 전문 상담가가 아닌 전담 공무원에게는 슈퍼비전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를 위해

 

유가족과의 사회적 동행을 위해서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가 필수적이다. 육 위원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유가족에게 우리 사회가 여러분의 일상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유가족은 큰 지지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는 유족들에게 가닿기 쉽지 않다. 박 팀장은 개인과 가정 내부의 일을 외부(유가족 전담 공무원)에 이야기하길 꺼리는 국민 정서가 있다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제공하는 서비스 자체에 대한 사회적 배타성이 높은 편이라 설명했다.

애도 과정에서 다양한 지원의 형태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역할을 특정한 테두리 안에 가둔다는 지적이 있다. 육 위원장은 상실을 경험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상실을 경험하면 힘들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사실상 강제하는 분위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를 통해 유가족이 저마다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는 이들의 헌신과 봉사, 사명감에 의존한다. 해당 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 소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이들이 전문성을 기반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강화요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현재의 기준으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선발하는 것은 마치 화재 현장에 기본적인 보호 장비도 안 주고 불길을 진압하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육 위원장은 전문적인 교육 없이 유가족을 만나게 되면 유가족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이들을 민원인 중 한 명 정도로만 여기게 될 수 있다라고도 했다.

전문성이 갖추어졌을 때 유가족 전담 공무원은 다양한 재난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전문화의 순기능을 묻자 김 소장은 유가족의 필요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심리 관련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회복을 돕는 데 높은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문화를 통해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존재가 내실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 제도를 상시화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전담 공무원이 유가족과 깊은 라포(rapport)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상시화하거나 상담직에서 따로 선발하도록 해 이들을 위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 위원장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유가족의 특성과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기른 후에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위한 소진 예방 프로그램역시 필요하다. 이들이 먼저 심리 지원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정 활동가는 소진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해 치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누군가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 본인이 정작 도움을 받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직업적 특성과 더불어 상담 내용이 직장에 유출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부연했다. 치유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놓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위한 상담은 접근성이 높아져야 함은 물론, 그 방법도 다양해져야 한다.

최 교수는 유가족 전담 공무원을 위한 자조 모임을 제안했다. 그는 사람마다 필요한 지원의 형태가 다르기에 다차원적인 소진 프로그램이 갖춰질 필요가 있다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자조 모임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고양시자살예방센터 박선영 센터장도 자조 모임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그는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서로 지지하고 지지받는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재난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는 일상 회복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유가족 전담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참사 피해자의 아픔과 함께하지만, 그 뿌리를 파고들면 들수록 이들에게도 참사의 아픔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 교수는 유가족의 일상 회복에 우리 사회가 함께하듯, 이들의 고통 역시 우리 사회의 몫이다고 말했다.

 

 

글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사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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