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주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유현주 교수(우리대학교 문과대학)

 

2세기의 로마인이었던 마우루스는 모든 책에는 자신만의 운명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마우루스가 말한 ‘책’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책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우선 가운데를 묶어 양쪽으로 넘기는 코덱스 형식의 책은 이로부터 한참 뒤에야 출현하며, 동양에서 발명된 종이가 먼 길을 건너오는 것도, 그리고 더욱이 인쇄라는 엄청난 인류 도약의 기술이 발명되는 것도 아직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우루스의 시대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흘러 지나온 우리 시대에도, 책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대형 중고서점과 개인 간 거래가 온·오프라인에 존재한다. 물론 값진 재화로 여겨져 소유자가 바뀌는 것이 큰 사건이던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책들은 오늘날에도 개개의 운명을 가진다. 

이를 책에서 인쇄매체물 전반으로 확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개의 운명이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이야기해보자면, 종이에 활자가 인쇄된 매체들은 앞으로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이 칼럼의 관심사인 종이 신문도 포함해서 말이다. 역사학자이자 매체학자이기도 한 로버트 단턴은 다매체시대의 인쇄물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쇄물은 문자로 이루어진 집합인 텍스트의 수용에 최적화돼 있다고. 인쇄물은 어느 부분을 펼쳐도 글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본문이 이어져 있어 넘겨 볼 수 있으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기에도 편리하다. 글들은 띄어쓰기가 돼 있고, 문단과 장이 나누어져 있으며 목차와 색인, 주석 등 읽기에 도움을 주는 모든 것들이 포함돼 있다. 

다시 말하면, 종이로 된 인쇄물들은 전달하는 내용이 여전히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인 한, 문화인류학적으로 인간에게 최적화된 모습으로 진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독일의 매체학자 노르베르트 볼츠가 이야기하는 인쇄매체의 생명력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다. 볼츠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전자매체시대로 막 진입했던 시기인 1990년대 초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라는 책에서 인쇄매체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던 바로 그 장본인임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매우 이채롭다. 모든 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는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인쇄물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 바로 ‘구텐베르크 은하계’ 논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전자 네트워크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인쇄물들을 관찰하면서 바뀌게 된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이질적인 것이 결합해 존재하는, 요즘 유행어로는 ‘초연결되는’ 매체연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대연합의 시대에서 인쇄물의 미래도 매우 낙관적이다. 볼츠에 따르면, 인쇄물이 가지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우선적 가치는, 포스트-휴먼적인 디지털 시대를 견디게 하는 복고적 감성이다. 우리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 하이퍼미디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종이로 된 매체들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 차가운 디지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친숙한 것,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언가를 이전 세계로부터 계속 지니고 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이 주장은, ‘인문학은 더는 주도학문이 아니며, 단지 빠른 현대화의 폐해를 보완하는 기능만을 가진다’는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의 다소 체념적인 주장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볼츠가 이야기하고 있는 종이로 된 매체의 끈질긴 생명력은 단순한 정신적 보완과 위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놓여 있다. 그가 지목하는, 인쇄 매체가 전자매체에 대해 가지는 복고적 장점은 바로 종이가 가진 물성(物性)이며, 여기에 기반하고 있는 다양한, 그리고 실용적인 기능들이다.

수없이 많은 현대의 스마트 기기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종이로 만든 매체들이 얼마나 뛰어난 도구들인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간편하게 다룰 수 있고 읽기에 좋고 전체를 빠르게 조망할 수 있으며 만질 수 있고 심지어 집어던질 수도 있다. 이것이 신문이나 잡지가 온라인 세계보다 언제나 우월한 점이며, 이를 통해 그들은 존속할 것이다.”

매체이론 전공자로서, 책과 종이신문 등 인쇄물이 겪어왔던 이러한 운명의 대단한 부침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만, 춘추의 편집인이 된 이후 교정에 놓여 있는 춘추의 신문들을 보며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수업이 많아지면서 춘추의 종이 신문 발행부수는 더욱 줄었다. 물론 그만큼 온라인 세계로의 진입과 소통은 늘었다. 이미 2011년부터 오픈되었던 연세춘추의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1만 3천명을 상회하며, 2016년부터는 인스타그램에서도 춘추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022년 1학기의 춘추의 온라인 기사 조회수는 상위권의 경우 오프라인 부수 전체보다 높았다. 앞으로도 춘추는 계속해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온라인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독자들에게 물성이라는 복고적 가치가 있는 종이신문의 일독 또한 권하고 싶다. 앞서 매체학자들이 지적한대로, 종이신문은 읽기에 편리하고 보관하기도 쉬우며, 떨어뜨린다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또한 끈질기게 업그레이드를 요청하지도 않으며, 매번 새로운 뷰어 앱을 다운로드받을 필요도 없고, 수시로 암호를 변경할 필요도 없다. 점점 비어가는 배터리 아이콘을 신경쓰며 충전을 걱정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전원을 연결할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눈이 피로하지 않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손에 잡히는 종이의 그립감은 물론 기본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독자를 위해 지하철 선반 위에 두고 내릴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을 모니터 너머로 읽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다음에는 한 번 연세 교정에 놓여 있는, 당신의 손 안에서 운명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종이 신문의 소유자가 돼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