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김수환 교수(우리대학교 과학기술융합대학)

 

‘식물인간’ ‘식물국회’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나 신문, 방송 등의 보도를 통해서 종종 접하는 용어로서, 비활동적이고 비생산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부정적 명사이다. 실제로 ‘식물인간’은 ‘대뇌의 이상으로 인해 의식이나 운동성은 없으나 호흡과 순환은 유지되는 상태’를 지칭한다. 그런데 식물이 정말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수동적이고 무능해 보이는 생명체일까? 30년 이상을 식물학자로서 살아온 필자는 식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식물을 활용하지 못했다면 찬란한 문명은 후대에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등에서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했던 파피루스같은 이름은 수생식물에서 유래했고, 우리의 한지도 닥나무, 삼나무, 마를 포함한 식물의 섬유소를 이용해 제조했다. 이와 더불어 식물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돼있는 식량과 의약품, 산업용품 등의 원료로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화장품과 향수, 항암제나 아스피린 등의 의약품은 식물의 이차대사산물인 피토케미컬에서 유래한다. 고무나 면화 그리고 바이오에탄올 등의 산업용품도 식물 조직이나 식물추출액에서 얻는다.

식물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중요한 역사와 경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중국 쟁탈의 전초전이었던 아편전쟁이나 향신료 획득을 위한 대항해시대와 신대륙 발견은 근대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일대기적 사건이 됐다. 중세 유럽의 기근은 감자의 도입으로 해결하기도 했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황제튤립’ 선물거래로 촉발된 튤립 거품은 인간의 탐욕과 함께 일그러진 자본주의 운용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식량과 식용 기름 가격의 전 지구적인 폭등과 함께 식량안보라는 의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탐욕 속에서 식물은 의도하지 않게 경제 불평등의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식물은 인간 친화적인 생명체다. 2018년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의 흡수와 저장, 산소 생산, 생물다양성 보존, 산림 휴양, 홍수 예방 등 산림 숲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경제효과는 연간 221조 원에 이르고, 이는 국민 1인당 연간 428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생태 환경적 경제효과다. 

생물권(biosphere)이라고 정의하는 지구의 땅과 물, 대기를 포함한 생명체의 서식 공간 안에는 지역 단위별로 국지적 생태계(ecosystem)가 형성돼 있다. 또한 생태계 권역 안에서는 생물(동물, 식물, 미생물 등)과 무생물, 그리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물리적 환경요소가 상호관계를 이루면서 생명의 수레바퀴를 균형 있고 질서 있게 이끌어간다. 식물은 생태계의 생산자다 광합성이라는 광화학적 반응을 통해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빛 에너지를 활용해 포도당으로 전환함으로써 생물이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산소와 수소를 배출해 동물, 식물, 미생물을 포함한 지구생명체가 포도당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활동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미생물은 생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설물, 사체 등을 분해하는 분해자로 작용하는데, 식물은 뿌리를 통해 분해된 무기물을 흡수하여 동물, 미생물 등에 제공함으로써 생태계 속에서 물질순환이 거의 소실 없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따라서 식물은 지구상에 인류와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물질과 에너지 순환의 중심이 되고, 건강한 생태계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인간만의 문화적이고 문명 친화적인 존엄한 삶을 이어가게 하는 근본적 동력이다. 이러한 점을 활용해 연구자들은 재생, 순환이 가능한 폐쇄적 생명 지원시스템(Bioregenerative Life Support System, BLSS)을 개발하고 있다.

여러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뜻하는 인류의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의 꿈은 금세기 들어 인류에게 실현 가능한 또 하나의 혁명이 돼가고 있다. 우주에 장기체류하면서 우주개발 전초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러시아가 1971년에 건설한 살류트(Salyut) 유인 우주정거장을 필두로, 우주에는 1973년 미국의 스카이랩(Skylab), 1986년 러시아의 미르(Mir), 그리고 미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 등의 16개국이 참가해 1998년 건설이 시작된 국제우주정거장(ISS) 등이 운영됐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2022년 완성을 목표로 우주정거장 ‘톈궁’을 건설하며 신흥 우주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의 장기체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막대한 양의 식량(주로 진공포장 식품)을 지구로부터 운반하는 비용, 장기간 이것을 섭취하는 고역, 분변/소변 등의 생체폐기물 처리 문제, 산소를 얻기 위한 물의 전기분해 장치와 식수를 얻기 위한 이온 여과 장치의 설치 등 다양한 문제 때문에 인류가 우주에서 인간적으로 사는 것은 여전히 막대한 비용을 치뤄야 하는 것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 가능 생명지원시스템 (Bioregenerative Life Supporting System, BLSS)이 고안됐는데, 가장 대표적인 운용시스템으로는 유럽항공우주국에서 제안된 ‘미생물-작물 기반 폐쇄적 순환재생 생태계 시스템’ 즉 멜리사(MELiSSA) 프로그램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BLSS’ 개념의 생명 지원시스템으로 폐기물 순환과 산소, 물 회수를 위한 모듈인 ‘Bio-Plex’를 개발했다. 폐쇄적 운용시스템은 아니지만, NASA가 운용한 야채생산시스템(VEGGIE)와 러시아가 운용한 Lada, SVET-2 장치 등의 우주정거장 내 식물 생장 시스템은 콩, 밀, 양상추 등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성공적으로 재배했다. 그리고 NASA는 2015년 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키운 상추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먹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더 나아가 2022년에는 미국 과학자들이 뼈 성장 자극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양상추를 개발함으로써 우주 환경의 미세 중력으로 뼈 손실을 겪는 우주인을 위한 식자재를 우주에서 직접 길러 먹을 수 있게 됐다.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Tesla)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민간우주개발과 함께 2026년부터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킨다는 야망으로 2002년 5월에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NASA는 2024년에 달에 유인 착륙해 달을 탐사하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와 함께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30년까지 인류를 화성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NASA가 주관한 화성 주택 공모전에서는 화성 모사토에 식물의 섬유소 성분을 넣어 만든 건축재료로 3D 프린팅하는 방법이 1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오는 8월 3일에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를 스페이스X의 펠컨9 로켓에 실어 발사하여 본격적인 우주 항해와 우주 개척에 대비할 예정이다. 달 기지 건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기 위한 시험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폐쇄적 돔형 우주 정원의 구축과 BLSS 장치의 개발은 장거리 우주여행과 향후 달 기지, 화성 정착기지 등의 운용뿐만 아니라 행성의 지구화와 식민지화에도 아주 중요한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수직형 도시농업이 미래의 농업 방식을 바꿀 획기적 개념으로 대두되고 있다. 수직농업 또는 수직농장, 도시농업이라고 부르는 식물공장 아이디어는 1999년 컬럼비아대 딕스 데스포미어(Dickson Despommier) 교수가 처음 제안했는데 데스포미어 교수는 “30층 규모의 빌딩농장이 5만 명의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공장에서는 거의 모든 작물 재배가 가능하고, 물고기, 새우, 조개류, 또 닭이나 오리, 거위 같은 조류 등 밀폐 사육이 가능한 동물 사육도 가능하다.

ICT 기반 수직농장은 지구온난화에 의해 경작면적이 줄어들고 또한 기존 농법이 많은 땅이 필요한 관계로 도시와 떨어진 노지에서 작물을 키우는 불편함과는 달리 변화된 기후조건과는 무관하게 폐쇄적 생태순환이 유지되는 빌딩형 수직 공간에서 작물과 가축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살충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도 병충해에 대한 제어가 기능하기 때문에 무공해 유기농업이 가능하고, 노지에서 재배한 작물을 도시로 운송해서 판매하는 데 드는 물류 운송비를 아낄 수 있다. 이에 더해 ICT 기술을 활용해서 온도와 습도, 광량 제어가 가능하고, 작물의 수확과 분류 등 거의 모든 과정이 ICT 스마트 농업기술로 일괄 관리돼 인건비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농업, 농업인 하면 쨍쨍 쬐는 햇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농사를 짓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도시 기반형 ICT 스마트 농업에서는 편안한 옷을 입거나 산뜻한 넥타이를 매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농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리가 미래에 볼 수 있는 농업인의 모습이다. 게다가 그 좋다는 산소 목욕과 건강 증진 산림욕을 실컷 하는 보너스도 누릴 수 있다.

필자는 주위에서 “식물인간”, “식물국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큰 불편함을 느낀다. 실상 식물은 무척 역동적인 생명체이며,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평화주의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는 식물의 생존과 번성, 그리고 공평하고 조화로운 이용은 인류가 포함한 살아있는 생태계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열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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