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실험, 도전의 맥을 짚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face)’가 오는 여름 해산한다. 등장한 지 6년 만이다. 닷페이스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의제를 발굴해 우리 사회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닷페이스가 남긴 한국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봤다.

 

 

닷페이스의 등장과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지난 2016년 시작한 닷페이스는 젠더, 기후위기, 장애, 동물권 등 기성 언론이 잘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에 집중했다. 군대 내 성소수자, 퀴어 직장인, 소방관 등 변화를 외치는 이들의 말을 전한 ‘할 말 많은 인터뷰 시리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중지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대신하는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개최가 대표적이다. 닷페이스가 기획한 ‘탈시설: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 프로젝트는 3월 제24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이는 영상 콘텐츠부터 아티클 서비스까지 다양성과 평등이라는 기조에 맞춰 지속적인 콘텐츠 변화를 추구해 온 도전의 결과로 보인다. 

닷페이스는 미디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메디아티’의 투자로 운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자신들을 후원하는 ‘닷페피플’을 통해 수익 구조의 틀을 구체화했다. 페미니즘, 퀴어 등 특정 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층을 겨냥한 ‘버티컬 미디어(vertical media)’의 가치를 증명해내고자 한 것이다. 신생 미디어 및 창작자에게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기술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미디어스피어’ 강정수 이사는 “과거 대중 매체가 전체 국민의 평균치를 콘텐츠의 목표로 삼은 것과 달리 지금의 디지털 미디어는 버티컬 콘텐츠를 제작해 특정 독자층에 소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닷페이스의 등장은 최근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의 흐름과 함께한다. 2010년대부터 다양한 신생 미디어가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언론 지형에 변화가 생겨났다. 지난 2010년 1월 진보적 장애인언론을 표방한 독립 언론 「비마이너」가 등장했다. 2012년 1월에는 탐사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비영리·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2012년 5월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는 대구·경북 지역 독립 언론 「뉴스민」이 창간됐다. 2017년 3월에는 과학·공학 미디어 스타트업 ‘긱블’이 첫 콘텐츠를 선보였다. 

닷페이스·긱블 투자 당시 메디아티 대표였던 강 이사는 “새로운 DNA를 가진 미디어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며 “이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넓혀가 주류 미디어로 성장하려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은 「미디어 스타트업 어디까지 왔나」에서 스타트업을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 비즈니스 모델로 급성장이 기대되는 초기 기업’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미디어 스타트업의 등장은 기존의 언론 질서를 바꾸는 미디어 실험의 일종이다. 강 이사는 “다양한 미디어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며 “새로운 산업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이미 비영리 언론, 독립 언론, 버티컬 미디어 등으로 언론 지형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비영리·독립 언론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게 대표적이다. ‘뉴스타파함께재단’ 장광연 프로듀서는 “독립 언론은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을 의미한다”며 “언론의 수익 활동 추구가 저널리즘의 가치와 충돌할 수 있기에 비영리를 추구하는 언론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널리즘의 공적 역할에 부합하는 비영리·독립 언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라지는 미디어
잊히는 목소리

 

모든 도전이 성공적이지는 않다.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는 지난 2일 닷페피플에게 보내는 메일을 통해 해산 소식을 전했다. ‘재정적인 어려움, 소진되는 마음과 부족한 제 역량’이 그 이유였다. ‘독립 미디어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했지만, ‘자원의 한계를 크게 느끼고, 이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었’기에 해산을 결정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닷페이스 해산을 둘러싸고 언론계 내부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언론개혁시민연대(아래 언론연대)는 지난 4일 ‘문 닫는 닷페이스, 한국 사회의 불행한 언론환경을 보여준다’라는 논평에서 ‘재정적 어려움은 닷페이스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며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독립 언론들이 있다’고 밝혔다. 언론연대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독립 언론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약한 상황”이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이나 공적 기금 역시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백영민 교수(사과대·언홍영)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보는 무료로 공유되는 재화로 인식된다”며 “비영리·독립 언론의 재정적 기반 역시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장 프로듀서는 “독립 언론의 전망 자체는 밝다”면서도 “독립 언론이 확산할 수 있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디어 스타트업의 수익 구조에 관한 고민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광고 위주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제안한다. 닷페이스는 지난 26일 기준 24만 7천여 명의 유튜브 구독자와 14만 7천여 명의 페이스북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강 이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닷페이스의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제작 방식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다. 닷페이스의 미디어 실험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좋은 콘텐츠를 지속 가능하게 생산할 수 있는 수익 구조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부족했을 뿐이다.”

닷페이스의 해산은 곧 ‘목소리의 소멸’을 의미한다. 미디어 하나가 사라지면 그 미디어가 주목해 온 다양한 목소리가 갈 곳을 잃는다. 김 정책위원장은 “기성 언론이 모든 영역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없다”며 “독립 언론은 이러한 틈새를 메우고 공론의 장을 완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 언론의 소멸은 이들이 대변하던 목소리가 지워져 우리 사회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미디어 실험이 이어지기 위해

 

미디어 스타트업을 위한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정책위원장은 “여러 미디어 실험이 성공하고 안착하는 데에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비영리·독립 언론 등을 대상으로 국가 지원 정책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0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코로나19 시대 해외 언론지원 정책」에 따르면 유럽 주요 국가는 ‘여론 다양성 유지, 여론 독과점 방지, 고품질 저널리즘 구현’ 등을 핵심 목표로 설정해 구체적인 언론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15년부터 신생 언론 혹은 이들을 후원하는 시민들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을 확대하는 중이다. 김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에도 언론 독립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미디어 지형을 넓힐 수 있는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며 “지원금의 부당한 사용이 우려된다면 지원 매체를 법적으로 제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미디어 바우처 도입을 비롯해 언론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 높은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 프로듀서는 “독자의 지갑을 열려면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지만 많은 미디어 스타트업이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좋은 콘텐츠는 그 자체로 미디어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장 프로듀서는 “미디어가 독자들에게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 수익 구조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탐사보도 전문 매체 「셜록」 박상규 기자의 ‘재심 3부작’은 지난 2020년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과 영화 『재심』으로 재탄생했다. 콘텐츠 그 자체가 갖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증명해낸 셈이다.

독립 언론의 가치에 주목해 언론 간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뉴스타파는 지난 2월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을 출범해 독립 언론 창업을 지원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장 프로듀서는 “뉴스타파가 구심점이 돼 독립 언론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데이터 센터를 만들려고 한다”며 “좋은 기사가 파급력 있게 유통됨과 동시에 독립 언론이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디어스피어 강 이사는 “콘텐츠 생산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콘텐츠와 자본, 기술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스피어는 신생 미디어 및 창작자에게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기술과 플랫폼을 제공한다. 

오는 6월 출범하는 수익다각화 플랫폼 ‘블루닷(Bluedot)’이 대표적이다. 강 이사는 “블루닷은 단계별 유료 구독 서비스, 스토어, 포털 기능 등을 탑재한다”며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기술적 독립성을 갖추고 유연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미디어 실험이 계속될 때 다양한 미디어가 공존하는 생태계가 조성된다. 김 정책위원장은 상업 언론, 공영 방송, 독립 언론 등 다양한 미디어의 형태가 보장돼야 각각의 미디어가 고유의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좋은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지고 다양성이 풍부해지도록 언론 내부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닷페이스 해산이 모든 미디어 실험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디어 생태계를 바꾸려는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닷페이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길을 헤쳐 가는 다양한 미디어 모두의 서사다. 포기보다 도전이 장려되는 미디어의 내일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그림 민예원

 

*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라는 뜻. 작은 일에서 엄청난 변화가 급속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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